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학과
가끔 학생들한테 대학에서 하는 공부가 재미없다는 말을 듣는다. 토론과 발표, 세미나 등과 같이 학생이 주도하는 수업이 있긴 하지만 많은 강좌가 고등학교에서 하던 수업과 그 방식이 다르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이들 강좌는 교수가 교수는 일방적으로 강의하고, 학생은 그 내용을 기록하여 시험으로 적어내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자신의 견해를 적어내야 하는 과정들이 요구되기도 하지만, 이것 역시 학생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는 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대학에서 행해지는 이러한 수업 방식은 전통적인 교수법 중 하나다. 그것도 꽤나 오랜 역사를 지니고, 권위를 가진 교수법이다. 칸트나 헤겔 역시 이러한 방식의 수업을 진행했다. 이러한 방식의 수업을 독일에서는 ‘Vorlesung’이라고 한다. 이 단어의 구성이 보여주듯이 ‘학생을 앞에 두고서(Vor)’, ‘교수자는 자신의 연구 원고를 낭독한다(lesung)’는 의미다. 현재 독일의 대학에서도 ‘Vorlesung’은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과거부터 계속돼 온 이러한 수업을 방식의 문제로만 비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학생들은 불만을 갖는가. 그것은 수업이 행해지는 과정에서 그 내용이 ‘전수된 이야기 지식(cognitio historica)’으로 끝나기 때문일 것이다. 교수자가 전한 지식을 학생 스스로 그 근거를 따져보지 않을 경우 그 지식은 하나의 ‘이야기’로 남게 될 것이다. 이야기가 발언되고 수용되는 상황을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듯이, 그 이야기에 심각한 문제가 있더라도 듣는 사람은 그 문제를 따지거나, 그 근거를 캐묻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그 이야기에 대한 문제나 근거를 따지기 시작하면 이제는 더 이상 이야기일 수 없게 된다. 이야기는 이제 심각한 탐구의 대상이 된다. 이야기는 근거를 의심받고, 근거들의 체계를 공격받으며 이야기의 주장이 근거들의 구조와 함께 검토된다. 이제 이야기는 이야기로 남을 수 없게 된다. 이야기가 탐구의 과정으로 진입한 것이다. 이러한 탐구의 과정을 거친 이야기는 이제 ‘근거를 따진, 혹은 합당한 근거 위에 세워진 지식(cognitio philosophica)’이 된다.

독일의 철학자 크리스티안 볼프(Christian Wolff, 1679∼1754)는 앞서 말한 두 가지 지식에다 ‘수학 지식(cognitio mathematica)’을 더해 세 가지로 분류했다. 물론 지식을 어떻게 구분하더라도 그 근거를 따지지 않은 이상 모든 지식은 ‘전수된 이야기적 지식’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전수된 이야기 지식의 근거를 여러 자료를 통해 따져 보는 일이 대학의 학문 과정이자 탐구다. 교수는 근거를 따질 수 있는 자료를 최대한 많이 제시하고, 학생은 이를 읽어야만 한다. 이렇게 될 때만이 진정한 ‘Vorlesung’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자, 이제 도서관으로 달려갈 일만 남았다.

이봉호 시간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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