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강의실에서 만나는 한국의 얼

한옥학교, 염색학교가 신설되는 등 전통을 보존·계승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한 최근, 이제는 우리가 계승할 전통의 정신이 무엇인지도 고민해 볼 시점이다. 『대학신문』은 전통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온 선생님들의 학내 개설 수업에 참여해 이들이 수업에서 말하는 우리 얼의 모습을 담아보고자 한다. 직접 수업에서 전통을 배우고 겪은 기자가 전하는 생생한 수업 풍경을 들어보자.

<연재순서>
① 이애주 교수(체육교육과)-무용사
② 김민자 교수(의류학과)-복식디자인특론
③ 이지영 교수(국악과)-가야금 전공수업
④ 김영기 국악과 강사-정가 전공수업

“드르륵 드르륵 끼이-익” 이애주 교수(체육교육과·사진)의 ‘무용사’ 수업에 들어서면 처음 들리는 소리다. 학생들은 직선으로 나란히 배열된 책상을 둥근 호 모양으로 재배열하고 있다. 책상 배열이 그리는 둥근 곡선은 교실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책상을 모두 배열한 학생들은 신발을 벗고 의자 위에 허리를 곧게 세운 채 책상다리로 앉는다. 전형적인 바른 자세이기도 하지만 이 자세야말로 “가장 깊숙이 숨을 들이 쉬며 심신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최고의 춤 자세”이기 때문이다.

 

사진: 하태승 기자 gkxotmd@snu.kr

 

매 수업시간 “춤은 삶의 몸짓이자 우리 민족의 역사”라 강조하는 체육교육과 이애주 교수. 그는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 보유자다. 승무는 정제된 몸짓을 통해 인간의 희로애락을 승화시킨 우리 춤이다. 이 교수는 오랜 세월 승무를 추며 얻은 자신만의 철학을 이번 무용사 수업을 통해 이야기로 풀어낸다.

“춤은 단순한 움직임이 아닌 인간의 생애가 담겨있는 것”이라 말하는 이 교수는 “춤을 잘 추기 위해서는 우선 인간을 이해해야 한다”며 사서삼경의 하나인 「대학」을 수업 교재로 삼았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는 「대학」의 중심 경구인 삼강령과 팔조목을 외우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교실 가득 울려 퍼진다. 이 교수는 「대학」의 구절구절을 읽어 내려가며 “예를 익히며 인간의 삶을 이해하면 자연스레 춤의 원리와 역사를 알게 될 것”이라며 사람을 향한 춤과 춤을 배우는 사람의 마음가짐을 강조한다.

무용사 수업시간의 이색 풍경 중 하나는 “음, 아, 어, 이, 우”를 반복해서 외우는 이애주 교수와 학생들의 모습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소리는 영혼의 소리라는 오음이다. 오음은 소리를 중얼거리며 외우다 노래하고, 흥겨워 미친 듯 춤추고 뛰놀다 기를 다해 쓰러지는 영가무도라는 춤에서 비롯한 소리다. 큰 소리로 오음을 외우면 오장이 울려 온몸으로 다섯 장기의 기운이 퍼져 심신의 통일을 이룬다고 한다. 이 교수는 “심신이 하나된 몸정신의 상태가 돼야 비로소 삶의 몸짓을 담은 춤을 출 수 있다”며 제대로 된 춤을 추기까지 필요한 자세와 마음가짐을 짚어나간다.

이렇게 춤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드러내던 이 교수는 수업 중간 중간 우리의 것이 잊혀져가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한다. 때로 이 안타까움은 전통에 무지한 학생들에게의 따끔한 호통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올해 5월, 2005년 풍물놀이에 이어 중국에서 아리랑과 판소리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도 모르던 학생들에게 그는 “모두 얼이 빠졌다”며 “우리의 민족의식이 튼튼해야 우리 문화재가 빼앗기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고 탄식했다. 또 “이번 학기 한국무용 수업은 강의가 두 개밖에 없지만 댄스스포츠 수업과 발레, 현대무용 강좌는 열한 개나 열리는 것을 보면 우리 춤에 대한 관심이 현저히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애주 교수는 “앞으로 이 시간이 학생들에게 우리의 뿌리가 무엇인지 깊이 고뇌하고 깨닫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하며 수업을 마무리했다.

이애주 교수는 우리의 춤을 ‘한밝춤’이라는 순우리말 이름으로 부른다. 한밝춤의 ‘한’은 한(韓)민족의 이름이기도 하면서 무한히 크고 높음을 뜻하기도 하는 등 여러 의미를 담고 있다. 그는 우리의 몸짓인 한밝춤이 우리 역사를 더 크고 높은 차원에서 풀어내려는 인간의 삶의 의지가 담겨있는 것이라 말한다. 우리의 얼 역시도 이 땅의 역사를 딛고 살아가기 위한 끊임없는 의지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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