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함 속 토끼의 과묵한 수다
잠수함 속 토끼의 과묵한 수다
  • 나영인 기자
  • 승인 2011.10.01 23: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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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대화] 박후기 시인

시인은 과묵하다. 단어 하나로 세계를 바라보고 한 줄의 문장에 세계를 담는다. 눈이 아플 정도로 네온사인 불빛이 요란하던 가을밤 홍대거리, 박후기 시인이 어색한 듯 서 있었다.

을지로4가 일식횟집에 내어걸린 과메기들, 하나 같이 눈이 멀었다. 나일론 줄에 눈을 꿰인 채 줄지어 앉은 사람들, 아가미 벌려 술을 들이켠다. … 그렇게,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들은 스스로 눈을 찔러 눈먼 자가 되었다. (「눈먼 자들의 도시」)

2003년에 등단한 박후기 시인의 두 시집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2006)』와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2009)』에는 현란한 불빛이 아닌 잿빛의 가난과 비애감이 담겨있다. 어색해서, 우리는 눈먼 자들을 뒤로 한 채 인적이 드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워지지 않는 흉터

그의 삶은 비극적 서사의 출발이었다. 1968년 경기도 평택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대부분을 미군 부대에서 보냈다. 늘 보이던 옆집 누나가 기지촌의 접대부였고(깨진 애자의 젖은 몸이 길 위에 뒹굴고 / 미제 험비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 불에 그을린 애자의 몸을 밟고 지나갔네 -「애자의 슬픔」) 함께 놀던 친구들도 기지촌 아이들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돌이켜보니 불합리한 면이 많은 공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셈이더군요.”

특히 미군 부대에서 일하던 아버지의 죽음(미군 부대 격납고 지붕에서 / 땅으로 내리꽂힌 아버지 - 「뒤란의 봄」)과 잇따른 형의 죽음은 그의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가난과 허기, 유랑의 이미지로 가득 채웠다.

스무 살 여린 내 눈물이 / 군용 소보로빵의 푸른곰팡이로 피어났고 … 그 많은 시간들 / 더는 뒤돌아볼 수 없음이여 (「내 가슴의 무늬」)

“아버지와 형의 죽음을 겪고 난 20대 초 대부분을 술로 보냈다”는 시인. 가난한 아버지와 기지촌의 풍경들, 사춘기의 우울과 불우했던 청년시절의 이야기는 첫 시집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등단 후 처음 쓰는 시집에서 내 삶의 무늬들을 정리해보고 싶었죠.”

검은 비 내리고, 바짓단 젖는 팍팍한 세상

시인은 자신에게 상처를 준 세상 역시 상처투성이임을 놓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가 겪은 “허리띠를 졸라매도/바지를 흘러내리게 하는 생의 허기”(「행복의 나라로」)와 “검은 장화 속 같은 날들”(「검은 장화 속의 날들」)은 어느새 얼룩진 역사의 질곡들과 세상 주변부에 내던져진 이들의 슬픔을 독자들의 가슴속에 차곡차곡 쌓이게 했다. 그의 삶의 배경이었던 ‘미군 부대’와 ‘기지촌’은 시에서 되살아나 외세에 짓밟힌 현대사와 분단체제의 비극을 떠올리게 하며(「도두리」, 「옆집에 사는 앨리스」, 「애자의 슬픔」), ‘아버지의 죽음’과 ‘가난’은 “떨어지지 않기 위해 사는 것인지, 올라가기 위해 사는 것인지”(「크레바스」) 알 수 없게 만드는 자본주의의 비극적 현실을 내려다보게 한다.

“시인은 잠수함의 토끼에요. 과학기술 수준이 떨어지던 시절엔 잠수함 밑바닥에 산소 밀도를 확인하기 위해 토끼를 뒀대요. 산소가 희박해지면 토끼가 가장 먼저 위험을 알아차리거든요. 마찬가지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인 시인은 토끼와 같은 현실감각을 가져야합니다.” 2000년대 중반 한국 시단에 큰 파장을 일으켰던 소위 ‘미래파’ 혹은 ‘뉴웨이브’적 경향의 시인들과 함께 등단했지만 ‘토끼 같은’ 박후기의 시 세계는 확실히 그들과 차이가 있다.

