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학모(‘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 네번째 단행본 『우리말로 학문하기의 날갯짓』 출간…우리말 어원 분석 통해 학문적 개념어 정립 시도

영국 옥스퍼드대가 합리성·과학성·독창성·실용성 등의 기준에 따라 점수를 매긴 결과 1등을 차지한 문자는? 「대지」의 작가 펄벅이 “세계에서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훌륭한 글자”라고 평가했으며 「알파베타」의 저자 존맨이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이라고 말한 문자는? 정답은 한글. 이러한 한글이 지닌 ‘학문어’로서의 가능성과 잠재력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지난 8월 『우리말로 학문하기의 날갯짓』을 펴낸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우학모)’이 그 주인공이다. 학문어로서의 한국어가 소멸될지 모른다고 경고하는 그들은 어떤 활동을 하고 있을까?

우리말로 학문하기, 왜 필요한가?

우학모는 말 그대로 ‘우리말로 학문하기’를 표방하는 학자들의 단체다. 각자의 학문 분야를 우리말로 연구하기도 하고 우리말 자체에 대한 언어론적 연구를 하기도 하며 ‘말나눔잔치’라는 이름으로 학술대회를 열기도 한다.

유재원 교수(한국외대 그리스·불가리아어과)는 “언어는 학문어로서 굳건한 자리를 지킬 때 생명력을 갖는다”며 힌디어와 산스크리트어를 예로 들었다. 유 교수는 10억 인구가 사용하고 있는 힌디어는 학문적 생명력을 갖지 못해 학문적 성과를 이루어내지 못하는 ‘불임’의 상태에 빠졌지만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나 인도 철학의 핵심을 이루며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언어인 산스크리트어는 책 속에서 지식과 사상의 형태로 지속된다는 것이다.

우학모에 속하지 않은 연구자들 가운데서도 우리말로 학문하기의 중요성을 외치는 이들이 있다. 이광근 교수(컴퓨터공학부)는 근대 이전의 한국 학계의 역사를 ‘축적되지 않은 역사, 단절의 역사’라고 표현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조상들이 저술한 것을 읽고 이해하는 것이 중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렵다. 현재 우리글과 다른 한문으로 서술돼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어가 가진 학문어로서의 가능성을 보지 않고 영어가 이를 대체하는 것은 이러한 역사의 되풀이가 아닐까 하고 이 교수는 우려한다. 또 그는 외국어로 된 학술용어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는 한계점을 지적했다. 그는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된 개념을 확실히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 이는 결과적으로 더 큰 학문으로 나아가는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우리말로 학문하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우리말로 학문하기, 불가능한 얘기가 아니다

우학모는 지난 10년간 『우리말로 학문하기의 사무침』, 『우리말로 학문하기의 고마움』, 『우리말로 학문하기의 용틀임』 등의 책을 내면서 꾸준한 연구를 해오고 있다. 우학모 회장 최봉영 교수(한국항공대 교양학부)는 우리말도 고유의 체계를 지니고 있으므로 학문의 뜻을 담아내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강조한다.
가령 ‘아름다움’이라는 말을 예로 들 수 있다. 본래 ‘어떤 것의 둘레’를 뜻하는 ‘아름’은 측정하는 대상에 초점이 있으므로 개별성, 주체성을 뜻한다. ‘다하다’라는 동사에 뿌리를 둔 형용 어미 ‘다하다’에서 온 ‘다움’은 주체가 자기 고유의 가능성을 실현해 본디 성질을 다한 상태를 가리킨다. 이러한 ‘다움’을 추구하는 과정에서는 본디의 상태를 실현하려는 개체와 환경의 상호작용이 자연스럽게 포함된다. 최 교수에 따르면, 이러한 한국어에서의 ‘아름다움’은 단순히 ‘beauty’의 의미로 해석하기보다 주체와 환경의 상호작용, 공(公)적 의미의 구현으로 해석함이 옳다. 최 교수는 우리말이 우리의 삶을 엮어온 언어라는 점에도 주목했다. 실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서만 나타나는 ‘화병(火病)’이라는 개념은 1995년 미국정신의학회에 의해 ‘Hwa-byung’이라는 말로 표기가 결정되기도 했다.

우리말로 학문하기, 학자들부터 바뀌어야

우리말로 학문하기를 통해 학문이 사회적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철호 명예교수(고려대 식품공학과)는 “학문은 많은 사람에게 새로운 진리를 추구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며 국민들의 세금으로 연구비를 지원받는 한국의 연구자와 학자들은 한국 사회에서 한국인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우리말로 학문 결과를 냄으로써 한국 사회에 보탬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현기 초빙교수(세종대 국어국문학과)는 우리말을 학술용어로 활용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으면서 학문 활동에 우리말이 적합하지 않다고 왜곡된 평가를 내리는 것도 “학자들의 잘못된 의식 때문”이라고 말한다. 학계가 우리말로 학문 활동을 할 수 없었던 역사적 타성에 젖어 여전히 학술·문화적 사대주의에 빠져있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조선시대 사대부들과 피지배층의 예에서 보듯이 오늘날에도 영어를 아는 한국인과 모르는 한국인으로 이분하는 계급 사회가 다시 도래하게 될 것을 우려하기도 했다.

우학모는 앞으로 우리말로 학문하기를 우리 학계와 대중들에게 널리 확산시키는 데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말로 학문하는 풍조가 자리잡아 우학모가 해체되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밝힌 우학모 회원들의 바람이 이뤄질 수 있을지 그들의 행보를 주목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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