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생 인터뷰] 최신영(국어교육과, 68학번)

 

사진: 하태승 기자 gkxotmd@snu.kr

불치하문(不恥下問)’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이 수치(羞恥)가 아니라는 뜻으로 누구에게든지 물어서 식견을 넓히라는 말이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불치하문’을 실천해 마침내 2011년 학사 졸업을 앞둔 선배가 있다. 바로 68학번 최신영씨(국어교육과)다.

직장생활로 바쁜 그를 어렵사리 만난 곳은 업무장소 중 하나인 삼성역 근처였다. “워낙 바빠서 29일에 있을 졸업식도 참석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라며 껄껄 웃는 그는 두 아들과 손주까지 둔 영락없는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겪을 만큼 겪었을 그가 다시 학업을  다시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학교를 떠나 사회에서 보낸 37년

그는 서울대가 지금의 대학로에 위치했던 1968년 당시 국어교육과에 입학했다. 가난한 공무원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학비를 아르바이트 등으로 혼자 충당해오던 그는 결국 가계를 위해서 학부생활을 중단하고 독립할 수 있는 터를 잡기로 결심했다. “그때는 공부를 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못 한 학생들이 허다했지.” 1년 반 만에 학업을 중단한 그는 우선 사회생활의 시발점으로 군 생활을 시작한다. 1970년 초 장교로 입대해 중령에 이르기까지 27년간 최씨는 군사 정보를 다루며 당시 막 보급되기 시작했던 컴퓨터를 배울 수 있었다. 제대 후에는 각종 시뮬레이션, 모의훈련 등에서 배웠던 정보 처리 능력으로 IT업계에 취직해 10년간 직장생활을 이어갔다.

최신영씨는 20년간 배운 기술로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를 다니면서 생계를 꾸려나가는 데는 특별히 아쉬울 것이 없었지만 배움에 대한 그의 열정은 충족되지 못했다. 그는 “학업을 중도에 포기한 것이 항상 마음의 짐이었다”고 말했다. 문학, 특히 『플루타르크 영웅전』, 『오디세이』, 『일리아스』 등에 관심이 많아 지원했던 국어교육과 공부를 마치고 싶었던 것이다. 글쓰기가 좋아 군 생활을 하면서도 종종 글을 썼다는 그는 2007년 복학에 성공하게 된다. 일반 휴학과 다른 군 휴학이었기에 복학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는 1970년 휴학 이후 37년 만의 귀환에 소감이 남달랐다고 한다. “무엇보다 학교가 너무 좋아졌더라고. 왜 이렇게 넓어졌어?”

힘들게 두 마리 토끼를 잡다

하지만 바쁜 직장생활과 학부생활을 병행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랜 군 생활로 체력을 다진 그라도 직장업무와 학과 과제를 모두 해내기는 벅찼다. 심할 때는 하루 2시간만 잠을 자는 경우도 있었다. 이 만학도(晩學徒)는 “한번은 내가 워낙 헐레벌떡 수업에 들어오는 게 안쓰러웠는지 교수님이 출석을 마지막에 불러 주시더라”며 웃었다. 출장과 겹치는 날에는 수업에 들어가고 싶어도 빠질 수밖에 없었는가하면, 업무 시간을 줄이기 위해 직장 봉급을 50% 삭감하기도 했다. “최대한 직장 업무 시간과 안 겹치려고 하다 보니 일주일에 이틀 동안 모든 수업을 들어야 했지.” 한 학기에 10학점 정도를 들을 수밖에 없었던 그는 결국 5년 만에야 졸업한다. 최씨는 사실 컴퓨터공학과도 복수전공 하려고 했으나 실습이 많은 공대 수업 특성상 포기해야 했다고.

주변사람들의 만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들 놀라지. 그 나이에 학교 다녀서 뭐하냐고.” 그도 처음에는 주변 학생들을 거북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지, 학과 공부를 따라갈 수는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아들, 딸 뻘 학생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간 덕분에 친밀한 관계를 쌓을 수 있었다. 오히려 인생의 선배로서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했다. “조 모임은 절대 빠지지 않았어. 과제 끝나고 뒤풀이하면 내가 다 사주기도 하고 진로 걱정이 있으면 상담도 해줬지.” 그는 결코 ‘경로우대’를 바라지 않았다. 타 학생들과 똑같이 공부하고 정당하게 성적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자신보다 어린 교수님들도 있었지만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보고 교수님이 불편해하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스럽게 처신했다고 한다. 그는 “내가 좋아서 배우는 건데 요행을 바라는 건 말이 안 돼지”라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의 오랜 사회생활 경험은 오히려 학과 공부에 도움이 됐다고 한다. 현실 경험이 있다 보니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다른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교원 능력 평가의 경우 인사관리를 다루는 회사생활 경험 덕분에 이해가 쉬웠다. 역으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실질적인 내용보다도 공부하면서 갖춰진 학습 자세와 태도가 회사생활에서도 이어지다보니 각종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일도 더 잘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

최신영씨와 68학번 동창이었던 우한용 교수(국어교육과)는 “사회생활을 하다가 자아 실현을 위해 다시 학교로 돌아온 그가 평생교육 시대를 살고 있는 다른 학생들에게 좋은 귀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말 그대로 만학(晩學)을 실천한 그는 후배들에게 해내겠다는 의지의 중요성을 당부했다. 그는 “사실 직장생활과 함께 공부를 하면서 정말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스스로 해내고 말겠다고 생각하니 실제로 해냈다”고 말했다.

한편 최씨는 요즘 학생들이 너무 공부에 치여 사는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그는 “학점관리에 몰두하다보니 사회와 교류하는 시간이 부족해 보이더라”며 “동아리 활동, 봉사 활동 등 학외 활동에도 활발히 참여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최신영씨는 앞으로 자신의 실무인 컴퓨터에 대해 더 깊이 공부하기 위해 컴퓨터공학 전공으로 석·박사 과정을 밟을 예정이라고 한다. 끝없는 배움의 길을 찾아 돌아온 그의 행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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