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의 유료 관객이 약 96%에 달하는 데 반해 연극계 유료관객의 수치는 약 76%를 웃돌 뿐이다. 유료 관객의 수가 적다는 것은 그만큼 연극계가 매표 수익을 얻지 못해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음을 의미한다. 예술에 대한 열정만으로는 이 같은 연극계 상황을 버티기가 쉽지 않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같은 정부 단체의 지원을 기대할 수도 있지만 예술인 모두가 혜택을 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연극계 현장에서 어려운 현실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 극단은 최근 자체적인 해결책을 내놓고 있다. 연극계의 힘겨운 현실에 맞서고 있는 극단들이 보내는 희망의 메시지를 읽어보자.

선배 극단이 마련하는 기획의 장

연극에 대한 꿈을 안고 출발한 신생 극단들은 본격적으로 활동을 펼치기도 전에 문을 닫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신작을 준비해도 작품을 올릴 극장을 빌릴 경제적 여건을 마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학로에 공연을 올리기 위해서는 하루 평균 50~60만원의 비용을 대관료로 지불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금액은 일반적으로 제작 비용의 50%에 해당하는 만큼 대관비 충당이 힘겨운 신생 극단이 관객을 맞이할 공간을 구하는 것은 녹록치 않다.

극공작소 마방진은 지난 6월 말부터 한 달 동안 신생 극단 낭만유랑단, 창작집단 LAS, 극발전소301를 위해 ‘바통타치 프로젝트’를 꾸렸다. 자체적으로 극장을 운영 중인 극공작소 마방진은 극장을 저렴한 가격으로 빌려줘 신생 극단의 대관 비용 부담을 대폭 줄이고자 했다. 세 극단들은 참신한 아이디어로 가득하지만 극장 대관 문제로 공연 진행에 어려움을 겪던 후배들이었다. 후배들의 가능성을 엿본 극공작소 마방진은 이들에게 바통타치에 참여할 것을 권유했다. 극발전소301의 정범철 대표는 “선배 극단의 도움으로 보다 편안하고 좋은 환경에서 작업할 수 있었다”며 바통타치를 마친 소감을 전했다. 특히 바통타치는 극단이 정부나 다른 단체의 지원 없이 비용의 상당부분을 직접 부담했기에 그 의미는 더욱 뜻깊다. 극공작소 마방진 고강민 대표는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 경제적으로 감수해야 할 부분은 많았다”면서도 “우리 극단도 초창기에는 극장 대관 문제로 고충이 많았던 경험이 있기에 이들을 지지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 9월부터 시작해 다음 11월까지 극단 조은컴퍼니가 주최하는 ‘단솔 프로젝트’는 극장이 없는 극단에게 가변극장 키작은소나무를 무료로 빌려주고 있다. 극장을 마련하기 전에는 극단 조은컴퍼니 역시 대관 비용 부담 때문에 작품 활동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때부터 극단 조은컴퍼니는 후배 극단의 대관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러다 2009년에 가변극장 키작은소나무를 운영하게 되면서 극단 조은컴퍼니는 단솔 프로젝트 계획에 착수했다. 올해 2회를 맞이한 이 프로젝트는 초연 창작극이 관객과 현장에서 호흡을 맞춰보며 발전하도록 돕는 작품 인큐베이팅 형식으로 진행된다. 아직은 설익은 초기 작품이지만 무대화를 거치며 수정·보완되며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하는 것이다. ‘꿈꾸는 청춘, 꿈과 희망을 말하다’라는 주제로 공모전을 펼친 단솔 프로젝트는 올해 작품 다섯 편을 선정했다. 이는 「그냥 청춘」, 「청춘밴드」 등 청춘을 소재로 하는 연극을 왕성히 공연해온 극단 조은컴퍼니의 이미지와 일맥상통해 관객의 시선을 더욱 집중시키고 있다. 극단 조은컴퍼니 김제훈 대표는 “같은 주제로 앞으로도 매년 단솔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라며 “신인 연극인의 좋은 창작극을 접해보며 더욱 많은 관객이 순수 창작극의 매력을 느꼈으면 한다”고 말했다.

작가와 무대를 이어주는 다리

희곡의 정의는 ‘무대 연기를 위해 쓰인 작품’이다. 하지만 극작가가 희곡을 창작한다고 해서 모든 작품이 무대화되지는 않는다. 희곡은 매년 신춘문예 등을 통해 발표돼도 이를 상연해 줄 극단을 만나야 연극 작품으로서 의미가 커진다. 극단 대표가 희곡 창작과 연출을 모두 도맡는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극작가는 특정 극단에 소속되지 않은 채 작품 활동을 한다. 그렇기에 극작가와 극단을 연결해줄 통로의 필요성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25년간 연극계에 깊숙이 몸담아온 극단 작은신화는 이 문제 해결에 바투 다가설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다.

극단 작은신화는 자체적으로 창작 희곡 공모전인 ‘우리연극만들기’를 2년마다 진행하며 기성·신인 작가의 우수한 작품을 발굴하고 있다. 극단 특성과의 조화를 고려해 작품을 선정한 후 극단이 이를 무대에서 직접 공연해준다. 공연 상연에 드는 비용은 극단에서 모두 부담하는 만큼 아직 연극계에 기반이 미약한 극작가더라도 부담 없이 현장에서 무대경험을 접할 수 있다. 올해 우리연극만들기에 작품 「우주인」이 뽑힌 오세혁 작가는 “창작 공연을 전문적으로 올리며 연극계에서 신뢰 받고 있는 극단과 함께 작업할 수 있어 매우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한 해 동안 서울신문, 부산일보 두 개의 신춘문예에 작품이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지만 우리연극만들기의 희소식은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다고 한다. 그는 “무대화되지 않은 신춘문예 작품은 문학의 가치만 있는 개인의 작업”이라며 “우리연극만들기는 연출, 배우, 작가가 모여 공동 작업을 할 수 있어 그 의미가 특별하다”고 이유를 밝혔다.

