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서평]『필립 K. 딕 걸작선 시리즈』

 

필립 K. 딕ㅣ남명성 옮김ㅣ폴리북스ㅣ480쪽ㅣ1만3천5백원
나는 한국문학의 최근 경향 중 주목할 만한 것으로 이른바 장르문학과 본격문학 사이에 있어 왔던 오랜 대립구도의 해체와 이 두 문학 사이에 이루어지는 새로운 연합의 시도를 꼽고 싶다. 본격문학으로 출발한 작가들이 SF와 판타지, 무협같은 장르문학을 적극 활용해서 장르적 갱신을 시도하거나 반대로 장르문학의 진영에서 성장한 작가들이 본격문학의 성취에 필적할 만한 작품들을 한둘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 그 성과가 크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최근 들어 급격히 침체된 한국문학이 자기 갱신을 하기 위해서는, 특히 젊은 작가들의 경우, 장르적 혼효(混淆)에 대한 과감하고도 지속적인 실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문학과 문학사가 선배작가에 대한 후배작가의 ‘영향의 불안’ 속에서 생성된다는 미국비평가 해럴드 블룸의 말을 참조한다면, 후배 작가에게는 이러한 혼효와 실험의 디딤대가 될 만한 선배작가와 작품도 절실할 것이다. 여기서 나는 SF로 한정해 말하겠는데, 이러한 와중에 ‘마이너리티 리포트’, ‘블레이드 러너’와 같은 영화의 원작자,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1968) 정도로만 알려졌던 미국의 SF작가 필립 K. 딕(1928~1982)의 일련의 장편소설이 국내에 번역됐던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필립 K. 딕만큼 지금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주축이 되는 한국문학의 한 경향인 엔트로피 서사에 잘 어울리는 선배작가도 달리 없어 보인다. 국내에 출간된 딕의 장편소설 중 개인적으로 내가 최고작으로 꼽는 『유빅』(1969)을 포함해 한국에 출간된 필립 K. 딕의 장편소설은 이제 여섯 권이 됐다. 딕의 선집을 낸다는 무모하게(?) 뜻있는 결정을 내린 폴라북스는 그 중 네 권인 『화성의 타임슬립』(1965), 『죽음의 미로』(1970), 『닥터 블러드머니』(1965), 『높은 성의 사내』(1962)를 인상적인 감각의 북 디자인과 유려한 번역을 통해 선보였다. 이 매력적인 선집을 소장하지 않기란 꽤나 힘들 것이다.

 필립 K. 딕의 SF는 내가 서평의 대상으로 삼은 네 편의 소설만 읽어보더라도 그 소재와 주제 면에서 매우 다채롭고 경이롭다. 딕이 형상화한 우주에는 행성식민개척사(『화성의 타임슬립』, 『죽음의 미로』), 행성 간 여행과 동면(『죽음의 미로』), 아마겟돈 이후의 세계(『닥터 블러드머니』), 대체역사(『높은 성의 사내』) 등 SF에 친숙한 소재와 배경을 다루면서도 딕 특유의 음울한 디스토피아적 미래상이 잘 투시돼 있다.『화성의 타임슬립』에서 ‘화성’은 작중인물들이 새로운 희망을 품고 떠나 정착했지만 정작 자본과 권력이 각축을 다투는 암투장이 되면서 몰락해가는 디스토피아이며, 『죽음의 미로』에서 가상의 행성 ‘델멕-O’는 개성이 강한 서로 다른 인물들이 광기와 환각, 살인의 늪으로 빠져들고 마는 인간성의 도저한 실험실이다. 그런가 하면『닥터 블러드머니』에 묘사된 핵전쟁 이후의 세계는 살아남은 소수조차도 각양각색의 독점사업과 투기를 통해 다른 이들에게 주인으로 군림하려드는 동물의 왕국이다. ‘만일 독일과 일본이 2차 대전에서 승리했더라면’이라는 가정법으로 씌어진 『높은 성의 사내』는 또 어떤가. 딕의 소설에서 묘사되는 근미래는 역사나 현실로부터의 도피나 탈출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미래는 바로 역사를 관통하는 진지한 물음이 된다.『높은 성의 사내』에서 제시된 가상의 미래 또는 역사는 원본과 복제를 구별할 수 없는 (모조)골동품을 전시하는 상점과 비슷하다. 이 소설에는 철학자 알렉상드르 코제브가 1950년대 후반에 언급한 역사의 종말, 스노비즘(snobbism) 같은 탈산업사회의 징후가 또렷하게 제시돼 있다.

