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상아탑’이라 불리는 대학에서 현상적 원리를 실증하고 진리를 궁구하는 연구는 분명 하나의 중요한 기둥이다. 최근에는 연구중심대학 기조가 마치 유행처럼 대학가를 휩쓸어 일부 대학들은 본격적으로 대학원중심대학을 표명하고 나서기 시작했으며 국가적 차원에서도 이를 인지해 ‘세계수준의 연구중심대학’(WCU) 등 초대형 사업을 도입한 바 있다.

이에 『대학신문』은 확산되는 연구중심대학 풍조 속에서 서울대가 적절한 지원책 마련에 대한 고려 없이 표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고 서울대 연구의 진취적인 발전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좌담회를 가졌다. 좌담회에는 본지 부주간 강대중 교수(교육학과)가 사회를 맡고 김명환 교수(수리과학부), 노명호 교수(국사학과), 신희영 교수(의학과), 오명석 교수(인류학과), 현택환 교수(화학생물공학부)가 패널로 참여했다.

정리: 전명준 기자  사진: 하태승 기자  삽화: 김태욱 기자

빈약한 연구 지원 확대를 꾀하다

구성원 모두가 배불리 먹기 위해서는 충분히 큰 파이가 마련돼야 하는 법이다. 과연 서울대의 연구 지원 현황은 연구와 학문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을만큼 충분한가.

신희영: 연구의 질을 높이고자 한다면 반드시 그에 대한 투자가 선행돼야한다. 일반적으로 연구의 질은 투자에 비례한다. 투자하지 않는 연구는 질적 향상을 도모하기 어렵다.

김명환: 하지만 연구비는 언제나 부족한 실정이다. 전반적인 연구비 확충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연구 정책 논의 과정에 대학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서울대 내에서 끊임없이 연구 정책에 대한 아이디어를 도출해내야 하며 이를 정부에 활발하게 건의해야 한다. 현재 서울대에서 개인 연구의 수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중장기·중대형 연구에 대해서는 고려가 부족한 것 같다.

신희영: 맞는 말이다. 정부의 정책에 끌려가는 식의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다. 수행하고자 하는 연구 과제를 정부에 능동적으로 제안해 대학 스스로 정책을 바꿀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발전적인 연구 지원이 가능하다. 이와 관련해 연구처에서는 최근 서울대 스스로 큰 규모의 연구 사업 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미래국가 R&D 위원회’를 구성했다. 위원회는 서울대가 장기적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연구들을 제안하고 이에 대한 예산을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 연구 지원 확충을 위해서는 기술지주회사나 자회사의 역할도 중요하다. 이들은 국립대에 소속된 만큼 외국으로의 재화 유출을 막아 사회기업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수익 확충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지금도 통계 프로그램 관련 자회사 신설을 계획 중에 있다. 열개 정도의 회사만 잘 운영하면 학생들의 등록금을 안 받아도 될 정도의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특허 비용 역시 학교에서 지원하고 컨설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택환: 서울대 연구 지원 현황의 문제점에는 각 학문에 대한 불균등한 지원도 포함된다. 수익을 많이 창출하는 연구에 대한 지원 비중이 큰 것 같은데 이런 연구는 본부가 특별한 관심을 갖지 않아도 연구자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 오히려 수익 창출과는 동떨어진 학문에 대한 본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신희영: 가시적 수익이 많은 분야가 지원을 많이 가져가는 풍조 속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분야는 아마 인문·사회계일 것이다. 자료를 보면 서울대는 여러 연구 분야 중에서도 바이오와 자연과학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으나 인문학이나 예술 분야는 기반 투자가 부족해 연구 역량이 이보다 취약한 상황이다. 이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

본부 내 연구 지원 부처의 행정적 문제도 개선돼야 한다. 지금까지 본부는 연구비 관리에만 치중했을 뿐 구체적인 지원 방안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 연구처가 연구자를 위한 서비스 기관이 돼야하는데 지금은 단순히 행정조직 상위의 또다른 행정조직일 뿐이다. 이러다 보니 연구 행정에서의 비효율성 역시 심화돼 하나를 알려고 해도 최소 4번의 통화를 거쳐야 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이를 해결하고자 6개월간 연구처를 세로조직으로부터 가로조직으로 혁신시켰다. 각 직원을 협약, 정산, 지출 담당 등 기능별로 묶어 모든 부처에서 각 항목에 해당하는 상황을 충분히 숙지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현택환: 인적 자원에의 지원 확대도 반드시 필요하다. 특정 분야에 최고의 연구자가 얼마나 종사하고 있는지가 실질적인 연구 역량을 결정한다. 그렇기에 서울대도 각 학문 분야를 대표하는 우수 연구자 확보와 그들에 대한 지원책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 서울대는 포항공대나 카이스트에 비해 이런 노력이 부족하다. 본부는 신임교수 채용 등에서 한 분야의 대가를 섭외하고 그를 지원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오명석: 연구자의 양적 측면도 중요하다. 사회대의 경우 각과의 교수가 10~15명 정도 인데 이는 아직 각 학문분야를 간신히 커버할 수 있는 수준이며 일종의 구색 맞추기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연구 역량을 향상시키라는 주문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김명환: 동의한다. 연구 역량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좋은 연구자를 데리고 오는 것이 중요하다. 자연대에서는 오래 전부터 간접비를 교수 정착금 등에 사용해왔는데 이런 방식이 확대돼 우수 연구자에게 지급되는 지원비가 충분히 확보돼야 할 것이다.


