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많이 웃으세요”

▲ © 김준규 기자

약속장소인 그의 집무실, 수북이 쌓인 책들이 눈에 띈다. 그 너머로 반갑게 기자를 맞는 그의 웃음 때문일까, 중년인 그의 첫인상은 예상외로 젊다.


「뿌리깊은 나무」 기자, 「중앙일보」 정치부 차장으로서 언론 권력의 중심에서활약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연설담당 비서관으로서 정치 권력의 핵심에 있었던 그이지만 정작 고도원이란 이름을 대중들에게 알린 것은 바로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통해서다.

“‘고도원의 아침편지’는 마음의 비타민이에요. 먹지 않아도 큰 탈은 없지만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게 비타민이잖아요.” 그가 독서하며 밑줄 그어 놓았던 인상적인 글귀에 간단한 코멘트를 덧붙여 만든 짧은 글을 주위 몇몇 사람들에게 이메일로 배달한 것이 ‘아침편지’의 시작이 됐다. 책의 한 구절이 사람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다는 믿음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하지만 그는 “무엇보다도 연설 담당 비서관 시절의 ‘숨막힘’에 스스로 숨통을 틔우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외교적 수사가 가득한 공적인 글 속에 묻혀 살면서 아침편지는 자신의 지적 탈출구였던 것이다.

“신선하다는 사람이 많았죠. 처음엔 몇 안 되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그 사람들이 또 추천하기가 거듭되면서 상상도 못했던 반응이 일더군요.” 무서운 속도로 퍼지기 시작한 아침편지는 시작된 지 2년째인 올해 8월 수신자 100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2년 내내 하루 평균 1400여 명의 새 가족이 등록해야 나오는 숫자다. 이를 두고 어떤 이는 ‘행복 바이러스’라고도 한다.

그렇지만 이를 두고 “정계로 진출하기 위한 포석이 아니냐”라는 의혹에서부터 “청와대에서 그렇게 한가하냐”는 비아냥거림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그저 ‘아침 편지’의 순수성을 지키려 노력해왔다”고 담담히 말한다. 올해 4월부터 「한국일보」, 「코리아헤럴드」 1면에 연재되는 등 ‘아침편지’는 이제 언론 매체를 통해서도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또 하나의 문화 현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는 매일 달리면서 생각의 거리를  정리하고, 다듬는다. 스스로 아침편지를 ‘달리며 내는 맑은 물방울’이라고 표현할 정도니 달리기는 그의 글쓰기의 동반자라 할 만하다. 매주 토요일엔 ‘아마동’(아침편지 마라톤 동아리) 사람들과 함께 탄천가를 달리기도 한다.

그는 “글쓰며 산다는 건 피를 팔아서 연명하는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의 삶에서 글이란 ‘아침편지’처럼 언제나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장차 목회자가 되길 바랐던 목사였던 아버지의 엄한 교육 속에서 자란 그는 그 가르침 중 하나가 독서훈련이었다고 회상한다. 특히 매를 맞으며 읽었던 『역사의 연구』와 같은 책들은 평생 글쓰기의 밑천이라고 한다. 이후 70년대 유신 체제 하에서 연세대 학보사 기자로 활동하던 중 필화 사건에 휘말려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제적되기도 했던 그는 누구보다 글이 갖는 힘이 얼마나 큰지, 글에 대한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지 안다. 앞으로 한글의 맛을 한층 더 살리는 글을 쓰고 싶다는 그는 “경박한 언어가 횡행하는 인터넷 문화가 안타깝다”며 “글쓰기에는 훈련과 공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느 때과 마찬가지로 ‘고도원의 아침편지’는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분명 ‘고도원의 아침편지’는 희망적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억지로 그 희망을 미화하지 않는다. 고도원씨는 이를 ‘비전’이라고 표현한다. 아마 그것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아침편지를 열어보도록 하는 원동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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