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화는 우리 모두의 문제
구성원으로서 권리 포기 말아야
동지(同志)가 아니더라도
동지(同地)에서 함께 의견 모아야

나는 법인화에 반대한다. 현재의 서울대 법인화뿐 아니라 ‘법인화’라는 개념 자체에 반대한다. 대학 법인화는 자율화라는 명목하에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으로 대학의 기업화를 조장하며 이는 학문과 진리의 구조조정으로, 나아가 교육받을 권리의 구조조정으로까지 이어진다. 대부분의 국공립대는 이 과정에서 도태되고 이로인해 많은 사람들이 교육받을 권리를 박탈당한다. 갈수록 계급화되는 이 사회에서 비록 부실할지라도 계급이동의 유일한 사다리였던 대학은, 공교육은 법인화로 인해 그 자리를 잃을 것이다. 기초학문의 입지는 좁아질 것이며 대학은 교육과 연구의 전당이 아니라 수익창출과 직업인 양성을 위한 기관이 될 것이다.

나는 법인화에 반대한다. 법인화는 서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국립대의 문제이며 나아가 대한민국 고등교육의 문제다. 대한민국의 문제다. 그렇기에 손놓고 가만히 있는 것은 국민으로서도, 서울대 구성원으로서도 직무유기다. 다만 혼자 생각하는 것에 멈춰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신문에 글을 쓰는 것으로 바꿀 수 없다. 총학만으로는 안된다. 공대위로도 모자라다. 몇몇 집단에 속해서 개인적인 의견을 내는 것으로는 본부가 쳐둔 소통의 벽을 넘어서기에 부족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여야 한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법인화에 반대하지 않아도 좋다. 그렇지만 최소한 당신이 구성원으로서의 권리를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지난해 12월의 법인화법 날치기 통과에 대해 말하자면 입이 아플 지경이다. 이후 법인화 추진의 대표기구인 설립준비위는 학생, 직원 등의 주체가 포함되기는커녕 구성원의 의견을 묻는 절차도 없이 구성됐으며 추진단, 실행분과위 역시 마찬가지의 절차를 밟았다. 불만이 제기되자 본부는 “분과위에 학생대표를 포함시키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상위기구인 설립준비위나 추진단이 아닌 세부적 정관을 만드는 하부 조직인 분과위에 참여하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또 설령 67명으로 구성된 분과위에 학생 대표가 한명쯤 포함된다고 해서 과연 당신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을 것인가. 법인화에 반대하지 않는다면, ‘법인 서울대’의 미래에 당신의 의견을 반영시키러 나서길 바란다.

당신이 서울대 법인화를 국가적 문제로 확대시키는 내 생각이 ‘오버’라고 생각해도 좋다. 다만 등록금을 내는 구성원으로서 혹은 적어도 교육 서비스의 소비자로서 당신의 권리를 포기하지 말라. 추진단이 말한 대로 “법인화 추진에 대한 좋은 의견이 있을 경우 법인설립추진단에 메일을 보내”는 것으로는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다. 교수 150명의 성명서에도 본부는 꿈쩍하지 않았다. 구성원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 지금의 상황은 분명 비정상적이지만 현실이다. 현재의 법인화법에는 재정 마련 방식부터 시작해서 의사결정구조까지 분명 문제가 많다. 서울대의 자율과 발전을 원하는가, 그를 위해서라도 아크로에 모여야 한다.

나는 법인화에 반대한다. 이제까지 광장에 모이던 사람들은 나와 같은 의견을 가진 동지(同志)들 뿐이었다. 당신과 나는 많은 부분에서 다른 생각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함께해야 각자의 의견을 말할 수 있다. 같은 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당신과 나는 ‘우리’가 된다. 그리고 우리가 된 당신과 나는 더 이상 힘없는 개인이 아닌 역사를 바꾸는 주체가 된다. 비록 우리는 ‘동지(同志)’는 아니지만 동지(同地)에서 모여야 한다.

나는 오늘 비상총회에 간다. 1,700여명의, 아니 그 이상의 사람들을 같은 곳(同地)에서, 아크로에서 만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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