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경제 권력의 길들이기로
스스로 재갈 물고 눈감은 우리사회 언론
민주주의와 사회 정의 실현 위해서는
언론기관의 독립성 보장돼야

언론(言論)은 본래 언치논도(言治論道)의 줄임말로 바람직한 치도를 둘러싼 논의를 말한다. 단어의 뜻대로 조선시대 언론기관은 왕의 정치가 바른 길로 가도록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간원들은 두려움 없이 왕의 잘못을 지적하는 상소를 올렸고 사간원, 사헌부, 홍문관 세 기관이 합심해 상소하는 삼사합계는 왕이라 해도 함부로 무시할 수 없었다. 당연히 왕권을 강화하려는 군왕에게는 언론기관이 눈엣가시였다. 폭군이 들어서면 가장 먼저 언론기관의 입을 틀어막고자 했다. 연산군은 “대간 역시 신하인데 꼭 임금으로 하여금 그 말을 다 듣도록 하는 것이 옳은가”라며 신하들의 간언에 귀를 닫았다.

이같은 삼사의 관원을 선발할 수 있는 인사권을 왕도, 재상도 아닌 하급관리 전랑에게 쥐어준 것을 보면 조상들은 언론기관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찍이 깨달았던 듯하다. 어떠한 구속이나 압력 없이 자유롭게 권력의 치부와 잘못을 밝히는 언론이야말로 바람직한 치도의 기본이다. 권력을 쥔 자가 입 바른 소리 하는 언론을 두려워하고 미워하는 것이야 말로 언론이 제역할을 다 하고 있다는 증거다.

하지만 오늘날의 정권은 언론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쓴소리를 마다하지 말아야 할 언론이 알아서 머리를 조아리고 권력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알 권리를 위해 보도했던 PD수첩 제작진들에게는 중징계가 떨어지고, 대법원이 무죄라는데 정작 언론은 ‘죄송하다’고 사과를 한다. 사과의 대상이 국민이라 가장해도 모두의 귀에는 정권의 심기를 어지럽혀 죄송하다는 말로 들린다. 사회 문제에 대해 발언하는 소셜테이너는 TV 출연을 금지당하고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프로그램들은 불방이다. 권력의 미움을 기쁜 마음으로 감수해야 할 언론이 외려 정권의 사랑을 받고 싶어 아양 떨고 있다.

한편에서는 돈이 언론을 쥐락펴락한다. 정치권이 부러 미디어렙법을 표류시키는 사이 언론들은 치열한 광고 시장에서 전면 경쟁을 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종합편성채널은 다음달 초 채널설명회를 연다. SBS, MBC 등 지상파 방송사도 광고 직접 영업에 뛰어들겠다고 한다. 정권의 압력 앞에 나약했던 언론이 광고주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것이라 기대하기 어렵다. 미디어렙을 거치지 않은 채 직접 광고를 판매하는 방송사는 제 밥줄을 쥔 이들의 잘못을 외면하고 침묵할 것이다.

한때 언론인을 꿈꾸었다. 가장 낮은 곳을 조명하고 사회의 어두운 면을 기록하는 언론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입학 면접 자리에서 지원동기를 묻는 질문에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PD수첩 같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고 말했더랬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신입생의 순진한 포부는 꽤 닳아버렸다. 시대의 그림자를 고발하는 목소리에는 징계를 내리고 제 이권 다툼에 정신없는 언론을 보면서 나도 저 속에 들어가 자기검열을 하며 용기 없는 쉬운 말만 하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든다.

그러나 내 나약함을 탓하기 전에 이 두려움이 어디서 온 것인지 다시 한 번 묻는다. 바른 소리를 내려는 언론인에게 과도한 희생과 용기를 강요하는 지금 우리 사회의 언론 지형이 정상인가. 조선시대 간원들의 직언은 그들의 두려움을 제거해주는 제도적 장치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오늘날 언론을 좌지우지하려는 정치와 경제 권력은 언론을 채찍질하고 길들여 언론인에게 두려움을 심는다. 스스로 재갈을 물고 눈을 감도록.

민주주의와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한 언론의 역할을 또 다시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언론이 입 바른 소리, 쓴소리를 거리낌없이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누구나 안다. 다만 상식이 상식으로 지켜지는 사회를 바란다. 그리하여 내가 꾼 꿈이 부끄럽지 않도록, 내가 걷는 길이 흔들리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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