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한 목소리 전달하고자
극단적 선택을 한 준규씨와 김진숙씨
법인화는 결국 우리 자신의 문제
변화 만들어내는 '사람들' 되길

 

취재부장

준규, 오가다 한번쯤은 이름 들어봤을 법한 학생 한 명이 정문 위로 올라갔다. 법대 학생회장, 단과대학생회장연석회의 공동의장, 사노위, 우주인. 그는 최근 2년간 가졌던 많은 직함들만큼이나 수없이 무엇인가를 말하고, 외치고, 싸웠다. 추운 날씨, 좁은 정문 구조물 위에서 그는 밤을 지새워 ‘법인화법 반대’를 소리치고 있었다.

이쯤 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고공’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대번 떠오르는 한사람, 바로 한진중공업 크레인 위에서 농성 중인 김진숙씨다. 그도 스스로 크레인 위로 걸어 올라갔다. 그 역시 크레인을 선택하기 전까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말하고, 외치고, 싸웠다. 그는 여전히 크레인 위에 홀로 남아 ‘정리해고 철회’를 외치고 있다.

구호는 다르지만 모습은 닮은 두 사람, 이들은 왜 ‘고공’을 선택했을까. 스스로 위험한 선택지를 골라 좁은 공간 속으로 자신을 몰아넣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이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목소리를 내려던 모든 시도가 실패로 끝맺었기 때문이었다. 김진숙씨와 준규씨는 오래 전부터 ‘정리해고 철폐’와 ‘법인화 반대’라는 각자의 구호를 위한 행동들을 계속해 왔다.

그러나 서울대 본부도, 한진중공업도 한낱 학생과 노동자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언론도 자극적 소재와 새로운 뉴스거리를 찾느라 반복되는 기자회견이나 규탄집회에 신경 쓰지 않았다. 이들의 진정성이나 사안의 중대성은 중요하지 않았다. 매번 말하는 자는 있었으나 듣는 자는 없었다. 고공시위라는 아찔한 선택은 ‘들어야 하는 자’를 억지로라도 대화의 장소로 끌어내기 위한 초강수였던 셈이다.

‘반지성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행정관 점거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이라고 해서 점거가 정상적인 의견 표출 방식이라고 생각했을 리 없다. 본부 앞 기자회견, 국회 앞 집회로는 시선을 끌 수 없다는 것을 느낀 학생들은 점거를 통해서라도 학내외에 법인화 문제를 공론화하고자 한 것이다. 행정관 점거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제기하면 ‘정상적인’ 답변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 학생들이 꺼내든 최후의 수단이었다. 제기되는 우려를 무시한 채 강행되는 법인화에 불안해진 학생들이 날린 날카로운 경고였다. 제발 학생들의 목소리도 들어달라는 간곡한 부탁이었다.

그런데 본부는 아직도 이러한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한 듯하다. 점거 해제를 위한 협상에서도, 준규씨가 정문에서 내려오도록 설득하는 과정에서도 본부는 학생들의 행동이 지니는 함의를 읽어내진 못했다. 언제나 일단 상황을 수습해보려는 태도로 일관했고 사태가 일단락되면 그걸로 끝이었다. 이전과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김진숙씨는 아직도 크레인 위에서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그녀의 고공 농성이 의미를 지니는 것은 단순히 그녀가 높은 곳에 올라갔기 때문은 아니다. 그녀의 농성에 ‘희망’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은 그 아래서 같은 구호를 외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점에서다. 그의 발언에 힘이 실리는 것은 단지 개인 김진숙 때문이 아니라 그의 말에 동의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변화를 일으키는 힘은 어느 한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로부터 나온다.

준규씨 한 사람이 정문 위로 올라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뭔가 달라지는 것은 없다. 하지만 법인화 문제가 우리 자신의 문제라는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빠르게 추진되는 법인화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요즘 학교가 시끄럽다. 귀찮고 번거롭다며 시끄러움을 피하기만 할 것인가. 아래에 남은 ‘사람들’이 계속 침묵을 지킨다면 위로 올라간 한 사람에게는 더 높고 위태로운 곳으로 올라가는 극단적인 방법밖에 남지 않는다. 눈과 귀를 닫았을 때 시끄러움은 ‘소음’일 뿐이지만, 나의 문제라고 여길 때 시끄러움은 ‘활기’가 된다. 시끄러움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 목소리를 내는 것, 학생사회를 더욱 시끄럽고 그래서 더욱 강하게 만드는 것, 그것은 우리의 권리를 지키는 최소한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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