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적인 비판을 잠식하는
자기계발서의 위로 논리
'긍정'의 마인드 컨트롤 벗어나
참여와 실천으로 옮기길 바라

정치학과 석사 과정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의 책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베스트셀러로 장기집권중이다.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뽑은 최고의 멘토’를 자처하는 ‘란도쌤’은 이 책을 통해 특유의 다정다감한 문체로 ‘88만원 세대’란 낙인과 ‘스펙경쟁’의 광풍에 지쳐만 가는 젊은이들을 다독여주고 있다.

먼저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자와 젊은이들을 위해 이런 글귀들을 다듬어 온 선생님이 계시다는 사실이. 뒤따른 느낌은 아쉬움이었다. 이 책이 이정도로 각광을 받는다는 것은, 그 동안 우리 사회에 젊은이들에게 공감과 위로의 손길을 내미는 소통의 시도들이 그만큼 부재했다는 반증이었을테니까. 그런데 감사함과 아쉬움의 묘한 공존 상태는 이내 강렬한 ‘기시감’을 선사하며 참을 수 없는 텁텁함으로 귀결되었다. 과연 무엇이 문제였을까?

제목부터 시작하자. 나를 텁텁하게 했던 시작이자 끝이었으니. “아프니까 청춘이다”란 말은 아파하며 고뇌
하는 청춘들의 어깨를 툭 치며 건네는 듯한 말이다. “원래 청춘은 다 그런거야 임마”라는 쿨가이의 한 마디가 연상되지 않는가? 그러고 보니 요즘 이런 쿨가이들의 범람현상이 이른바 대세다. 허구헌날 ‘나도 다 그 고생 해봐서 아는데’라며 젊은이들로 하여금 ‘눈높이를 낮출 것’을 다정하게 강권하는 그 분이 떠오르지 않는가?

여하튼 그 쿨가이들에게 질문을 던져보기로 하자. “청춘은 원래 다 그렇게 불안하고 막막하고 흔들리고 외롭고 아픈 것인가요, 정녕 그래야만 청춘인가요?”, “혹시 도대체 어떤 녀석들이, 어떤 시스템이 우리를 이토록 힘들고 아프게 하는지 알 수는 없나요? 당신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이쯤에서 왠지 쭈삣거리고 있을 것만 같은 쿨가이들에게 ‘대우명제’를 활용한 간단한 질문으로 마무리하는 친절을 베풀어주자. 우린 관대한 청춘이니까. “아프니까(p)청춘인것(q)이라 칩시다. 그렇다면 청춘기를 벗어나면(~q)아프지 않을 수 있는 세상(~p)인가요?”

요점으로 들어가자. 분명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때로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말들만을 구구절절 늘어놓는 것은 사실 결국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은 것과 같다는 것을. ‘위로’라는 ‘당의정(糖衣錠)’으로 예쁘게 포장한다고 해도 결국, “최선을 다해서/긍정적으로/절대 포기하지 말고/(될 때까지)노력하면/모든 시련은 네게 자양분이 될 뿐이니까/(다른 사람은 몰라도)너만은 무조건 될 거야/(내 말이 아무리 진부해도)이번에도 한 번 더 믿어 주리라 믿어”란 자기계발서의 논리가 저변에 흐르고 있는 한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비판의식을 봉합하고 잠식할 뿐이란 것을 말이다.

분명 위로는 절실하다. 끝 모를 무한경쟁에 모두가 지쳐있으니까. 그러나 그 위로의 지향과 귀결이 다시금 이 가혹한 현실을 옹호하며 개인의 노력과 마인드 컨트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라면 제발 이젠 그만 사양하고 싶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질문과 논쟁과 정당한 분노일 뿐, 결코 긍정적 마인드와 노력이 아니다. 이제 ‘긍정의 힘’따위의 주술적 낙관에 갇힌 마인드 컨트롤은 그만하기로 하자. 정녕 컨트롤해내야만 하는 것은 우리들 각자의 감정과 태도가 아니고 우릴 둘러싸고 미쳐 날뛰는 시스템이니까.

진정한 희망은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되뇌며 다시금 내면의 동굴로 침잠하는 자위에서 나오지 않는다. 희망은 결코 대량생산이 가능한 공산품이 아니다. 그 언제라도 다시금 창조해나가야만 하는 유일무이한 종합예술품에 가깝다. 홀로 책 속에만 파묻혀 끙끙 앓는다고 희망이 도출될 리도 만무하다. 눈앞의 부조리를 외면하지 않고 내면의 정직한 분노에 응답할 수 있는 감수성과 실천적 용기를 가다듬어가야만 한다. 이런 우리를 이끌어줄 진짜 멘토는 없을까?

매순간 관악을 둘러싼 강고한 냉소와 허무의 공기를 호흡한다. 그래 그건 그럴 수 있다. 문제는 미래다. 대안은 결국 함께 질문을 던지며 침묵을 깨는 참여와 실천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우리가 침묵을 끝내지 않는다면 침묵이 우리의 미래를 끝낼 것이다. 찬반막론, 부디 나와서 함께 이야기하자. 5·30 비상총회 성사와 법인화에 대한 시끄러운 논쟁의 도래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아프면 아프다고 소리를 질러야 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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