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홍대 거리, 다시 일어서기 위하여
위기의 홍대 거리, 다시 일어서기 위하여
  • 최신혜 기자
  • 승인 2011.09.18 02: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르포] 홍대 앞 거리

이른 오후부터 홍대 일대를 쏘다닌 기자를 반긴 것은 통기타를 든 뮤지션의 거리공연도, 한 건물 건너마다 들어선 작업공간도 아니었다. 일렬로 늘어선 노점상과 프랜차이즈 점포로 가득한 지금의 홍대에서는 저마다의 개성을 여과없이 드러내던 예전 ‘문화의 거리’의 모습을 찾아보기란 어려웠다. 몇 달만에 임대료가 최고 200%까지 치솟은 홍대거리는 더 이상 열정 가득한 창작자들도, 이들을 향해 열려있던 활동공간들도 품어내지 못한 채 상업화의 흐름에 잠식돼 가고 있었다.



홍대 주변 약도를 수차례 훑어가며 창작자들에게 전시·공연장을 제공한다는 이리카페를 찾아 나섰지만 마침내 발견한 그곳에는 이리카페가 아닌 다른 커피 전문점이 자리잡고 있었다. 임대료 상승 여파로 창작자들의 활동을 담보해온 공간들이 문래동, 상수동 등 주변지역으로 밀려나면서 이리카페 역시 상수동에 새로 터를 잡아야했던 것이다. 급히 상수동으로 발길을 돌려 여전히 창작자의 예술활동을 위해 가게 한 켠을 내주고 있는 이리카페를 찾았다. 카페의 분위기는 차분하고 여유로웠지만 “2년 혹은 5년 단위로 단기 임대가 이뤄지는데 재계약 시점마다 임대료가 올라 감당하기 벅차다”는 이리카페 김상우사장의 한마디는 나날이 오르는 임대료에 홍대 앞 거리에서 밀려나는 이들의 현실을 보여줬다.

날이 어둑해진 후 다시 찾은 홍대거리는 네온사인까지 더해져 자생적 문화진원지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듯 했다. 아직 홍대에 자리하고 있는 공간들 역시 이미 밀려난 공간의 사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매주 수요일에는 열 명 이상의 유료관객만 있으면 무료로 단독 공연을 할 수 있게 배려한 살롱 바다비는 최근 폐관위기에 처했다. 바다비의 상황이 궁금해 인근에 자리한 가수 백자씨의 작업실을 찾아가던 중 건물벽면과 전신주에 듬성듬성 붙은 바다비 살리기 모금축제 포스터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바다비에서 활발히 활동한다는 백자씨는 “이미 세 배가량 뛴 임대료를 감당하기 힘든 상황인데 이번 재계약 시점에 임대료가 또 뛰었다”며 “바다비 운영자의 병환까지 겹쳐 그야말로 설상가상”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곳을 거쳐 음악활동의 물꼬를 튼 창작자들은 바다비의 위기를 수수방관하지 않았다. 이들은 지난 15일(목)부터 열하루 간 이어지는 모금공연 ‘바다비 네버다이’를 통해 그들만의 방식으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었다. 첫 공연이 펼쳐진 바다비는 위기상황 속에서도 뮤지션과 관객, 취재진의 열기로 한껏 달아올랐다.

이와 더불어 인디예술가의 활동기반을 마련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저녁 무렵 한적한 카페에서 만난 밤섬해적단의 두 멤버 권용만, 장성건씨는 “10cm처럼 시럽 뺀 아메리카노요”라는 재치있는 주문으로 딱딱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렸다. 언뜻 평범해 보이는 이들이었지만 기자의 물음이 시작되자 눈빛부터 달라졌다. 창작자들의 공동기금으로 장비·공간 대여비를 충당하기 위해 창립한 자립음악생산자조합의 운영위원인 이들은 그간 거듭해온 고민들을 풀어놓았다. 권씨는 “상업화된 곳에서 공연수익의 행방은 알 길이 없고 우리를 위해 열린 공간에서의 공연수익은 다시 그곳 운영비로 충당돼 공연비를 거의 받지 못한다”며 “이러한 현재 구조에서 벗어나 대안을 손수 마련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홍대 바깥에 창작자를 위한 공간을 마련해 공연을 기획하고 기금조성 방안을 세워 자유롭게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을 차근차근 만들어가겠다”는 포부에서는 자신들이 길러온 날것의 예술정신을 지키려는 굳은 의지가 엿보였다.

인터뷰를 마치고 막 나서던 참에 바다비에서 모금공연을 마친 한 밴드를 만났다. 홍대란 본인에게 무엇이냐는 기자의 물음에 적적해서그런지의 아름씨는 “스무살 때부터 거주해온 홍대는 제가 사는 곳이죠”라면서도 “거리를 가득채운 상점들을 보면 이제 여기가 예전의 ‘그 홍대’가 맞는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자신이 뜻한 예술을 하기 위해 쌈짓돈을 들고 모여든 남녀노소를 서슴없이 반겨주던 홍대가 아니었던가. 어둠이 완전히 내린 시각, 홍대거리에서 작품활동에 심취한 길거리 아티스트의 모습은 휘황찬란한 거리의 모습과 대조돼 왜소해보였다. 어느 쪽이 홍대의 모습인지 이제는 그 경계마저 흐려져 가는 듯 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