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래섭 지음ㅣ 웅진닷컴
“명랑은 눈물과 어울린다”는 말에 선뜻 동의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명랑의 의미가 사전의 정의처럼 유쾌하고 활발한 감정이나 밝고 맑은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위의 명제는 틀린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소래섭 교수는 그의 책 『불온한 경성은 명랑하라』에서 명랑이라는 단어의 유래와 정의를 다시 제시하며 명랑은 오히려 우울과 어울리는 단어라고 말한다.

한국현대시 전공자인 소래섭 교수(울산대 국어국문학부)는 1920~30년대의 글을 통해 당시의 문화를 재발견한다. 전작인 『백석의 맛』에서 백석의 시에 담긴 음식의 맛을, 『이상 문학 연구의 새로운 지평』에서 당대의 풍토성을 살린 것에 이어 신작 『불온한 경성은 명랑하라』에서는 명랑이라는 단어를 통해 근대를 재구성하고 근대를 넘어서 현대의 단초를 발견한다.

1930년대 조선은 총독부의 ‘명랑화 작업’과 동시에 산업 구조의 명랑화에 맞닥뜨렸다. 더러운 서울의 오물을 치우게 한 강제적인 ‘도시 명랑화’부터 민족의식 없이 일본에 복종하는 인간을 만들기 위해 모범을 강조하는 ‘두뇌 명랑화’까지 조선인들은 강제된 명랑에 직면해 오히려 우울의 늪에 빠졌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산업 구조 재편에 따라 친절이 노동의 일부로 대두되자 남성의 손톱을 정리했던 매니큐어 걸, 친절한 여성주유원을 이르는 가솔린 걸 등 각종 ‘걸’들이 양산됐다. 이들은 일종의 감정노동자들로, 명랑이라는 가면을 쓰고 그 감정을 조선의 구석구석으로 확산시켰다. 점차 감정 통제가 보편화되며 명랑이 우선 가치로 추구될수록 명랑 노동자들은 오히려 메말라갔다.

그러나 강제적인 명랑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었다. 시인 김기림이 재정의한 명랑은 총독부나 자본주의가 만든 ‘명랑’과는 본질을 달리한다. 새로운 명랑은 눈물로 얼룩져 행동하지 않는 낭만주의를 부정하며 이성을 강조하는 1930년대의 모더니즘과 함께 전개된다. 당시의 명랑이 자신을 감추는 일종의 마음의 포장이었다면 김기림에게 명랑은 슬픔의 시대를 극복할 기획이었다. 그가 정의한 명랑은 슬픔과 부정을 아우르는 커다란 개념으로써 거짓 명랑이 가득 찬 사회를 이겨내는 방식인 ‘태도’로 기능했다.

 자본주의와 총독부가 맞물려 낳은 허위적 명랑은 지배 세력의 체제 유지를 위해 기하급수적으로 그 사용빈도가 늘었다. 이러한 ‘명랑화’의 사용은 군사 독재 체제에도 지속됐다. 1966년 박정희는 지지율이 떨어지자 연두교서에서 명랑화 사회의 건설을 명령했고 1980년 5월의 비극은 1981년 5월 ‘중상모략을 줄이자’는 명랑화 운동으로 덮였다.

물론 우리는 더 이상 ‘명랑하자’고 외치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 그러나 저자는 명랑화가 이름을 바꿔가며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말한다. 조선사회의 명랑화는 오늘날 행복이라는 탈로 바꿔진 후 여전히 우리에게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감정을 강요하고 있다. 필요한 것은 명랑, 그리고 행복에 대한 강박이 아니다. 저자도 “공허한 명랑보다 진실된 우울과 마주할 때 우리는 한층 성장한다”고 책에서 말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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