물론 딕의 이러한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떠받치는 근본적인 세계관과 우주관은 모든 만물은 소멸을 향해 갈 수밖에 없다는 엔트로피 법칙일 것이며, 거기에는 불완전하고도 악의적인 신이 창조한 기형적인 피조물의 세계에 대한 영지주의(靈知主義)의 음울한 통찰이 서려있다. 작가 자신의 생애가 그러했듯이, 필립 K. 딕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감각은 착종되며, 정신은 분열증적으로 방황하고, 구원은 요원해 보인다. 그럼에도 딕의 독자들에게 이러한 모습은 인간성에 대한 희망과 연대로 찾아온다. ‘고귀한 야만인’인 화성 원주민 블리크맨(『화성의 타임슬립』), 지구상공에서 인류를 위해 밤낮으로 희망을 전하는 데인저필드(『닥터 블러드머니』), 몰락의 역사에 맞서 구원의 역사를 쓰는 작가 아벤젠(『높은 성의 사내』) 그리고 자신은 방황하지만 분별 있는 여성인물과 자폐아, 분열증자들에게 희망이 있다!

 디스토피아, 엔트로피 세계관, 리얼리티와 시뮬레이션, 주체의 죽음, 대체역사 등 한국문학도 관심을 가질 법한 현대문학의 첨단 주제와 하위문화의 소재 각각에 하나의 ‘장르’의 지위를 부여한 필립 K. 딕의 소설은 한국에서 SF와 근미래서사, 재난소설, 묵시록에 매혹되는 작가와 독자뿐 아니라, 이미 딕이 오래 전에 제시한 현실 속에서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것을 ‘리얼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난감해하는 (비평가와 같은) 소수의 고루한 고급독자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딕의 SF는 다른 SF작가의 작품들에 비해 지나치게 과학적이지도 또 지나치게 오락적이지도 않다. 종종 딕의 소설은 한 소설에 너무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스토리와 플롯이 정교하지 않다고들 한다. 그러나 스스로는 개성을 상실하지만 그렇기에 개성이 강한 인물들, 모든 세계와 인간이 몰락과 파멸로 빨려 들어가기에 다른 반전이 별로 필요하지 않은 엔트로피 내러티브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리고 자폐증자, 정신분열증자, 기형아, 흑인, 여성 등 당시의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작가의 연대의식이 돋보이는 대목들도. 도합 여덟 번을 읽은 네 편의 소설 모두 내게는 감동적이었지만, 두 번째 읽었을 때 새롭게 의미심장했던 소설은 『죽음의 미로』와 『높은 성의 사내』였다.

 필립 K. 딕의 SF는 과거의 유물이지만, 그것은 누군가의 발굴을 기다린다는 데서 미래의 고고학이다. 늘 그렇듯이 좋아하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은 조금도 따분하지 않다. 책읽기와 쓰기에 대부분 바쳐질 수밖에 없는 내 삶에 배당된 시간의 한줄기는 당분간은 딕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것에 마냥 내줘버리게 될 것 같다. 딕의 소설들 결말에 종종 그렇게 환기되는 것처럼, 그것은 꽤 기분 좋은 예감이다.

 

복도훈 문학평론가

(평론집 『눈먼 자의 초상』 2010,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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