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고죄'는 피해 당사자의 신고 없이 피의자를 수사하거나 기소할 수 없도록 하는 법 규정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성폭력 범죄에서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친고죄 규정을 유지해왔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전영실 센터장은 "성폭력 고소 특성상 범죄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수치심과 모욕을 느낄 수 있으므로 이를 감당할 수 없는 피해자를 배려해 친고죄를 존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성폭력 범죄는 고소 진행 과정에서 2차 피해가 불가피하므로 피해자로 하여금 이를 거부할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친고죄는 오히려 피해사실을 은폐시키고 성폭력 피해 여성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이상한 배려'가 되고 있다.

피해 당사자가 신고하고 고소 의지를 가져야 가해자를 사법처리할 수 있다는 친고죄의 특성 때문에 피해자들은 가해자의 위협과 보복에 노출된다. 피해자가 형사사법절차 도중 더 이상 가해자의 죄를 묻지 않겠다고 하면 실제 범죄 사실이 있어도 자동 무죄 처리가 된다. 이를 노린 가해자가 피해자의 직장, 가정에 수시로 방문해 합의를 종용하거나 신변을 위협하는 일이 빈번하며 이로 인해 사생활 침해와 위협을 못 견딘 피해자가 고소를 취하하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갑을관계에 있을 경우 친고죄는 오히려 피해사실을 은폐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사회적 권력자인 가해자를 신고할 경우 돌아올 불이익과 2차 피해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피해자는 신고를 감행하지 못한 채 지속적인 성폭력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 2009년 회사원 A씨는 회사 고객과의 저녁식사 중 성추행 피해를 입었으나 고객이 사회적으로 권력이 있는 대기업 고위 관계자라는 이유로 결국 신고를 포기했다. 이후 A씨는 해당 고객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이직을 결정했다.

친고죄에만 따라오는 고소시효도 피해자가 불가피하게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황을 초래한다는 비판을 낳고 있다. 작년 7월 바이올리니스트 유진박의 전 매니저인 김모씨가 소속사 여자 연예인의 강간 혐의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은 것도 고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에서였다. 김씨가 피해 여성에게 "내 말에 복종하지 않으면 연예계에서 매장시키고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하며 노예계약서를 쓰게 했다는 사실은 이러한 판결에서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이처럼 피해자의 사생활과 인격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시행되고 있는 친고죄와 고소시효가 정작 심각한 2차 피해를 초래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윤상 소장은 "친고죄 조항은 대부분의 성폭력 피해자가 2차 피해를 겪는 지점"이라며 "피해자의 기본적인 사생활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친고죄가 폐지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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