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은 80살의 몸을 가진 17살의 소년이다. 그가 느끼는 시간은 우리와 같지 않다. 가지지 못했던 젊음을 그리워하며 시간의 빠름에 놀라기도 하고, 고통 속에서 1분을 영원처럼 느끼기도 한다. 진숙은 35미터 높이의 크레인에 살고 있는 50살의 여성이다. 지난 250여일은 여느 때와 달랐을 것 같다. 하늘과 맞닿아있는 그녀가 느끼는 낮과 밤의 변화는 얼마나 극적일까. 겨울 봄 여름 그리고 이제 가을, 계절의 변화는 얼마나 선명히 그녀의 몸에 새겨질까.

2003년 김주익은 해고를 막기 위해 크레인에 올라갔다. 그는 월급 105만원을 받는 대기업 정규직노조 위원장이었다. 129일째 되던 날, 그는 아이들에게 힐리스를 사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겼다. 그리고 2011년 해고를 막기 위해 똑같은 크레인에 올라간 이가 있었다. 120여만원 받던 노동자 400명의 해고가 결정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수백억원의 주주배당금이 지불된 며칠 후의 일이었다.

아름은 방송에 출현한 이후 자신의 세계를 넓혀나가게 된다. 그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먼 곳에서 건네주는 따뜻한 악수에 위로를 받는다. 설령 완벽하진 않을지라도 공감과 이해 속에 외로움을 덜어낸다. 진숙은 그 누구와도 만나지 못하게 되면서 트위터를 통해 하늘 위의 삶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세상과의 소통을 통해, 김주익의 시간과 연결되었던 그녀의 250일은 이제 우리의 미래와도 연결되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부터 인간의 자격이 소유와 동일시되는 시대가 온 듯 했다. 죽음이 투쟁의 수단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하던 대통령이 죽음으로 자기를 증거하는 시간을 보냈던, 먹고 사는게 가장 중요하다던 대통령이 당선된 후 먹고 살기에 문제가 있는 시간을 보내는, 우리들의 시대에 그녀는 빛바랜 희망이라는 단어에 다시금 생기를 불어넣어준다.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게 되고 서로의 삶이 동떨어지지 않음을 느끼면서, 우리는 사람이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되묻고 있다. 그리고 그런 질문들의 교차를 통해 우리에게 사람이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

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에 대해 신파극이라거나 비현실적이라는 비평도 들려온다. 그러나 그런 비평들은 등장인물들의 슬픔이 자신이 아니라 타인을 향한 것임을 간과하는 듯하다. 아름은 슬픔을 통해 부모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그 속에서 ‘세상에서 제일 웃기는 자식’이 될 수 있다. 김진숙과 희망버스의 탑승자들은 그런 점에서 현실 속의 아름이가 아닐까. 그동안 담장, 경찰, 혹은 ‘어버이’들에 막혀 김진숙과 탑승자들이 만나지 못했다 할지라도, 그 슬픔은 성찰로 이어질 뿐 좌절이 되지 않는다. 그들의 바람이 지금 아무리 비현실적일지라도, 슬픔이 타인에 대한 공감으로 확장되는 한, 미래는 열려있다. 이 가을, 김진숙과 희망버스의 탑승자들이 우리에게 보여줄 소설을 두근두근 기다려본다.

김경근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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