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아픈 일이지만 한국에서 핵정책 관련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방패막이 역할을 하는 집단은 ‘교수’다. 이들의 힘은 소위 ‘전문가’라는 타이틀에서 나온다. 핵정책을 둘러싼 찬반토론이 종종 과학적 진위를 두고 누가 ‘더 많이 아는지’ 경쟁하는 상황이 돼버리고 만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굳이 푸코를 들먹이지 않아도 지식은 권력임을 절감하게 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반핵운동을 하는 활동가들도 기를 쓰고 원자력공학을 공부한다. 물론 독학이다. 독학으로도 전문가 버금가는 실력을 갖춘 이들은 최소한 10년 이상을 갈고 닦은 실력이다. 온갖 실무에 치이면서 짬짬이 공부하는 수준으로는 어지간해서는 권력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을 확보하기 힘들다.
어려운 조건에서도 기를 쓰고 ‘자격’을 갖추려는 활동가들의 노력을 무참하게 만드는 것은 원자력연구개발에 대한 정부의 지원규모다. 이공계든 인문사회계든 제도권 내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연구비를 대주는 공공기관인 한국연구재단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원자력연구개발사업은 거대과학연구개발사업, 이공분야기초연구사업, 학술·인문사회사업, 교육·인력양성사업 등과 동급의 지원분야임을 알 수 있다. 2011년 한해 책정된 원자력기술개발사업비만 1,420억원이다. 같은 해 인문사회 기초연구사업분야 지원 총액인 1,311억원보다도 더 많은 액수다. 후쿠시마 사고 같은 초대형 사고를 눈앞에서 목격하고도 한국 원자력학계 내부의 성찰이 전혀 일지 않았던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서울대 본부에서 ‘겨레’의 미래라며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국립대학법인’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가능한 재정기반확보다. 한국연구재단의 연구지원비율이 고스란히 투영되지는 않겠지만, 지속적인 국가지원과 다양한 재원확충을 동시에 부르짖는 서울대의 미래상과 제도권 연구자들의 국가적 지원을 책임지는 연구재단의 재정항목과 할당액수를 나란히 놓고 보면 서울대가 가고자 하는 길은 자명해 보인다. ‘세계’의 대학이 되는 데 혈안이 돼있는 대학이 ‘비전문가’와 소통할 수 있는 과학, 사회·생태적 약자에게 힘이 되는 학문을 지향할리 만무하다. 법인화된 서울대에서 다까끼 진자부로 같은 시민과학자가 나타날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오연천 총장이 행정대학원 교수시절 서울대 관악캠퍼스 안에 핵폐기장을 건설하려는 제안에 적극 동참했다는 사실이다. 이쯤 되면 리얼호러 수준이다. 서울대 법인화, 리얼호러가 아니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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