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 3일간의 기록

 

제주 해군기지 건설 문제는 예정지 선정 당시부터 날치기 의결의 의혹을 안은 채 시작됐다. 환경영향평가를 시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공사를 시작하고 여론조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등 절차상의 문제점도 많이 지적됐다. 이에 반발한 주민들이 반대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주민투표를 실시한 결과 투표 참여자 중 반대 의견이 94%로 주민들의 대부분이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해군은 적법한 절차를 밟았다며 논의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이에 『대학신문』은 지난달 14일(일) 제주 강정마을을 다녀왔다. 당시 600여명의 경찰병력이 제주에 투입돼 긴장이 고조됐으나 무력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2주 후인 지난 2일, 강정에 또다시 대규모 공권력이 동원돼 강정마을과 정부와의 갈등은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치닫고 있다.  450여명의 경찰병력을 투입, 중덕해안에서 주민과 운동가들을 몰아내면서 해군은 기지 건설 재착공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 지난 2007년 제주도에 해군기지 건설이 결정된 이래로 강정마을은 정부와의 끝이 보이지 않는 투쟁을 하루하루 이어가고 있다.

 

 

지난 6월 공사가 중지된 이래로 포크레인과 크레인은 공사 기자재가 잔뜩 쌓인 공터에 덩그러니 버려졌다. 해안가에는 해상공사에 필요한 트라이포트(삼발이)만이 흉물스럽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공사판 너머로 범섬의 모습이 보인다.

 

강정마을로 들어가는 초입에 모인 경찰들. 올레길 중에서도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혔던 강정마을은 해군기지 건설로 올레길이 폐쇄되면서 더 이상 관광객들이 찾지 않는 곳이 됐다.

 

 

 

첫째날

이 작은 마을은 죽은 듯한 적막에 잠겨 있다. 땡볕이 내리쬐는 골목골목마다 경찰 수십명이 서성이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주민들은 수심에 찬 얼굴로 삼거리의 천막에 모여 ‘펜스 설치’며 ‘급습’에 대해 낮게 웅성거렸다. 주민들은 “마을 주민 다수가 서울 시위를 위해 자리를 뜬 사이를 노려 경찰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중덕해안은 해군이 매입한 토지 중 펜스를 치지 못한 유일한 구역이다. 주민과 운동가들은 비닐하우스로 만든 캠프에서 먹고 자면서 해군이 중덕해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키고 있다. 해안선을 따라 평화를 외치는 깃발이 나부끼고 바닷바람에 녹슨 철제 군함 모형이 삐걱였다. 아이들이 검은 돌이 가득한 해변 위를 깡충거리며 놀고 있었다. 해변에서 소라 무더기를 발견했다. 누군가 푸른색 소라를 주워다 ‘강정’이라고 쓰려던 모양이었다.

둘째날

매일밤 강정에서 열리는 촛불문화제에 참가했다. 처음엔 몇몇 마을 주민들만이 외롭게 밝히던 촛불은 점차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기나긴 기원의 행렬을 이뤘다. 행사에 참가한 엄마와 딸들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내내 웃었다. 쉽게 찾아보기 힘든 강정의 평화로운 한때다.

강정마을 외부의 많은 사람들은 간절히 평화를 원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침묵하고 있다. 그들은 해군의 군사력 강화라는 국가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강정에서 살아가는 주민들, 혹은 그곳에 뿌리내린 생명들의 희생은 감수해야 할 대가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러한 외부의 철저한 타자화와 무관심에도 자신들이 평생 살아온 이 작은 어촌마을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힘겨운 노력은 촛불처럼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셋째날

마을에 투입된 600여명의 경찰 병력이 강제진압을 시도할 것이라는 소식이 밤늦은 시각 트위터를 통해 불붙은 것처럼 퍼져나갔다. 마을 주민과 시민운동가들은 중덕해안을 지키기 위해 해군기지 앞으로 모여들었다. 몇사람은 서울에서 당일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다. 마을 사람들도 해군도 숨을 죽이고 이후의 사태를 주시하고 있었다.

새벽녘 여론이 급격히 악화되자 조현오 경찰청장은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제주 문제에 평화적으로 접근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주민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작은 승리의 기적을 꿈꾸었다. 하지만 기자가 서울로 돌아온 지 2주 가량 지났을 무렵 경찰은 약속을 뒤집고 중덕해안에 공권력을 투입했다. 주민과 운동가들이 연행되었으며 펜스 설치가 완료되고 해군은 기지 건설 재착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상황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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