대중의 계몽적 ‘레전드’ 피디 거부
이는 수동적 객체 거부를 의미해
작금의 ‘레전드’ 농업정책도
변화된 현재에 발맞춰야

김규호
실력파 가수들이 가창력을 겨루는 한 TV 프로그램이 연일 화제다. 요즘 화제의 중심은 단연 ‘왕의 귀환’으로 불리는 한 사내인 듯하지만 그 전에도 이 프로그램은 꽤 흥미로운 이슈를 몇차례 제공한 바 있다. 그 중 하나, 단한번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상황으로 인해 프로그램을 떠나야 했던 피디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쌀집 아저씨’ 말이다.

소위 ‘재도전’ 사태로 인해 이를 촉발한 가수나 이를 제안한 개그맨이나 가감없이 자신의 감정을 표출한 진행자나 우왕좌왕한 피디 등 다양한 방송 주체들에게 시청자의 비판이 집중되던 무렵, 나의 관심은 조금 다른 데 있었다. 즉 생방송이 아닌 녹화방송이라면 충분히 편집으로 녹화 당시의 상황을 다듬고 부연할 수 있었을 텐데 왜 피디는 그러지 않았을까, 이 점이 못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던 것이다. 문제의 방송 이전에 행해진 피디 인터뷰도 일부러 찾아봤지만 여느 때와 같이 시청자가 느낄 감동에 대한 자신감만 보일 뿐 방송 이후 야기될 파장에 대한 추측이나 긴장감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결국 몇건의 기사를 읽은 후 든 생각은, ‘아, 이 분이 리얼 버라이어티를 잘 모르는구나’였다. 그는 아마, 자신들이 의외의 탈락자로 인해 얼마나 충격을 받았으며 현장이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를, 그리고 얼마나 진지한 결심으로 룰을 바꿨는지를 ‘리얼하게’ 보여준다면 시청자들의 이해를 구할 수 있으리라 믿었을 것이다. 그것이 그가 이해한 ‘리얼 버라이어티’였고, ‘편집하지 않은 편집’이라는 그의 선택이 가져온 결과는 우리가 잘 아는 그대로다.

돌아보면 동 시간대의 이전 프로그램 - 개발도상국 우물 개발 등의 글로벌 나눔 프로젝트와 중년 남성들의 퇴근길을 ‘아버지의 삶’이란 관점에서 조명한 프로그램 - 역시 시청률 회복을 위한 쌀집 아저씨의 회심의 카드였으나 결과는 그리 신통치 못했음에 생각이 미친다. 불과 몇년전만 해도 수없이 많은 예능 히트작을 기획하고 연출한 ‘전설급’ 피디의 작품들이 속속 시장에서 패퇴한 셈이다. 공익성을 주조로 하는 그의 콘텐츠와 메시지에 대과가 없다면 문제는 연출 스타일이 아닐까. 더 이상 계몽의 수동적 객체이고 싶지 않은 동시대 대중들이 버라이어티의 재미와 의미에 공감하는 방식, 이에 대한 성찰의 깊이가 ‘레전드’라는 수식어의 경도(硬度)를 결정짓고 있는 것이다.

‘농업정책’을 공부하며 작금의 농업 부문, 혹은 지역 경제의 다양한 정책 실례를 살피다 보면 수없이 많은 ‘운동’과 마주치게 된다. ‘새마을 운동’으로 대표되는 동원의 역사가 불러온 집단 체험의 자장(磁場)으로부터 아직 충분히 자유롭지 못한 탓이다. 물론 공과에 대한 엄격한 논의와는 별개로, 이러한 ‘운동’들이 분명 우리 현대사 발전도상의 몇몇 역사적인 순간들에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농생대에는 저개발국이나 개발도상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인데, 그들과 얘기하다 보면 ‘새마을 운동’의 경험으로부터 자국에 적용할만한 지혜를 얻고자 하는 그들의 순정한 열망을 종종 느끼게 된다. 말하자면 그들에게, 우리의 ‘운동’ 체험은 하나의 레전드인 셈이다. 그러니, 이는 우리의 자부심일 수 있을까? 여전히 유효한 정책 수단이자 구호일 수 있을까? 나는 이 상황이, 자꾸만 쌀집 아저씨의 영욕에 겹친다.

쌀집 아저씨는 떠났어도 이번 쌀집은 다행히 순항 중이다. 이것이 리얼 버라이어티의 문법을 제대로 깨우친 방향으로 프로그램이 진화해서인지, 아니면 ‘진짜 가수를 보여주겠다’던 우직한 메시지가 뒤늦게 힘을 발휘해서인지, 혹은 두 이유가 적절히 섞여 대중에게 다가가고 있어서인지(그렇다면 그 비율은 어찌 되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여기서 시장의 시그널과 농업정책의 방향에 대한 단초를 읽고자 한다면 너무 엉뚱한 일일까. 마침 농업이니, 쌀집과 그리 멀지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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