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사업 강행, 문화재 보호는 파행
국책사업 강행, 문화재 보호는 파행
  • 백인영 기자
  • 승인 2011.09.24 23: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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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보호법 무시된 채 계속되는 공사에 문화재 훼손 잦아
사업시행자의 비대한 영향력과 인력의 부족 등 현 조사 체계에 대한 문제 제기돼

최근 제주해군기지 사업부지인 강정마을에서 청동기시대의 주거지 흔적과 조선시대 후기의 집자리 유구(遺構) 등 다량의 문화재가 발굴됐음에도 문화재청이 해군 기지의 부분공사를 허가한 것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다. 이번에 발굴된 유구는 제주에서는 드물게 폭넓은 시대의 유적이 한 자리에서 발견된 것이어서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높다. 발견된 유구의 훼손과 아직 발굴되지 않은 문화재의 존재 가능성이 제기됨에도 문화재청은 “유구가 확인되지 않은 지역에만 공사를 허가했기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문화재청의 태도에 대해 일각에서는 해군기지 건설이라는 국책사업에 밀려 또다시 문화재 가치가 저평가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법령 무시한 무리한 공사 강행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제5조 제2항에서는 ‘개발사업 시행자는 공사 중 매장문화재를 발견한 때에는 즉시 해당 공사를 중지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엄연히 문화재보호에 관련한 법이 존재함에도 법령을 무시한 성급한 국책사업 강행으로 문화재가 보호받지 못해 문제시된 경우는 이번 강정마을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3년 청계천 복원 사업 과정에서는 광통교 교각 기초석 6개 중 3개를 4~9cm 자른 일이 발생했다. 이를 비롯해 수표교의 흔적이나 모전교에서 발굴한 수많은 문화재 등도 청계천 복원이라는 거대한 명목 아래 흔적을 찾기 힘들어졌다. 조선의 배수구로써 조선시대 토목 교량공사의 공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 사라진 것이다.

가깝게는 최근 4대강 공사 도중에도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지난 2010년 6월 낙동강 32공구 낙단보 공사 도중에는 고려 초기 지방의 특색을 살린 양식을 잘 보여준다고 평가받는 마애불의 오른쪽 상단에 직경 10cm에 달하는 구멍이 뚫리는 일이 발생했다. 춘천 중도 선사유적이 발견된 북한강 일대와 초기 백제 유적이 발견된 금강 일대에서는 더 많은 관련 문화재 발굴 가능성이 존재함에도 정식발굴을 하기 이전의 예비조사인 시굴조사도 없이 공사를 강행한 것이 밝혀져 논란을 빚기도 했다.

◇매장문화재 발굴 시스템 문제도 제기돼

이처럼 법령을 무시하고 공사를 실시하는 데에는 우리나라의 매장문화재 발굴 시스템 문제가 기저에 깔려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3만㎡ 이상 규모 건설 공사의 문화재지표조사가 의무화돼있다. 현행 문화재지표조사처리지침은 사업시행자가 지표 조사를 맡길 문화재 조사기관을 직접 선정한 뒤, 선정된 문화재 조사기관이 제출한 지표 조사 보고서를 토대로 문화재청과 사업시행자의 문화재 보존 협의가 이뤄지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문제가 제기되는 부분은 사업시행자가 발굴조사기관을 직접 선정하는 데 이어 지표 조사에 따른 비용을 전액 부담함에 따라 발굴조사과정에서 사업시행자의 영향력이 비대하다는 데에 있다. 이에 따라 조사기관이 사업시행자와의 계약 관계에 매이면서 독립적인 조사 시행 여부가 불확실하게 됐다. 정상우 교수(인하대 사회교육과)는 “지표 조사에서 문화재가 발굴돼 공사가 중단되는 경우 사업시행자의 부담이 심한 만큼 발굴조사기관의 지표조사보고서 결과는 사업시행자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며 조사기관과 사업시행자의 유착가능성을 제기했다. 정 교수는 이어 “발굴조사기관의 힘이 공사의 시행 유무에 결정적인 힘을 발휘하는데도 이들을 감리할 특별한 기관 없이 발굴조사과정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문제”라며 사업시행자가 발굴조사과정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현 구조를 비판했다.

한편 매장문화재 발굴을 조사할 제대로 된 기관과 인력이 부족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잇따른 국토 개발로 증가하는 발굴수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자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지난 1999년부터 매장문화재조사기관의 등록 제도를 실시해 등록한 민간 조사기관에 매장문화재조사에 대한 권한을 위임했다. 그러나 2008년 감사원의 표본 조사 결과 15개 기관 중 66%에 달하는 10개 기관이 발굴비용 관련 사기죄로 기소되면서 문화재청이 발굴조사기관의 공급을 위해 등록제도 기준을 과도하게 낮춰 도덕성과 전문성이 갖춰지지 않은 기관이 늘었다는 지적이 꾸준히 있어왔다. 이처럼 조사과정과 발굴조사 인력의 도덕성과 투명성이 담보되지 못한 상태에서는 문화재의 가치와 공공성을 중시하는 발굴조사가 이뤄지기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투명한 체계 확립과 문화재에 대한 인식 전환 필요해

외국에서는 공공발굴을 중심으로 매장문화재를 조사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의 경우 지방자치단체가 발굴 비용 부담을 지고 있으며 프랑스는 국립예방고고학연구소와 산하지방연구소가 지방자치단체에 채용돼 발굴 작업을 진행하는 형태로 조사가 진행된다. 정부의 재정 부담은 증가되지만 기관의 신뢰성을 담보된다는 점과 사업자의 영향력을 줄여 매장문화재를 보호하는 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공적영역에서 매장문화재 발굴조사에 관련한 체계를 보다 공정하고 투명하게 마련할 필요성이 제기됨과 동시에 공·사적으로 도덕성을 제고할 만한 감시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발굴조사기관을 국가가 지원하되 발굴조사기관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감리제를 시행하거나 감리를 전담할 특수법인을 구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적영역에서는 공사시행에 천착하기보다 유적의 지형조건에 맞는 체계적인 조사를 기본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고고학계의 입장이다.

무엇보다도 우선돼야 할 것은 문화재에 대한 인식의 제고다. 문화유산정책연구소 황평우 소장 역시 “문화재의 철저한 조사가 무조건적인 공사시행보다 먼저 고려돼야 한다”며 문화재의 가치에 집중할 것을 당부했다. 경제적 손익을 계산하기에 앞서 문화재의 가치와 공공성을 따져볼 줄 아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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