아직은 미흡한 연구 평가, 개선 방향은?

최근 대학들은 연구의 질적 평가를 기치로 내세우며 여러 가지 제도를 개혁·보완하고 있다. 그 속에서 서울대의 연구 평가 제도는 어떤 방향으로 개선돼나가야 하는가.

노명호: 현재 서울대는 연구 평가 기준을 논문 발표 편수와 피인용 지수, 기반과 시설 등의 외적 요소에서 찾으려고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풍토는 특히 인문계열의 학문 분야에서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 인문학의 경우 외형적 기준으로는 평가할 수 없는 분야도 분명히 존재한다. 연구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비판적인 성찰을 이끌어내거나 새로운 지식, 기술을 창출해내는 것이며 그게 우리 사회나 인류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따라서 연구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수치가 아니라 보다 내용적이고 심층적인 기준이 필요하다.

오명석: 현재 운용되는 제도에도 문제가 있다. 보통 연구를 평가할 때는 질적인 측면과 양적인 측면을 고려하는데 조교수와 부교수는 특히 양적 평가에 대한 압박을 많이 받는다. 이장무 총장 재임 당시 정년보장심사위원회가 구성돼 단과대 뿐 아니라 본부 차원의 심사도 통과돼야 정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했는데 이 제도가 꽤 비판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모든 학문 분야를 통틀어 본부 차원의 심사가 동일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조교수나 부교수의 입장에서는 연구 질에 목매는 것보다 안전하게 양적 측면 향상을 선택하지 않겠는가. 결국 일종의 생존전략으로 논문 편수를 늘리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다작을 추구하다보면 질적 측면에서는 분명 한계가 있다. 정년 보장이나 교수 승진에 대한 본부 차원의 평가 기준이 개선돼야 이런 현상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김명환: 하지만 연구 평가가 반드시 승진이나 정년 보장과 연관돼있는 것은 아니다. 실질적으로 연구 역량의 향상과 학문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학문별로 거시적 발전 방향과 부합하는 평가 제도를 확립할 필요가 있는데 인문·사회 분야에서는 그런 노력이 부족하다. 현재 인문·사회 분야의 연구자들은 새로운 평가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동의하면서도 혁신적 제도를 실제로 만들어나가는 것에는 크게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 같다. 자연과학이나 공학은 제도가 이미 잘 정비돼있을 뿐 아니라 국제적 표준이 있지만 인문·사회 분야는 각 학문별로 고려돼야 하는 요소가 다르고 국제적 표준이라는 것이 없어 원활한 평가가 어렵다는 것은 이해한다. 이런 평가 제도의 부재가 학문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기 때문에 인문·사회 분야에서 스스로 발전 방향을 확립하고 이에 부합하는 평가 기준을 강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명호: 물론 인문대 내에서도 이에 대해 여러 차례 논의가 이뤄졌고 고민도 많이 해왔다. 하지만 외부적 요인이 이를 방해하고 있다. 한국은 근대화 과정에서 기본적 정책방향에 있어 경제적 성장에 역점을 뒀다. 그렇기에 연구 평가의 기준도 이공계의 상황에 맞는 방향으로 확립돼버렸다. 예를 들어 현재 인문대의 연구 계획서나 예산서의 작성 형식은 이공계에 맞는 형식으로 고정돼있는데 이는 부적절하지 않은가. 이런 부분의 개혁도 선행돼야 할 것 같다.

오명석: 앞에서 지적된 인문·사회 분야의 평가 문제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단독저서에 비중을 두는 평가 제도가 필요하다. 현재 서울대의 평가 제도는 논문 한 편과 단독저서를 동일한 비중으로 놓는 형식이다. 그러다보니 교수들이 비교적 쓰기 편한 논문 작성에만 눈을 돌리는 현상이 발생한다. 외국에서는 정년 보장에 단독저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조건이 있을 정도로 단독저서를 중요시하는데 서울대의 시스템은 오히려 이를 억압하는 것이 아닌가. 단독저서에 논문 한 편의 3~4배의 비중을 두는 시스템이 확립되면 학문 발전에 분명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명환: 아마 단독저서의 경우는 질이 천차만별이라 일괄적으로 제도화하기 어렵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명저를 쓴 교수는 해당 저서 하나만으로도 승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이번에 자연대는 신규 채용 방식을 완전히 바꿈으로써 평가 제도 개선을 도모했다. 이에 따라 심사 대상자가 대표 논문 1~5편을 제출하면 심사자는 개별 논문들을 따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제출한 논문을 모두 아울러 하나의 종합 평가만을 쓰게 된다. 연구자가 단 한편의 좋은 연구 성과만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는 방안을 만든 것이다.

