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리 알려진 것처럼 영화 「도가니」는 2005년 광주 인화학교에서 실제로 벌어진 사건을 토대로 하고 있다. 원작 소설과 함께 영화 「도가니」 는 그곳에서 장애학생들을 대상으로 벌어진 끔찍한 범죄를 폭로하고 더불어 그 끔찍한 범죄를 은폐하기 위한 조직적인 시도가 있었으며 결국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 내려졌다는 사실 또한 고발하고 있다. 영화에서와 같이 가해자들은 현실에서 너무 가벼운 형량을 받았으며, 영화가 보여주는 장면 이후 그들은 복직했고 그후 동일한 범죄가 계속 저질러졌다는 의혹이 있었다는 점 또한 널리 알려졌다. 영화는 그들이 겪었을 고통과 치러지지 않은 피값에 대한 분노 그리고 분출되지 못한 분노에 뒤따른 무력감을 성공적으로 영상화하면서 많은 관객들에게 그 고통과 분노와 무력감을 함께 느끼게 만드는 것 또한 성공하고 있다.

어쩌면 고통과 분노와 무력감 가운데 마지막 항목은 삭제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도가니」 의 영향력이 어찌나 대단했던지 영화가 개봉한지 일주일 만에 인화학교 사건에 대한 재수사가 결정됐고, 일명 ‘도가니 방지법’(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는 일부 의원들의 보도자료까지 나오기도 했으니 말이다. 2007년 이 개정안이 이미 발의됐으며 지금의 여당이 이를 반대해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이 무산된 적이 있기는 하지만, 지금이라도 이 법이 보완된다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도가니」의 영향력 덕분에 「도가니」 속의 인물들이 느꼈을 무력감은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를 함께 건드리고 있다. 우리가 이 영화를 보기에 앞서, 피해당사자들과 그들에 공감했던 장애인들이 정당한 분노를 터뜨렸을 때, 경찰과 사법부는 그들을 ‘법의 이름으로’ 진압하고 끌어냈다. 가해자들은 피해자들의 의사와 상관없는 곳에서 ‘법의 이름으로’ 어떤 의미에서는 용서받았고 또 혐의를 벗었다. 불법은 끔찍한 범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범죄에 항의하느라 빚어진 무질서와 분노의 표현 속에 있다고 법은 말하는 듯하다. 그러니까 영화의 메시지를 급진적으로 읽어내려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어할 것이다. 만일 법이라는 것이 이미 외설적인 범죄이며 그 범죄에 대한 항거를 불법이라고 규정하는 폭력 기계라고 한다면 어찌할 것인가.

이 글은 지금 한창 흥행 중인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일 뿐이다. 하지만 어쩌면 이 영화 자체가 지금까지 겪어왔고 또 겪게 될 삶에 대한 스포일러일지도 모르겠다. 범죄에 희생당한 사람들의 항변을 불법이라고 규정하는 법의 얼굴은 용산참사를 심판한 법원에서도 이미 목격하지 않았던가. 그때 경찰들과 대치하던 문정현 신부가 이번에는 제주도 강정마을에서 연행되지 않았는가. 우리는 지금 어떤 스포일러를 보고 있는 것일까.

권희철 간사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