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나온 책] 『장기 비상시대』

제임스 하워드 쿤슬러 지음ㅣ이한중 옮김ㅣ갈라파고스ㅣ408쪽ㅣ1만7천원
언제까지나 현대 문명의 원동력일 것만 같았던 석유가 얼마 남지 않았다면? 그로 인해 생각지도 못한 변화가 우리를 기다린다면? 석유 없는 세상과 그 이후 우리 세대에 닥칠 여러 위기들을 보다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책이 번역·출간됐다. 2005년 미국에서 출간된 당시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킨 『장기 비상시대(The Long Emergency)』는 석유가 고갈된 시대를 ‘장기 비상시대’로 상정해 사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저널리스트 제임스 하워드 쿤슬러는 이미 세계 석유 생산이 정점을 지났으며 남은 석유는 대부분 지금보다 질은 더 낮지만 채굴이 훨씬 어렵고 비용도 더 많이 드는 곳에 매장돼 있다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앞으로도 석유는 현재의 체제를 유지한 주요 자원이지만 채굴이 점차 어려워질 경우 남아있는 석유를 얻기 위한 군사 분쟁이 일상화될 가능성이 높다. 저자는 화석 연료 시대의 종말이 다가오는 것을 모른 채 석유가 주는 풍요로움에 젖어있는 현대인을 ‘미래를 향해 몽유병에 걸린 것처럼 걸어가는 사람들’로 표현한다. 문제의 핵심은 석유 고갈이라기보다 현재 상황을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안이함이다.

석유가 고갈되더라도 사람들은 과학기술이 사회를 구원하고 대체 연료를 개발해 오늘날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체 연료는 우리를 구해줄 수 없다. 어떠한 대체 연료와 에너지의 조합도 석유 체제 하의 일상생활을 유지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수소 발전은 수소의 낮은 밀도로 이용 시스템이 석유와는 전혀 다르고 수소 원자는 대단히 가벼워 저장 자체가 어렵다. 태양광 및 풍력 발전에 필요한 배터리나 배선 등은 화석 연료를 이용하는 공장 생산과 같은 활동을 통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으므로 화석 연료 기반 시스템을 대신할 독립적인 대체물이 아니다. 우리가 석유를 대신할 것으로 굳게 믿었던 대체 연료는 장기 비상시대의 해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석유와 화석 연료의 시대가 끝나고 나면 어떤 세상이 도래할까? 저자는 상업과 교통, 주거지와 교육 등의 차원에서 석유 이후의 시대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 살펴봄으로써 독자들의 눈길을 끈다. 그에 따르면 기존의 교통 체계와 현재의 도시 체계는 파괴될 것이다. 인간은 걸어다닐 수 있는 범위 내에 도시를 새로 형성하고 가까운 주변 환경을 이용하며 살아가야 한다. 나아가 이동에도 제약을 받아 장거리 이동과 수송을 통한 물품 및 자원 조달이 불가능해 자연스럽게 식량 생산이 가장 중요한 문제로 자리잡을 것이다. 즉, 소규모 공동체에서 자급자족하는 생활이 필요해짐에 따라 실생활에 쓰일 수 있는 기술을 교육받는 등 석유가 없다면 우리 일상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다 변화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공상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저자는 석유가 고갈된 후 세계의 모습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저자는 석유 이후의 시대가 오는 것을 애써 무시하고 석유를 대체할 자원도 없는 상태로 오늘의 생활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들의 현실을 경고한다. 석유가 고갈되고 있는 현실이 비상시대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가 석유를 기반으로 이루어진 일상에 지나치게 익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이 석유 소비를 바탕으로 풍요롭기만 했던 현대의 삶에 익숙했던 우리의 태도를 돌이켜봄으로써 장기 비상시대를 대비해 우리 삶을 반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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