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화 추진을 중단하고 학내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들을 것을 요구하며 시작한 점거가 끝난 지 두 달이 지났다. 『대학신문』은 비상총회부터 점거가 끝나기까지 학생사회에 새롭게 드러난 특징이 무엇인지 분석해보고자 한다.(사진: 『대학신문』사진부)

위태로웠던 학생사회 공론장

비상총회 이전의 학생사회는 학생들의 무관심으로 침체된 분위기를 보였다. 총학생회(총학) 선본 발족식이 있었던 아크로에는 선본원과 연단에 선 회장 후보 외엔 다른 학생들을 찾아보기 어려웠고 법인화 토론회에도 일반 학생들의 참여율은 저조했다. 학생들의 무관심은 학생회 구성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엔 20년 만에 사회대 학생회 선거가 처음으로 무산되는 등 학생사회는 위태로운 모습을 보였다.

몇년전부터 학생들은 시장주의 비판이나 남북 관계 개선을 주장하는 그들과 다른 ‘학생사회’의 담론을 멀리했고 어려워했다. 추상적이고 거시적인 의제에 지친 학생사회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생활 정치’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의제를 원했다. 이러한 학생들의 요구는 51대와 52대 총학생회 선거에서 연이어 ‘실천가능’ 선본을 당선시키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두 번의 비권 총학 집권 아래에서도 학생들은 함께 이야기할 공간을 경험하지 못했다. 여전히 학생회는 참신한 의제 설정이나 공론의 장 마련 등 ‘학내 정치’가 아닌 정해진 정책의 일방적인 추진만 반복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정으로 얼룩진 총학 선거는 학생들의 학내 정치 대표 집단에 대한 불신의 깊이를 더했다. 제53대 총학 선거 과정에서 도덕성 등 자격 논란이 불거지자 학생들은 학생자치를 주도하는 세력에 대한 실망감을 느꼈고 학생들은 실제로 총학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무능과 권력욕, 부패 등을 꼽았다(『대학신문』 2010년 11월 15일자).

하지만 학생들이 학생사회 구성원 간의 공론의 장을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제53대 총학 선거의 화두에는 도덕성뿐 아니라 ‘학생사회 공론장 재건’도 포함됐다. 실제로 유니온 디베이트 개최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며 학생사회 재건과 공론장의 적극적 확보를 약속했던 「Action! AGAIN」 선본은 많은 학생들의 지지를 받으며 당선됐다. 당선 후 총학생회장 지윤씨(인류학과·07)는 “총학 선거는 단순히 한 명의 대표자를 뽑는 과정이 아니라 학생들이 직접 참여해 의견을 모으는 경험을 쌓아가는 것”이라며 “학생들이 자치가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직접 경험할 수 있게 도울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모두가 모였던 6월의 공론장

정족수를 채우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비상총회는 2,000명이 넘는 학생들의 참여로 성사됐다. 이렇게 학생사회가 결집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학생들의 의견 표출이 법인화 진행에 반영되지 못한 것이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2009년 총투표와 각종 시위 등에서 드러난 학생들의 요구는 ‘법인화 추진엔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학생처의 통보 메일 한 통으로 ‘기각’당했고 학생들은 결국 점거를 선택하기에 이른 것이다. 비상총회 성사 당시 사회대 학생회장 김재의씨(사회복지학과·06)는 “학생들을 아크로로 모이게 한 요인 중 하나는 대화의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 본부의 고압적 태도”라고 말했다.

민주적 절차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던 ‘설립준비위 해체’라는 의제도 비상총회 성사에 기여했다. 인문대 학생회장 아로미씨(미학과·08)는 “이번 비상총회와 행정관 점거 등 일련의 사건에서 다양한 생각을 가진 학생들이 있었지만 법인화 과정에서 발생한 절차적 비민주성에 대해선 모두 한 목소리를 냈다”며 설립준비위 해체라는 의제도 학생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동력이었다.

학생들을 한곳에 모을 수 있었던 또 다른 요인은 아크로나 본부와 같은 물리적 구심점이었다. 행정관 점거에 참여했던 석민애씨(소비자아동학부·09)는 “의사 소통이 부재하거나 사안에 대한 대의가 모이지 않은 이유는 학생들이 의사 표현에 소극적인 이유도 있으나 공론장이 실재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해서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이번 비상총회는 단순히 임시 의사결정기구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학생사회 공론장의 구체화를 이뤄냈고 행정관 점거의 경험은 침체됐던 전반적인 학생사회 자치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공론장 형성의 새 주체

