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학부 석사과정
우리는 오늘도 죽음을 먹는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살아 숨 쉬었던 생명체를 먹는다. 그렇게 우리는 나 아닌 다른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감으로써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우리는 오늘도 죽음을 버린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이로웠던 죽은 생명체에서 필요한 것만을 취하고 버린다. 그리고 그것을 냄새나고 더럽다는 이유로 눈앞에서 사라지게 만든다. 비단 배설물만이 아니다. 먹다 남은 음식과 입지 않는 옷, 온갖 포장재 등 우리가 독단적으로 쓰레기라 여기는 수많은 죽음들을 버리며 우리는 살고 있다. 마치 처음부터 그들에게 생명이란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또 그냥 버리는 게 아니다. 막 버린다. 소비로 생명을 앗아가는 것뿐 아니라 우리는 버리는 행위로도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있다. 배설물 투기로 인한 적조·녹조 현상과 바다오염, 사막화, 핵폐기물의 방사능 유출 등과 같이 우리는 죽음을 함부로 버림으로써 또 다른 죽음을 야기하고 있다.

원래부터 죽음에게 생명이 없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죽음은 언제나 지구의 일부분이었다. 때로는 생명이 깃든 채로 축복받은 삶을 살기도 하고, 때로는 잠시 무기물이 돼 다른 무기물들에게 생명의 기쁨을 누릴 기회를 줬다. 그렇게 한 생명의 죽음은 또 다른 죽음에게 생명을 주었다. 하지만 우리의 잘못된 행동으로 죽음이 죽음을 낳게 됐다. 그로 인해 지구의 생명은 줄어들고, 죽음은 늘어만 가고 있다. 과연 이 지구의 생명은 이제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할까. 아니, 살 수는 있을까.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라는 책을 읽던 중, 롤프 에드버그가 쓴 시에서 이런 구절을 읽었다. ‘지금 당신이 들이마시는 공기 속의 어떤 원소들은 부처나 예수의 코 속으로 들어갔던 것도 있고, 한 때 동굴에 사는 원시인의 폐 속을 방문했던 것도 있다.’ 뜬금없게도 나는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내 몸의 원소들이 어디서 온 것일까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결국 나란 존재는 지구의 나이와 같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어느 하나 지구의 것이 아닌 것이 없기 때문이다. 현대의 최첨단 기술의 결정체인 우주왕복선도, 그리고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도 모두 지구의 물질로 이뤄졌다. 지구의 물질, 그것은 현재를 구성하고 있으면서도, 과거를 구성했었던 물질이다. 즉 지금 내 몸을 이루고 있는 모든 원소들은 태초의 지구로부터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다른 생명체, 아니 생명이 깃들지 않은 무기물일지라도 그들은 모두 태초의 지구와 나이가 같다. 그들 역시 모두 태초의 원소들로 구성돼있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우리 모두는 태초의 지구 원소로 이뤄져 있기에 우리는 모두 지구의 자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했다. 내가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한 이유는 남이라고 생각한 그들도 결국 나와 같은 형제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살 것이다. 아니, 살아야만 한다. 20여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생명을 희생시킨 대가로 지금의 내가 있기에 나의 생은 오로지 나의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오직 나만을 위한 삶을 살 수도 없다. 아니, 살면 안 된다. 나인 그대들을 모른 채 할 순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살 것이다. 생명을 소중히 하는 삶을. 나로 인해 야기된 죽음에게 생명을 돌려주는 삶을. 나를 위한 삶이 아닌 모두를 위하는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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