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다 같은 번역이 아냐!
번역, 다 같은 번역이 아냐!
  • 정진욱 기자
  • 승인 2011.09.18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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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욱동ㅣ글항아리ㅣ304쪽ㅣ1만5천원

출판되는 신간 세 권 중 한 권이 번역서인 것을 놓고 본다면 우리는 가히 번역서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같은 번역서의 범람 속에서, 우리는 그 번역서 출간의 핵심인 ‘번역’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한국어 번역의 기술적 문제와 번역에 대한 저자의 철학을 담아낸 『번역의 미로』는 한국어 번역 사례를 소개한다. 서양 번역 이론이 아닌 한국적 번역 이론의 모색을 목표로 하는 이 책은 한국 번역계와 독자들이 주목할 만한 책이다.

저자 김욱동 교수(한국외대 영어통번역학과)는 번역이 개화기 한국에 미친 영향에 대해 이야기한 『번역과 한국의 근대』, 『번역인가 반역인가』의 저자이며 『앵무새 죽이기』, 『위대한 개츠비』, 『호밀밭의 파수꾼』 등 고전의 역자다. 김 교수는 우리 번역문화에 대한 체험적 보고서로 평가받는 이전 저작 『번역인가 반역인가』를 통해 직접 체험한 한국 번역문화의 현주소와 번역문화가 제대로 자리잡을 수 없는 출판계의 구조적인 문제를 짚어낸 바 있다. 저자는 『번역의 미로』를 통해 번역가이자 번역학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다양하고 구체적인 실례를 바탕으로 번역 그 자체와 번역 이론에 대해 자세히 살펴본다.

저자의 소개에 따르면 번역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다. 원천 텍스트와 가장 가까운 순서대로 행간 번역, 주석 번역, 축역, 의역, 번안, 창역이 있다. 과학과 기술 정보 등을 번역하는 기술 번역은 축역(逐譯, 외국어로 된 말이나 글을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에 충실하게 번역), 문학작품을 번역하는 문학 번역은 의역(意譯, 단어나 구절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고 전체의 뜻을 살려 번역)으로 번역하는 것이 보통이다. 원천 텍스트에 대한 충실도에 따라 축역과 의역 가운데에 위치한 ‘균형 잡힌 번역’에서 축역에 가까운 것은 ‘충실한 번역’으로, 의역에 가까운 것은 ‘관용법적 번역’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또 저자는 외국 문학의 한국어 번역 사례를 들어 텍스트를 있는 그대로 번역하는 ‘이국화’ 번역 방법 대신 텍스트가 번역될 언어의 문화에 맞게 바꿔 번역하는 ‘자국화’ 번역 방법을 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오류가 많은 번역으로 화제가 됐던 『다빈치 코드』는 낱말과 낱말을 일대일로 대응시켜 번역해 우리말로 읽을 때 그 의미가 다가오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번역 역시 틀린 부분이 많다는 지적이다. 반면 불문학자 김붕구가 번역한 알퐁스 도데의 『별』에는 우리말에서 잘 쓰이지 않는 시간을 나타내는 부사절을 독립 문장으로 옮기고, ‘검은 얼굴’이라는 표현 대신 ‘거무데데한 얼굴’이라는 우리말 표현으로 산에서 내려온 숯 굽는 산골 사람의 얼굴의 느낌을 잘 드러내는 등의 노력이 드러난다. 원문 텍스트가 주는 의미를 유려한 우리말로 바꿔 표현함으로써 한국인이 읽었을 때 한국 문학작품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평이다.

번역가는 자유로운 상상의 나래를 펴고(飛) 원작자의 의도를 뒤집지 않는 범위 내에서 번역될 언어의 문화에 적합하게 뒤집어(反) 번역(飜譯)하라는 저자의 의도에서 ‘번역은 반역이다’는 한 작가의 말이 겹쳐 보인다. 이 책이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번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지침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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