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권력에 의한 탄압은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것
'사람' 요구하는 변화의 흐름에
조심스럽게 함께 해보길

백수향 편집장
“그녀를 만나게 해달라.”

올 여름은 종일 비가 내렸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 쏟아지는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하는 광경은 난생 처음이었다. 전국 40여개 지역에서 올라온 185대의 버스와 93개 중대 7천명의 전.의경, 사람들의 애원과 그 앞을 메운 견고한 차벽. 그런 부산의 모습은 생소하기 그지없었다.

일전에 집회 한 번 가본 적이 없었다. 사회의 문제는 누군가 시정하고 있을 것을 은연 중에 믿고 있었다. 나에게 노동자는 생활의 범위가 다른 타자였고 활동가는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여름 버스에서 만난 철도청 해고자들은 그저 주변에 흔한 동네 아저씨였다. “학생이 무슨 돈이 있겠냐”고 웃으며 학생들에게 밥을 사줬고 버스 안에서 유행에 한껏 처진 노래를 구성지게 불렀다. 나는 그들에게서 문제는 누구한테나 일어날 수 있음을 배웠다. 그렇게 도착한 영도에서 한 무리의 군중 속에 섞여들었다. 함께 걷고, 한 목소리를 내고, 최루액으로 아린 눈을 물로 씻어내던 사람들의 얼굴을 봤다. 그날밤 나도 더 이상 사회의 문제로부터, 공권력의 탄압으로부터 남이 아님을 알았다.

“살려주세요. 지금 아주 위험한 상황입니다.”

여름은 온종일 시끄러웠다. 어느날인가 트위터를 시작했다. 명동 3구역 철거 공사로 세입자와 용역과의 싸움이 극에 치닫고, 강정마을에는 조현오 청장의 발언과 달리 경찰 병력이 들어왔다. 그간 모르고 지냈던 수많은 현안들이 한꺼번에 곪아터지듯 하루에도 몇 번씩 시급해지는 노동자와 철거민 사태로 트위터 타임라인은 어지러웠다.

고맙게도 긴 계절동안 사회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다. 사람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카페마리에는 용역들이 침탈해 올 때마다 100여명의 사람이 모였다. 노래를 하고 책을 읽고, 누군가는 먹거리를 날라왔다. 강정엔 평화의 비행기가 출발했고, 광화문에선 소금꽃밭 투쟁이 열렸다. 공무원도 군인도 찾아보지 않고, 침수피해 가구에 주어지는 보상금조차 지급되지 않았던 구룡마을에는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복구작업을 거들었다.

그 변화의 모체는 오로지 ‘사람’ 하나뿐이었다. 카페마리에서 누군가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람이다. 여기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줄 사람말이다”라고 올린 트윗 문구처럼 말이다. 그 작은 움직임들은 이내 큰 흐름을 만들어냈다. 희망 버스는 크레인 위의 노동자를 만났다. 한진중공업의 조남호 회장은 직원들을 대량 해고한 무책임하고 무능한 경영인으로 청문회에 서야 했다. 또 지난달 27일에는 ‘용역 경비 폭력 금지법’이 발의되기도 했다.

긴 여름의 어느 하루 동해에 갔다. 수년 만에 보는 바다는 거칠었고 높은 파고에 몸을 가눌 수 없었다. 그런 중 우리를 유쾌하게 했던 발견은 바다의 더 깊숙이 들어가 물살에 몸을 맡길 때만이 몸을 세울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는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 하나 뿐”이라고 말했던가. 불편하고 부당하면 변화해야 한다. 그리고 그 변화의 흐름 속에서 나를 세울 수 있는 방법은 흐름에 함께하는 것뿐이다. 굳게 서 있는 무관심이나, 1970~8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무차별적인 진압, 바뀌지 않는 정리해고법이 그러했듯이 변화하지 않는 것은 늘 사회가 요구하는 변화의 흐름을 역류해왔다.

아직도 우리는 위태로운 날 위에 서 있다. 지난 3일(토) 새벽에도 카페 마리엔 크레인이 들이닥쳤고, 강정마을에선 600여명의 경찰 병력이 시위대를 강제 해산 시키고 펜스를 쳤다. 노사 협의한 유성기업에서마저 몇몇 조합원들이 공장관리자와 용역경비에 의해 현장 출입을 통제당하고 있다. 그리고 아직도 85호 크레인 위에는 사람이 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여름이 다하고 새학기다. 필경 많은 일들이 일어날 요즘 아직 멈춰있다면 조심스럽게 뛰어들어도 좋다. 변화는 생각보다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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