오명석: 좋은 시도인 것 같다. 하지만 인문·사회 분야의 경우는 개별 학문들의 특성이 상이하기 때문에 단과대에서 표준화된 평가 기준을 내세우면 반발이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말을 꺼내기 쉽지 않은 부분도 있다.

현택환: 인문대나 사회대 교수들의 경우는 다들 말씀도 잘하시니 설득하기 쉽지 않을 듯 하다,(웃음) 앞에서 말한 자연대의 경우가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으니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김명환: 평가는 학문의 발전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교수를 괴롭히려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인문·사회 분야에서도 평가 제도가 발전적인 방향으로 정착됐으면 좋겠다.

후속세대 양성, 이대로는 부족하다

연구 역량 평가에 있어서 일선에서 연구에 참여하는 연구 교수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지만 진정한 ‘지속 가능한’ 연구를 위해서는 연구 후속세대가 보다 발전적으로 양성될 필요가 있다. 현재 서울대의 자체적 후속세대 양성 제도는 어떤 수준이며 어떻게 개선돼야 하는가.

오명석: 서울대는 후속세대 양성 측면에서 굉장히 취약하다. 후속세대를 자체적으로 양성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우선 대학원생 수가 충분히 확보돼야 한다. 학생이 많아야 새로운 프로그램도 개발할 수 있고 학생 간의 소통도 가능하지 않은가. 현재 대학원생들은 국내에서 박사과정을 하는 것을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것에 비해 불리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서울대에서 박사과정을 하는 것에 일종의 이점을 부여해야만 발전적으로 후속세대를 양성할 수 있을 것이다.

노명호: 인문대에서는 대학원생 수 미달로 곤란을 겪지는 않지만 졸업 후 진로를 감안해서 가능한 정원 이하로 뽑으려는 학과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현택환: 아마 이공계 학생들은 졸업 후 선택할 수 있는 진로가 다양하지만 인문·사회 분야에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오명석: 게다가 사회과학의 경우는 박사학위 취득에 6~7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린다는 것도 학생들에게 부담을 주는 요인일 수 있다.

노명호: 심지어 인문학에서는 사회과학보다도 1~2년 더 길지 않나.(웃음)

오명석: 연구에 종사하기 위해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해서는 생활의 안정 역시 가장 절실하게 확보돼야 하는 요소가 아닌가 생각한다. 공대의 경우는 프로젝트를 통해 학생들에게 월급을 지급하기 용이하지만 인문·사회 분야는 거의 불가능하다. 정운찬 총장 재임 시절 미국 등의 장학 제도를 본떠 대학원생이 학업과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대학원생들의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하는 GSI 장학금 제도가 도입됐을 때 학생들에게 많은 도움이 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럼에도 지금은 이 제도가 몹시 정체돼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이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이런 지원 방침은 분명 필요하다. 외국의 유수대학은 학자금은 물론 생활비까지 지원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이러한 제도를 점차 확대해야 현재 취약한 서울대 후속세대 양성 시스템의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김명환: 현재 대학원생들에게 돌아가는 지원은 지도교수의 연구비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난다. 지도교수 연구비와는 별개로 모든 학생들이 안정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지금은 지원금이 정해진 기간에 쓰였는지를 우선적으로 따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적절치 않으며 본래 목적대로 지급됐는지를 우선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정부에도 건의해 개선해야 하는 사항이다.

노명호: 지적한 바와 같이 장학제도 개선은 기본적이면서도 매우 절실한 문제인 것 같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대학원생이 주도적으로 연구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도 제안해본다. 학생 주도 연구는 교수가 주도하는 프로젝트에 학생이 참여하는 것과는 분명 다른 이점이 있다. 학생 주도형의 연구가 가능하도록 기금을 확충하고 제도를 개발해야 한다. 또 학생들이 다른 분야의 대학원생들과 소통할 수 있는 모임이 필요하다. 점차 학제간 교류가 갖는 의미가 커지고 있는데 현재 대학원생들은 본인의 전공에만 매몰돼있다. 인접 학문 분야를 조금만 들여다봐도 전체적 시각이나 접근 방법, 자료 확보 등에 있어 큰 소득을 얻을 수 있음에도 이를 수행하려는 노력이 매우 부족하다. 이에 대한 지원책이 도출되면 교수가 낼 수 없는 결과를 학생이 만들어내는 긍정적인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현택환: 최근 공학 분야에서는 국내 학생들이 양이나 질적 측면 모두 외국에서 수학한 학생에 비해 앞서있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게다가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도 박사 후 과정을 통해 2~3년간 타국에서 수학한 학생들과 네트워킹을 할 수 있고 국내에서 수학하면 군입대 문제도 자연스레 해결된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국내에서 수학한 학생들이 교수로 임용되는 시기가 유학 간 학생들보다 빠른 경우가 많다.

오명석: 말씀을 들어보니 공학 분야에서는 후속세대 양성이 이미 자생력을 갖춰가는 것 같다. 다만 인문·사회 분야의 학생들에 대한 지원은 취약하고 기반도 부족하니 이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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