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회 대학논문상 심사평

제36회 대학논문상 심사위원
대학논문상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서울대 학생들의 지적 경연의 공간이다. 학생들의 자발적 학술 활동의 결과들이 평가받고 격려 받고 수상되는 귀한 계기다. 그런데 올해는 여느 해와 달리 단 세 편만이 응모됐다. 더구나 그 세 편이 적어도 서울대를 대표하는 학술 논문으로 선정되기 위해 요구되는 품격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려스럽기까지 했다. 심사자들이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논의했지만 결국 당선작을 가려내는 데 실패했다.

「국가의 역할에 대한 역사적 일고찰」은 경제성장 과정과 국가 개입의 관계를 둘러싼 이론적 논의를 맥락으로 1970년대 중화학공업화 시기에 설립된 현대조선의 발전과정을 하나의 사례로 탐구하는 논문이다. 논문을 이끈 문제의식에 담긴 포부는 가히 창대하지만, 전체적으로 짜임새가 부족하고, 전개와 서술이 논리적 비약을 이룬 부분들이 많아서 결과적으로 완성된 연구 결과가 제시됐다기보다는 하나의 ‘초고’나 ‘연구계획서’ 수준의 내용을 담고 있다.

「고용불안이 조직몰입에 미치는 영향」은 비교적 초점이 잘 잡힌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한 가설적 해답들을 설정해 실증적 자료를 수집하고 그것을 차분히 분석한 논문이다. 전문성이 돋보이는 연구임에 틀림없지만 논문의 내용을 구성하는 조작적 개념들이 낯선데다가 언어적 서술이 서툴고 조악하다는 인상을 준다. 더구나 연구의 결과로 제시되는 통찰이 그다지 새롭지 않고 상식적 인식에 포괄된다는 점이 심사자들에게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학부생과 대학원생의 논문에서 기대하는 것은 기성학자들의 테크닉을 모방하는 숙련된 솜씨가 아니라 그들이 갖지 못한 도발적 시각과 참신한 발상이다. 이 응모작에서는 그런 점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마지막으로 「한국철학의 고유성과 한계」는 입가에 미소를 띠게 하는 논문이라 평할 수 있겠다. 사실 이 글은 논문이라기보다는 책 한 권의 요약본이라 보는 게 더 적절하다. 논문 형식에 대한 훈련이 미흡하다는 것이 명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소를 지을 수 있었던 것은 패기와 열정으로 글이 넘실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열정의 크기가 기술적 문제들을 덮어주는 큰 장점이라 판단했다. 그러나 끝내 아쉬웠던 것은 연구자 자신이 설정한 ‘한국철학’, ‘서양철학’이라는 거대범주에 대한 지적 성찰의 부재다. ‘한국철학’, ‘서양철학’이 자명하게 주어진 것이라 판단하고 논의를 시작한 것은 큰 문제라 할 수 있다. 자신이 사용하는 개념에 대한 엄밀한 검토가 전제되지 않는 한 자칫 연구는 사상누각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올해는 아쉽게도 당선작을 내지 못했지만 내년에는 서울대 학생들의 지적 분발을 기대한다. 아쉽게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응모해준 세 명의 학생들에게 그들의 노고와 용기를 치하한다. 더 노력해 발전된 모습으로 내년에 또 응모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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