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제15회 서울인권영화제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작은 영화관이 꾸려졌다. 이 특별한 거리 영화관에서는 지난 19일(목)부터 22일까지 나흘간 서울인권영화제가 개최됐다. 영화제는 ‘나와 당신의 거리’라는 제목 아래 차별, 노동, 평화, 민주주의와 관련된 인권 영화 31편을 상영했다.

영화제의 개막작으로 동성애자들의 삶을 유쾌하게 다룬 이혁상 감독의 영화 「종로의 기적」(2010)이 올랐다. 감독은 동성애자들이 커밍아웃하는 과정을 하나의 ‘기적’으로 바라봤다. 사회에서 소외된 성적 소수자이지만 하루하루를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보여준 활기는 거리의 관객들에게 퍼져나갔다. 영화에 출연했던 남성 동성애자 합창단인 ‘지보이스’는 개막식에서 축하 공연을 벌여 자칫 무거울 수도 있었을 인권 영화제의 흥겨운 면모를 십분 드러내기도 했다.

마지막날에 상영된 문정현 감독의 다큐멘터리 「용산」(2010)은 감독이 지켜본 여러 비극적 사건들을 카메라에 담으며 사회에 대한 무거운 시선을 던졌다. 용산에 치솟은 불길을 본 감독은 어릴 적 목격한 일들을 떠올린다. 그가 따라간 시간의 기억 속엔 민주주의를 부르짖던 대학생의 분신 사건이 있고 이웃집 형이었던 이한열 열사의 죽음이 있다. 과거와 현재를 분주히 오가며 사회의 어두운 구석구석을 짚어내던 감독은 은연중에 오늘날 시민들의 무관심을 꼬집는다. 스크린에는 “자신의 일이 아니다”라며 용산 철거민들의 아픔을 외면하는 현대인들의 모습과 “오늘날 내 자식이 학생 운동을 한다면 무조건 말릴 것”이라 말하는 과거 운동 세력의 모습이 여과 없이 흐른다. 무관심이 곧 세상을 잘 살아가는 지혜가 돼버린 현실에 대한 씁쓸함이 밀려오는 순간이다. 감독은 “사건의 주위를 맴돌기만 하는 내 모습을 담아보고 싶었다”며 그 자신도 결국 무관심한 시민 중 한명이었음을 반성하기도 했다.

작품 속 주인공들의 삶은 우리 일상의 모습과는 어딘가 다르다. 이 차이점은 주인공과 우리의 삶 사이에 심리적인 ‘거리’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주인공과 우리는 밖을 나설 때마다 걷게 되는 또 다른 의미의 ‘거리’에서 어쩌면 매일 마주하는지도 모른다. 영화제의 주제인 ‘나와 당신의 거리’는 곧 나와 당신이 함께 걷는 ‘우리’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번 영화제는 거리를 무대로 활용해 우리네의 간극을 극복하자는 이러한 메시지를 더욱 굵직하게 전했다.

“시민들이 잠시 멈춰 서 부담 없이 영화제에 참석할 수 있길 바랐다”는 인권영화제측의 설명처럼 대학로를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 인권의 현안을 생생히 전하고자 했던 서울인권영화제. 축축히 내리던 빗속에도 객석을 지키며 성원을 보낸 관객들의 열띤 반응은 나와 당신 사이의 거리를 좁히려는 의지가 아직까지 무관심 속에 묻혀있지만은 않음을 보여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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