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래픽: 김응창 기자

1970~80년대 학생운동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책이 있다. 유신 정권 치하에서 금서였던 리영희 명예교수(한양대ㆍ항해학과)의 저서『전환시대의 논리-아시아 중국ㆍ한국』이 그것이다. 리영희 교수는 『전환시대의 논리』(1974)와 『분단을 넘어서』(1984),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1994) 등을 통해 반공체제와 냉전논리의 허구성을 주장했다. 프랑스의 「르몽드」지는 1970년대 리영희를 일러 ‘한국 젊은이들의 사상적 은사(恩師)’라고 칭했지만 문학평론가 이동하씨는 그를 ‘어리석은 우상숭배자’라고 평했다. 이처럼 상반된 평가가 존재하는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현대사를 복원하고자 한 『한국 현대사의 길잡이― 리영희』가 최근 출간됐다.

 


저자인 강준만 교수(전북대ㆍ신문방송학과)는 책에 대해 “‘평전’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평전은 아니다”라며 “역사서와 인물론이 별개로 존재하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이 책을 엮어냈다는 의미로 ‘지음’ 이 아니라‘편저(編著)’로 규정하고, 리영희의 많은 저작들과 신문기사, 각종 문헌을 통해 리영희의 삶과 현대사를 재현했다. 강 교수는 “리영희는 희망과 열정으로 한국 현대사의 어두움을 고발하고 우상에 도전한 인물”이라며 “그를 통해 현대사의 감춰진 모습을 드러내고자 했다”고 밝혔다.

 

한 개인의 삶을 통해 한국 현대사 복원시켜


책은 ‘거창민간인학살사건’에서 ‘6ㆍ15남북공동선언’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을 서술하고 그에 대한 리영희의 행적이나 언론 활동을 기록하는 형태로 구성됐다. 예를 들어 강 교수는 사전 무더기 투표, 공개투표, 투표함과 표 바꿔치기 등을 통해 자행된 3ㆍ15부정 선거와 최루탄이 눈에 박힌 김주열 군의 신문 사진 보도가 4ㆍ19혁명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당시 기자이면서 데모에 참여했던 리영희의 행적에 대해 강 교수는 “역사적 증인의 역할을 넘어서 적극적인 참여자로 활동했다”고 평가한다. 또 강 교수는 5ㆍ18 광주 사태를 ‘지상의 지옥’이라고 표현했다가 당시 조작된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에 연루되어 고문을 당했던 리영희를 ‘광주 학살 사전단계인 5ㆍ17 사건의 희생자’라고 보았다. 그밖에 박정희 정권의 베트남 전쟁 왜곡보도 청탁을 거절하고 공산권 국가에 대한 저술활동을 하던 중 반공법을 위반했다는 명목으로 옥고를 치른 리영희의 행적들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에 저항했던 삶의 방식을 서술하고 있다.

 

현재의 대학생들에게  리영희를 알리는 것이 목적


리영희에 대한 평가 작업은 2003년에 김만수 강사(홍익대ㆍ국어교육과)의 『리영희― 살아있는 신화』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시도이다. 비교적 대중적으로 쓰여진 강준만 교수의 책에 비해 김만수 강사의 책은 개인의 사상과 사회적 행적에 대해 사회학적  분석이 주를 이룬다. 강 교수는 “김만수의 책은 치밀한 학술서이기 때문에 실용성을 앞세운 나의 책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여기서의 실용성은 현재의 대학생들이 리영희를 알도록 자극을 준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한편 살아있는 인물을 평전의 주인공으로 삼는 것에 대해 강 교수는 “생존한 인물에 대한 평전의 ‘위험성’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며 “문제는 대상 인물의 생사 여부가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에 있다”고 강조했다.

 


 리영희 교수는 책에 대해 “역사적 평가는 감사하지만 긍정적 평가보다는 비평이 나에게 더 바람직하다”며 “내 책들이 더 이상 읽히지 않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강 교수는 “리영희가 원하는 세상이 오더라도 그의 책은 계속 읽혀져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고스란히 체험한 리영희 교수를 알리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가 젊은 세대에게도 전달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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