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우리가 원나라의 속국이던 시절이 있었다. 패전국에서 태어난 죄로 먼 나라에 공녀로 끌려갔던 누이들 중 몇은 이후 살아 돌아왔다. 그러나 꿈에 그리던 고향에 돌아온 그녀들은 적에게 능욕을 당했단 이유로 부모에 의해 내쳐지고 이웃들에게 모욕을 당했다. 귀향한 전쟁포로는 애국자가 되지만, 환향녀(還鄕女)는 화냥년으로 조롱당하며 냉혹한 시선과 멸시의 대상이 돼야 했다. 이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성폭력이 피해 여성 개인의 고통보다 그 여성이 속한 집단의 명예와 관련해 인식돼 온 역사를 보여준다.

작년 9월, 내 친구는 자신이 더럽게 느껴진다며 숨죽여 울었다. 결혼도 하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가해자가 건넨 음료를 마시고 정신을 잃은 스스로를 한없이 저주했다. 가해자는 그녀가 신고하지 못할 것을 알았는지 퍽이나 당당했다. 게다가 주기적으로 문자를 보내 피해사건을 상기시키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때마다 친구는 창백한 몸을 파르르 떨었다. 나는 친구에게 신고를 권유했고 곧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고소상황을 설정한 가상 시나리오를 구상했다. 경찰에 가면 경찰이 어떤 조사를 할 테고 무엇을 물을 테고…석연찮아하던 친구는 결국 신고하지 않았다.

친구 생각을 하며 취재를 시작한 내가 사안에 깊이 접근할수록 드는 생각은 친구가 신고하지 않은 것이 차라리 다행이라는 것이었다. 내가 권유했던 대로 신고를 감행했다면 넌 얼마나 끔찍한 일들을 겪었을까, 성폭력 2차 피해 보고사례와 판례를 접하며 나는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대한민국에서 성폭력은 형사죄로 규정돼 있으면서도 여전히 범죄나 인권 침해의 문제가 아니라 도덕에 관한 문제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다. 자신의 성폭력 피해를 거론해 문제화하는 여성이 오히려 집단의 명예를 더럽힌 존재로 간주돼 비난받는 분위기가 이를 잘 드러낸다. 여성 연예인의 섹스비디오가 유출돼도 피해자인 연예인이 전 국민 앞에 눈물로 사죄하며 근신하는 의미로 활동을 접는 것이 관례이다. 이렇듯 아직까지 정조 이데올로기의 전통과 문화가 우세한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성폭력 피해는 여전히 ‘정조에 관한 죄’의 관점에서 다뤄지고 있다. 이는 정조를 남성 가문의 명예를 위해 지켜져야 할 것으로 보고 다른 남성이 그것을 훼손하는 것에 대해 재산권 침해로 취급하는 것이다.

여러 차례의 제도 개선과 각성에도 불구하고 이를 집행하는 담당자의 통념으로 인해 피해자는 ‘가부장적 관점에서의 성폭력 피해’만을 피해로 인정받을 수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주장하며 범죄 사실을 인정받는 과정 자체는 현 사회에 대한 도전이고 2차 피해가 난무하는 만만찮은 전쟁이다.

고려시대 ‘화냥년’의 전통은 천 년이 지난 지금 이 시각 대한민국에 이르러서까지 철저히 계승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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