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류 무협지의 식상한 레파토리들 가운데, 권법의 달인에게 ‘마(魔)‘가 씌워져 신체의 일부가 제멋대로 움직여 주인공을 곤경에 빠뜨린다는 이야기가 간혹 있다. 주인공은 공격의 의도가 없었는데도 주먹이 제멋대로 움직여 사부님이나 사형(師兄)을 두들겨 패려다 무림의 동료들로부터  비난을 받곤 한다.

 

그런데 이런 몽환적인 이야기가 3류 무협지 속의 가상세계보다 오히려 현실세계에서 더 실감나게 벌어지기도 한다.

 

 

 

6년에 가까운 기간에 걸쳐 거대한 법인(法人)이 휘두르는 주먹에 흠씬 두들겨 맞은 사람이 있다. 그의 주변에는 그가 “맞아 마땅하다“며 고소해 할 뿐만 아니라 “더 때리라“고 부추기는 사람도 있었으나, 상당수의 구경꾼들은 그를 동정하여 “그는 결코 맞을 짓을 한 적이 없다“고 말하면서 주먹을 휘두르는 법인을 나무라기도 했다. 그러나 그 주먹의 주인은 “손이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나도 어쩔 수 없다“며, 주먹질을 나무라거나 말리려는 사람들에게 “내가 하는 주먹질은 결코 내 뜻이 아니다“라고 호소하곤 했다.

 

 

 

그때 길을 가던 현자(賢者)가 해결책을 알려줬다. 주먹을 쥔 손등 위에 ‘대법원 판결‘이라는 부적을 찾아 붙이면, 손에 씌웠던 마가 풀려 주먹질이 멈춰진다고. 마침내 때리고 맞던 당사자들과 구경꾼들은 6년을 돌아다닌 끝에 현자가 말한 만병통치의 부적을 발견한 듯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들이 찾아낸 것은 현자가 말한 ‘대법원의 최종판결‘이란 온전한 부적이 아니라, 마력을 완전히 퇴치하기에는 효력이 다소 모자라다는, ‘고등법원으로의 파기환송‘이란 반쪽짜리 부적이었다. 아쉬운 대로 이 반쪽짜리 부적을 손에 붙이기는 했지만, 아직 주먹질이 끝나지는 않았다. 이쯤 되자 구경꾼들 사이에는 의혹이 일기 시작한다. 반쪽짜리 부적이라 해도 그것이 과연 아무 효력도 없는 데 불과한 것일까? 온전한 부적을 찾아서 붙여주기 전에는 주먹질을 결코 멈출 수 없다는 가해자의 주장을 듣는 구경꾼들은 의심하기 시작한다. “어쩌면 그의 주먹질이 애초부터 본의(本意)였던 건 아닐까?“

 

 

 

자연인으로서 개인의 시간은 유한하지만, 법인으로서 조직의 시간은 무한하다. 식민지 시기 선학(先學)들의 어두운 과거를 거론한 이후 홀연 강단에서 내쳐진 김민수 교수는 6년이라는 지루한 법정공방을 개인으로서 버텨야만 했다. 국립대학이라는 특수한 법인의 위치 때문에 송사를 중도포기할 수 없었던 행정소송의 피고측은 향후에도 “소송에 성실히 임할“ 뜻을 밝히고 있다. ‘성실‘이란 말은 ‘이기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일까, 아니면 소송의 신속한 진행에 최대한 협조하겠다는 뜻일까? 지난 6년간 피고측의 대응이 어쩔 수 없는 마력때문이었는지, 본의에서였는지는 멀지 않은 미래에 밝혀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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