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라는 말을 들으면 ‘보수’가 연상되는 것을 보면 요즘 ‘진보’라는 용어는 그 정치적 함의에 주목돼 사용되는 듯 하다. 특히 최근 들어 각종 매체를 통해 어디서든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진보에서 사람들이 대개 떠올리는 이미지는 ‘사회주의’ 또는 ‘보편적 복지’ 담론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사물이 점차 발달하는 일’이라는 본래적 의미의 진보 세계관은 비교적 많이 주목받지 못했다. 지난 6월 학술 정보 계간지인 『개념과 소통』 제7호(여름호, 한림과학원)에 발표된 황수영(철학사상연구소 객원 연구원)의 「서양 근대사상에서 진보와 진화 개념의 교착과 분리」는 진보적 세계관의 시작과 전개 과정을 진화 개념과의 접촉과 결별로 엮어 설명하며 일상적으로 쓰이는 ‘진보’의 본래적 의미를 탐구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황수영 연구원은 “진보와 진화는 각각 서양 근대의 시작과 끝을 보여 주는 개념쌍”이라고 언급하며 여러 사상가들이 바라본 진보 개념을 통해 진보의 탄생 및 진화와의 교착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새로운 기술과 사상이 등장한 근대의 초입 무렵 인간의 모든 지식은 경험을 통해 획득된다는 경험주의 사조가 등장하면서 “지식은 축적되며 세계는 계속해서 발전할 수 있다”는 진보적 세계관이 등장했다. 이렇듯 인간에게 무한한 진보가 가능하다는 사고는, 모든 역사가 황금기와 쇠락기의 끊임없는 순환이라는 르네상스의 순환적 세계관과 대결하며 등장했다. 17세기의 ‘신구 논쟁’으로 알려진 이러한 갈등은 고대를 황금기로 상정하며 전통적 가치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던 르네상스인들과 새로운 가치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근대파들 사이에 벌어졌던 것이었다.

수차례 지속됐던 신구 논쟁이 근대파의 승리로 점차 기울었던 18세기에 진보적 세계관을 정립한 대표적인 사상가는 콩도르세(Marquis de Condorcet)였다. 콩도르세의 진보 개념은 인간이 자신의 능력을 계속해서 향상시킬 수 있는 ‘완성가능성’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핵심으로 했다. 또한 콩도르세는 진보 개념을 사회 분야에 적용시키는 ‘사회적 진보’ 개념을 확립했다. 콩도르세의 사회적 진보는 확률의 계산을 도구로 미래의 진보를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의 저서 『소묘』의 마지막 장에서 ‘사회적 진보’ 개념을 “국가의 부를 증진시키고 개인의 자유를 확대하는 것”으로 언급한다. 사회의 지적, 물질적 자산이 기초교육을 통해 세대에서 세대로 전달되면서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양면에서 인간 능력을 개선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콩도르세는 이처럼 인간에게 내재된 ‘완성가능성’ 때문에 인간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을 진보의 기초라고 인식했다.

19세기에 들어서 진보 개념을 새로이 정립한 사상가는 실증주의자로 알려진 콩트(Auguste Comte)였다. 콩트의 사상에서 진보와 진화는 유착의 실마리를 얻는다. 콩도르세 이후 혁명과 공포정치, 쿠데타와 전쟁 등 숨 가쁜 격변을 거쳤던 시대에서 콩트는 진정한 진보는 질서를 기초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질서는 과학을 통해 정립되며 사회 분야에서 적용되는 질서 역시 과학적인 방식으로 요청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콩트는 진보를 인간의 본성에 내재된 완성으로의 자연적 질서가 점차 실현되는 과정으로 인식했다. 생명체의 발달과 성장의 전체 계획이 이미 주어져 있다고 해도 발생은 미소한 세포의 수준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콩트가 의도했던 역사는 완성될 것이 정해져 있으면서도 한꺼번에 전개되지 않고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점차 완성되는 것이다. 개체의 발달과 종의 진화 개념이 혼재돼 있었던 당시에 콩트는 생명체 역시 마찬가지로 탄생의 순간부터 완전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추고 시간에 따라 성장해간다고 생각했다. 즉 콩트가 인식한 진보란 기본적으로 자연발생에 토대를 두고 있는 질서를 따라 환경적 조건과의 적절한 조응을 통해 전개되는 역사였다.

콩트에서 교착의 실마리를 보였던 진화와 진보 개념은 19세기 중엽 이후 스펜서(Herbert Spencer)에 와서 확장됐다. 사실 그의 진화 개념은 다윈(Charles Darwin)의 『종의 기원』이 출간되기 전부터 형성돼 있었다. 그가 세운 독창적인 ‘진화’ 개념은 개체의 발생은 미리 결정된 원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후천적으로 형성된다는 것이었다. 초기에 스펜서 역시 발생과 진화라는 말을 동일한 의미로 사용했다. 스펜서에게 영향을 끼쳤던 것은 발생이란 “동질적인 전체가 이질적인 부분들로 분화되는 과정”이라고 주장한 독일의 생물학자 폰 바이에르(K. E. Von Baer)였다. 스펜서는 생명체에 적용되는 발달 내지는 진화와 같이 사회도 마찬가지로 분업화를 이루며 진보한다고 봤다.

이러한 스펜서의 진화 이론은 당시 자신의 사회가 우월한 문명사회임을 기정사실화하는 데에 주력했던 빅토리아 시대 영국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었다. 스펜서의 진보 이상이 영국 사회의 몰락과 운명을 함께 했다는 것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그간 ‘적자생존’에 의해 성공을 정당화했던 영국이 다른 국가들과의 본격적인 생존 투쟁에 돌입하며 ‘부적응자의 도태’에 직면했던 것이다.

스펜서의 진보 개념에 깊숙하게 개입하고 있었던 진화는 진화론자 바이스만(August Weismann)에 의해 결정적으로 진보와 분리됐다. 그는 부모의 형질은 생식세포에 의해서만 후손에게 유전된다는 원칙을 확립하며 개체의 노력이 다음 세대에 부가될 수 있는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인식했다. 그 결과 바이스만의 이론은 스펜서가 전제했던 후천적 노력에 의한 진보 개념으로부터 진화를 떨어뜨리게 됐다.

스펜서의 진보 개념에서 독립한 진화 개념은 점차 스펜서의 진보 개념이 근거하고 있었던 진보에 대한 낙관으로부터 멀어진다. 국가 간 상호 경쟁이 심화되자 국제무대에서 자국이 도태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은 인간 중에서도 우월하고 열등한 종이 정해져있으며 인위적으로 우수한 남녀의 후손을 증가시키고 부적응자들의 후손을 제거해야 한다는 골턴(F. Galton)의 우생학을 배태한다. 이는 2차 세계 대전을 촉발했던 나치의 인종프로그램에서 절정을 이루게 된다.

황수영 연구원의 논문은 진보적 가치와 이것이 구현된 정책에 대한 논의가 한창인 지금 우리 사회에 인간의 진보 자체가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고민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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