‘미래파’란 권혁웅 문학평론가가 2005년 낯선 시풍, 획기적 시 형식, 환상성 등을 특징으로 하는 젊은 시인들을 가리키며 쓴 용어로, 이러한 움직임은 시단에 큰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박후기 시인은 “평론가들의 편의적 구분이 시의 다양성을 파괴할 위험이 있다”며 ‘미래파’라는 구분법을 우려하면서도 “분명 요즘 젊은 시인들이 지나치게 내면세계로 침잠하는 경향이 있다”며 문학의 현실 사태에 대한 발언권을 강조했다.

실제로 그의 두 번째 시집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했다』는 개인사적 이야기에서 점점 벗어나 빈민촌, 비정규직, 해고노동자, 불법체류자 등 한국 사회 전반의 문제들을 본격적으로 다뤘다. 바닥에서의 경험은 바닥에 “쥐포처럼/ 납작하게 엎드려 잠이 들곤”(「옆집에 사는 앨리스」) 하던 이들에 대한 연민과 조우한다.

바닥과 지붕은 다르지 않다 / 집이 무너지면 / 지붕도 바닥이 되고 / 바닥도 지붕이 된다 … 빈집이 무너진 자리 / 어느 별의 지붕이자 / 세상 가장 밑바닥에서 / 몸을 잃은 사람들이 / 모래알 같은 생쌀을 씹는다(「철거」)

그의 연민은 지구 반대편으로까지 확장된다. “팔레스타인 난민 소녀들의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훔쳤어요. 이런 동시대의 아픔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죠.” ( 앰뷸런스는 죽음보다 늦게 도착하고, 소녀는 무너진 발전소를 지나 집으로 간다 - 「소녀들」)

그럴수록 더 ‘울림’ 있게

하지만 그의 시에 등장하는 소재들이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해석돼 미적 가치를 훼손시키진 않을까. 이는 그의 오랜 고민이기도 했다. 1980년대 황지우, 이성복, 기형도 등의 시인이 활동했던 ‘무거운’ 사회적 상황과는 다르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비슷한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시가 어떤 역할을 해야할지는 전적으로 시인의 철저한 반성과 사유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시를 객관적 현실 위에 발붙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정치성을 띠게 쓰지만, 시인은 말해도 말하지 않은 듯 써야 하죠.”

가난한 아버지가 가련한 아들을 껴안고 잠든 밤 / 마른 이불과 따끈따끈한 요리를 꿈꾸며 잠든 밤 / 큰 슬픔이 작은 슬픔을 껴안고 잠든 밤 / 소금 같은 싸락눈이 신문지 갈피를 넘기며 염장을 지르는, 지하역의 겨울밤 (「자반고등어」)

그래서 그가 찾아낸 시의 미학적 근거는 ‘울림’이다. 그의 시엔 과장된 수사나 현란한 문체가 없다. 정직하고 솔직한, 육성에 가까운 진술들이라 쉽게 읽힌다. 상상력의 극단에서 시어를 구사하는 ‘미래파’적 경향의 시인들과 비교하면 그의 시어는 심심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보탤 것도 없고 덜 것도 없이 차분하고 침착하게 이어지는 시어들은 그래서 더 따뜻하게, 거북함 없이 바닥에 놓인 것들을 어루만지며 마음을 울린다.
할 수 있는 말과 해야만 하는 말 사이에서 오랫동안 고민했던 그는 내년에 세 번째 시집을 출간할 예정이다. 최근에 발표한 시들은 “개인사를 모두 배제하고 보다 함축적이지만 너무 현실을 놓지는 않게”라는 그의 말처럼 한층 더 성숙해진 모습을 보여준다. 장례식장에서 신장을 팔고(「한밤의 조문」), 일을 하기 위해 박제가 돼야 하며(「박제들」), 택시를 뛰어넘을 수는 있어도 가난을 뛰어넘을 수 없는(「복서 4-피자 배달 소년」) 각박한 현대인들의 단상이 구구절절 스며나온다.

시인은, 다릅니다. 바닥에 떨어진 목련의 혈담과 내려앉은 새들의 투병과 사월의 선동을 밥그릇보다 먼저 시라는 꽃병에 주워 담습니다. / 그러나 결핍을 모르는 시인은 모자 속에서 시를 만들고 호주머니 속에서 악수를 준비합니다. 그러므로 밥이 되고 남은 것들이 겨우 시가 되기도 합니다. (「시인들-이시가와 다쿠보쿠를 생각함」)

그는 말이 많다. 해야 할 말이 많은 세상이기 때문이리라. 밥그릇보다 먼저인 시라는 꽃병에서 앞으로도 “봉긋이 부풀어오른 꽃봉오리가 가난에 찌든 구옥(舊屋)의 내막을 희미하게 밝히고”(「목련 편지」)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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