동시대의 작가들과 교류의 물꼬를 트는 우리연극만들기는 1993년부터 꾸준히 열리고 있다. 18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이어온 우리연극만들기를 거친 신진 작가들은 현재 연극계의 든든한 기둥으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연극과 뮤지컬을 넘나들며 극작가 겸 연출가로 왕성하게 활동 중인 조광화 교수(서울예대 극작과) 역시 신인 극작가 시절을 극단 작은신화와 함께 보냈다. 제1회 우리연극만들기의 첫 당선작인 「황구도」의 작가인 그는 “당시 머릿속에서만 그리던 작품이 무대화된 모습을 눈으로 직접 보니 굉장히 기뻤다”며 “신인에게 그런 기회를 준 극단 작은신화가 고맙다”고 회고했다. 이어 그는 “우리연극만들기는 대학로에서 직접 작품을 올리며 활동하고 싶은 극작가에게는 더없이 좋은 기회”라며 “극작가 지망생인 제자들에게 이를 추천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극단 내부에서 만족도가 높은 우리연극만들기는 1995년 한국연극평론가협회의 특별상을 수상하는 등 외부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다. 이영석 강사(국민대 연극영화전공)은 “연극의 기본은 협업”이라며 “극작가들에게 극단과 공동의 정체성을 갖게 하는 우리연극만들기는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극단 작은신화 최용훈 대표는 “우수한 희곡작가들이 여럿 거쳐 간 만큼 신인 작가들이 점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이들과 함께 작업을 하면서 극단과 극작가 간 교류의 장을 넓혀가고 있다”고 말했다.

순수 연극 부활의 불씨를 품는 공간

최근 대학로 연극계는 흥미·오락 위주의 코미디물 같은 상업적 작품으로 넘쳐나고 있다. 관객을 끌기 위해 호객 행위까지 하는 상업극에 밀려 순수 연극은 대학로에서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서울연극센터가 2010년 발표한 ‘대학로 공연장 활성화 방안 연구’는 연극계의 실태에 대해 “낮은 수준의 상업극 공연은 관극 후 관객이 다시 대학로를 찾지 않게 하는 악순환의 원인”이라 지적했다. 순수 연극은 대중적 관심사에 집중하기 보다는 우리 삶의 일면을 표현할 방법을 연구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쏟고 있기에 그 가치가 남다르다. 이처럼 상업극의 범람에 맞서 순수 연극을 지켜내기 위해 대학로에 한데 뭉친 연극인들이 있다.

대학로길 끝자락에 위치한 정보소극장은 순수 연극의 부활을 꿈꾸는 중견 극단들의 전초 기지다. 2008년 세상을 떠난 배우 겸 연출가 박광정씨가 운영했던 이 극장은 순수 연극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고인의 뜻을 잇고자 골목길, 작은신화, 여행자, 백수광부, 풍경 등 다섯 개 극단이 함께 인수한 곳이다. 올해부터는 극단 청우까지 여기에 참여하며 여섯 극단이 극장을 공동으로 운영하는 정보극장운영회를 결성했다. 대학로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이들은 정보소극장에 각 극단이 선보이고 싶은 실험적인 작품을 번갈아 올리며 연극 마니아층을 끌어들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정보소극장은 극단끼리 협력해 만든 새로운 작품을 소개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들 극단은 극장에서 정보연극전을 개최해 관객이 각 극단만의 색깔을 접해보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2009년 정보소극장의 공동 운영의 첫 신호탄과 함께 열린 제1회 정보연극전 「다시(多視)」는 두 달간 각 연극을 릴레이식으로 올리며 의기투합한 다섯 극단의 차별화된 특성을 보여줬다. 이어 올해 9월에는 제2회 정보연극전이 「햄릿 업데이트」라는 이름으로 열렸다. 이는 여섯 극단이 공통 주제인 ‘햄릿’을 내걸고 30분씩 번갈아가며 공연을 펼치는 옴니버스 단막극으로 기존 연극계에서 찾기 어려운 신선한 방식이었다.

한편 혜화동 로터리에 위치한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는 연출가 동인이 공동으로 운영하며 젊은 극단들이 다양한 실험 연극을 시도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동인 혜화동 1번지는 1994년 1기가 출범해 선배 기수가 후배 동인을 뽑는 방식으로 17년째 유지되고 있다. 올해 새롭게 선발된 5기 그린피그, 미인, 해인, 빠-다밥, 거미 등 다섯 개 극단의 대표들은 상업극의 대안이 될 작품 공연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들은 선배들이 물려준 극장을 주축으로 삼아 관객이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언어로 극을 풀어가거나 시간을 끊임없이 거꾸로 올라가는 플래시 백 기법을 사용하는 등 참신한 형식을 선보이고 있다. 극단 미인 김수희 대표는 “혜화동 1번지에서 동인은 정보를 공유하고 작품도 함께 구상한다”며 “최근에는 ‘시를 쓰는 마음’을 주제로 열릴 가을 연극 페스티벌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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