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학생 의복 변천사

여학생들의 옷차림에는 남학생들과 구분되는 몇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특히 성 역할의 구분이 뚜렷하던 1970년대 초반까지는 옷차림이 완전히 달랐다.

 

 

이혜수 명예교수(가정과ㆍ45학번)는 “무릎길이 검정 치마와 하얀 저고리, 단발머리의 학생다운 옷차림”으로 학창시절을 회고한다. ‘가난한 시절’이라 남대문시장에서 구제품 양복치마를 구해 입었다고 한다. 40년대 말에는 파마가 유행하기 시작했으나 교정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50년대에도 여학생들의 옷차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검정 치마와 풀을 빳빳이 먹인 하얀 저고리와 흰색 목양말, ‘간호장교 신발(모카신 스타일의 굽 낮은 구두)’이 보편적이었다. 박병래씨(가정과ㆍ50)는 “가끔 ‘맘보바지’를 입고 ‘막파마’를 한 학생들이 있었으나 극소수였고, 대다수 학생들에게는 차분히, 얌전하게 옷을 입는다는 자부심이 있었다”고말했다.

 

 

55년에는 서울대 모자와 서울대 뱃지가 생겨, 70년대 중후반 점점 뱃지를 달지 않게 될 때까지 학생들은 모자와 뱃지를 착용했다. 교복은 뱃지보다 생명력이 훨씬 짧았다. 조소과 60학번으로 졸업 후 건축학과 66학번으로 재입학한 김화련씨(역삼디자인연구소장)는 “60년 입학 당시에는 교복을 맞추긴 했으나 거의 입은 적이 없고, 66년 입학식 때는 교복을 입은 학생이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교복은  ‘플레어 스커트’와 재킷으로 구성된 투피스의 디자인이었는데 대부분이 학생이 유행이 지난 ‘올드 패션’으로 여겼다고 한다. 대신 무릎 위 스커트의 단정하고 무난한 옷차림으로 학교를 다녔다. 

 

 

75년 관악캠퍼스에서 첫 입학식이 있었고, 여학생의 교복이 점차 사라지면서 여학생은 ‘남학생과 분명히 구별되는 그룹’과 ‘남학생과 구별되지 않는 그룹’으로 나뉘기 시작했다. 특히 당시 유행하던 장발을 한 남학생과 단발머리에 무채색의 활동적인 옷을 입은 여학생을 외모로 구분하기는 어려웠다. 윤희원 교수(국어교육과ㆍ75)는 “최루탄 냄새를 맡으면 뛰어야 했고, 교내 차량 통행이 금지됐던 그 때는 움직이기 편한 옷이 당연시됐다”고 설명했다. 아주 드물게 유행하던 미니스커트나 판타롱 등을 입는, ‘남학생과 분명히 구별되는 그룹’이 있긴 했지만 당시 대학가의 ‘시국 걱정’으로 그런 학생은 아주 드물었다. 윤 교수는  “시내에 위치한 다른 학교 여대생들과 달리 우리에게는 유행이라는 것이 없었다”고 말했다.

 

 

80년대 중반까지 이런 분위기는 이어진다. 정진화씨(교육학과ㆍ79)는 “외모에 신경쓰는 것은 의식 없는 행동으로 받아들여졌다”고 설명했다. 특히 “여성해방 의식의 영향으로 옷차림에서도 ‘여성적인 것’은 배제돼, 화장을 하고 여성스런 치마를 입고 다니는 일부 여학생들은 선망과 함께 질시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경제가 풍족해지고 사회 분위기가 달라지면서 서울대 여학생들도 옷을 좀더 자유롭게 입기 시작한다. 캠퍼스에서도 유행 패션을 흔히 볼 수 있고, 개성에 따라 입고 싶은 옷을 입는 것은 남ㆍ녀 학생들 모두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