이렇게 여러 가지 요인으로 모인 학생들은 학생사회에 새로운 성격을 지닌 공론의 장을 펼쳤다. 비상총회와 행정관 점거를 통해 나타난 새로운 공론의 장에는 기층단위의 활발한 움직임이 있었다. 비상총회에 참가했던 학생들 중 상당수는 소속 과반 학생회 등 자치단위를 통해 참석했다. 비상총회 성사 후 농생대 학생회장 박수상씨(동물생명공학부·08)는 “단과대 차원의 노력도 있었지만 기층 단위에서의 참여 없이는 이번 비상총회를 성사시키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러한 참여의 배경에는 각 단위에서 비상총회의 내용에 대한 토론 등 학생들의 적극적 활동이 있었다. 실제로 자연대 학생회가 점거 불참 의사를 밝히자 이에 반발한 생명과학부 학생회는 자연대 학생회를 규탄하며 점거에 참여하겠다는 자보를 붙이고 점거 참여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한편 새 공론장에 참여한 학생사회 구성원은 기층단위만이 아니었다. 행정관 점거 때 참가 단위가 없는 일반 학생들을 위해 결성된 ‘원자모임’은 특정 정치 조직 소속이 아닌 일반 학생들의 주도로 꾸려졌다. 원자모임 참가자 방빈규씨(원자핵공학과·10)는 “원자모임 결성은 이전 공론장과는 다르게 특정 단체 소속이 아닌 다수의 학생들이 점거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며 “원자모임 깃발 제작 등 모든 부분이 원자 학우에 의해 이뤄졌고 점거가 지속되자 총학에서도 한 단위로 인식할 만큼 원자모임은 여론 집단으로서의 역할을 수행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특정 정치 집단이나 기존의 틀에 국한되지 않는 새로운 의견을 제시할 수 있었다.

이런 원자 모임에서 볼 수 있듯 학생들은 의무감이 아니라 법인화 재논의에 대한 의지로 점거에 동참했다. 이처럼 자발성을 등에 업은 새로운 공론장은 이전에 있었던 비상총회나 행정관 점거와 대조적이었다. 2002년 점거 당시 법대 D반 학생회장이었던 정도원씨(법학부·07년 졸업)는 “당시 비상총회에서는 행정관 점거를 결정하는 단계를 총운영위원들의 토의로 대체하는 등 총의를 진전시키는 과정에서 지도부의 발언권이 상당히 컸다”며 올해 있었던 비상총회와 행정관 점거가 보여준 자발적인 성격과 대조되는 과거의 총회 모습을 지적했다.

 

공론장이 가진 새로운 모습

이러한 상황에서 진행된 학생사회의 집합은 단속적(斷續的)이면서도 자유롭고 탈권위적인 특성을 보였다. 새로운 학생사회 공론장은 자발성에 상당 부분 의존했고 그 자발성은 꾸준하지 않아 공론장은 단속성을 지니게 됐다. 실제로 점거는 기말고사 기간과 방학을 거치며 그 동력을 잃어갔고 전학대회의 점거 해제 결정에 큰 영향을 줘 새로운 학생사회의 한계로 지적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단속성은 형식이나 시간, 장소는 다르지만 같은 의제를 계속해서 다룬다는 점에서 새롭다. 실제로 행정관 점거 이후 ‘총장실 프리덤’의 안무를 따라하던 학생들은 ‘본부 라디오’를 통해 다양한 생각들을 나누고 지금은 법인화법 폐기 투쟁을 위한 앨범인 ‘반지성 2집 프로젝트’를 준비중이다. 이러한 행동들은 ‘설립준비위 해체와 민주주의 수호’라는 같은 주제를 논의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하다. ‘반지성 2집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있는 조영진씨(국어교육과·09)는 “지금의 학생사회 공론장은 그 성격이 변모해 단속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행정관 점거 해제로 공론의 형성이나 의사 표출이 중단될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며 “학생사회의 구성원인 일반 학생들도 계속해서 여러 가지 형태로 법인화에 대한 의사 표현을 이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학생사회는 기층단위와 원자를 아우르는 다양한 생각을 가진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투쟁적이거나 급진적인 과거의 의견 표출 방식의 기준에서 탈피한 의견 표출 방식들을 보여줬다. 과거 일반 학생이 공감하기 어려운 날선 자보들이 붙었던 이전 점거 농성장과는 달리 이번 점거 현장은 시험공부를 하는 학생들과 총장실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 유머 섞인 패러디물들로 가득했다. 비상총회와 행정관 점거는 비단 의견 표출 방식에서의 변화만이 아니라 ‘축제적’인 성격을 띠며 의사 표현 자체만으로도 가치를 지니는 새롭고도 본질적인 변화를 보여준 것이다.

또 이전에 비해 원자 학우의 참여가 많아지고 기층 단위의 목소리가 커지며 총학생회가 총의를 이끌어 나가는 방식에도 변화가 있었다. 비상총회에서는 표결 이전에 5시간이 넘는 논의 과정이 있었고 본부에서는 수차례의 전체 토론을 통해 많은 토의가 이뤄졌다. 서울대법인화반대공동대책위원회 상임대표 최갑수 교수(서양사학과)는 비상총회 당시 “이번 비상총회에서는 총학생회장이 모든 절차를 직접 설명하고 50인의 동의만 있으면 즉석에서 수정동의안 제출을 가능하게 했다”며 “이같은 탈권위적이고 민주적인 모습은 향후 학생운동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 것”이라 평가하기도 했다.

비상총회와 본부 점거에서 나타났던 공론장적 성격은 이렇게 새롭고도 특징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이러한 공론장의 모습에서 학생들은 학생사회 재건의 방법을 찾으려 하고 있다. 이러한 학생사회에서 발견된 가능성이 앞으로도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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