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정보연극전 「햄릿업데이트」

하나의 동일한 소재가 각기 다른 시선에서 다른 감각을 덧입고 어떻게 재탄생될 수 있는 지를 실험적으로 선보이기 위해 여섯 극단이 정보연극전 「햄릿업데이트」로 동시에 뭉쳤다. 이번 연극전은 세 개씩 극단을 묶어 새로운 감각을 덧입은 햄릿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기자가 찾아간 두 번째 공연은 극단 골목길, 여행, 작은신화의 작품으로 무대가 꾸려졌다. 무대는 단순했다. 널찍한 나무판자가 무대 한 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 이는 세 극단이 러닝타임 내내 ‘공동’으로 활용할 간단한 무대장치였다. 한 무대에 같은 소재를 재해석한 세 극단들은 무엇보다도 풍성한 볼거리를 풀어놓았다.

극단 골목길의 ‘길 위의 햄릿’은 망루부터 어머니의 방까지 엘시노어 성 곳곳으로 장소를 옮겨 다니며 원작의 개괄적인 줄거리를 훑는다. 햄릿은 삼촌에 대한 복수심, 어머니에 대한 배신감, 자신의 나약함에 대한 자책으로 끊임없이 분노를 게워낸다. 하지만 그는 홀로 괴로워하면서 행동을 망설이고 주저하던 원작 햄릿의 모습을 벗는다. 어느 순간 그는 묵직한 돌덩이를 들고 울분 가득한 목소리로 외친다. “침묵은 죄악이다. 돌을 들어라. 가자. 가자.” 이는 더 이상 현실의 부조리를 속으로만 삭히지 않고 투쟁하겠다는 강인한 햄릿의 탄생을 보여준다. 햄릿이 때로는 객석을 숙부 클로디우스로, 때로는 어머니로, 때로는 빈 벽으로 여기며 뱉어내는 날카로운 독백과 노기어린 눈빛은 공연 내내 관객을 긴장케 한다. 여기에는 햄릿의 심정을 대변하는 악기 연주까지 더해져 극의 집중도를 높인다. 햄릿의 독백과 전통 음악이 이루는 조화에서는 골목길만의 참신한 시도가 엿보였다.

잠시 동안의 암전 뒤에 이어진 극단 풍경의 작품 ‘햄릿, 서바이벌’은 소재와 형식에서 가장 신선했다. 최근 유행하는 서바이벌 오디션의 틀을 빌린 이 극은 햄릿을 주제로 3분가량 연기를 펼치는 다섯 명의 지원자, 즉 다섯 명의 햄릿을 보여준다. 왕따 햄릿, 기자 햄릿, 전경 햄릿,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햄릿, 고3 수험생 햄릿. 이들은 고뇌하고 좌절하는 햄릿의 특성을 꼭 빼닮은 현대 사회 속 인물군상을 그려낸다. 특히 아르바이트생 햄릿이 드러내는 현실은 20대의 피부에 가장 와 닿는다. 그는 편의점 바로 앞에서 대학생 등록금 반값 시위가 펼쳐지는 현장을 지켜보며 이에 참여하고 싶은 강한 의지로 불타오른 젊은 아르바이트생이다. 하지만 그는 돈을 벌어야만 하는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선뜻 편의점에서 뛰쳐나가지 못한다. 그 대신 휴대폰으로 현장을 중계하는 소극적인 방식을 택할 뿐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과감하게 문제 해결에 앞장서지 못하고 뒤에서 고민하기만 하는 그의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극단 작은신화의 ‘그냥 햄릿’은 제목 그대로 ‘그냥’일뿐인 햄릿을 풀어냈다. 이 작품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묻어나는 햄릿을 통해 원작의 나약하고 우유부단한 성격을 한층 더 짙게 표현한다. 무서웠던 아버지보다 자상한 삼촌을 더 좋아하는 것으로 설정된 햄릿이 어머니의 재혼을 불만스러워하는 이유는 바로 어머니의 손길을 더 이상 느낄 수 없기 때문. 자신의 소유물이었던 어머니를 잃었다는 생각으로 여자를 불신하게 된 햄릿은 “약한 자라구? 아니지, 악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라며 뾰로통하게 대사를 내뱉는다. 자신에 대한 복수를 종용하는 아버지의 유령에게도 ‘자고 있었으면서 어떻게 삼촌의 살해 현장을 보았냐’며 시종일관 투덜댈 뿐이다. 이처럼 겉만 자란 어린아이에 불과한 햄릿은 타인에 의해 수동적으로 자신의 행동 방향을 결정한다. 자신의 주위를 계속 맴돌며 각기 다른 요구를 하는 아버지, 어머니, 연인, 친구가 말 한마디를 던질 때마다 흔들리던 그는 망설임을 반복하다가 결국 탁자 밑에 기어들어간다. 공연 내내 그가 능동적으로 한 일은 이것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탁자 밑에서 몸을 웅크리고 아기처럼 엄지를 빨면서 나중에 복수를 하겠다며 스르르 잠이 드는 그의 모습은 이 작품의 백미로 꼽을 만하다.

각 극단에게 주어진 30분을 알차게 채워서 엮은 「햄릿업데이트」는 같은 소재에서 시작해 같은 공간에서 일궈졌지만 차이점으로 가득하다. 각 작품의 햄릿들이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같은 유명한 대사를 똑같이 읊조려도 어떤 성격의 햄릿이 말하느냐에 따라 느낌은 달라진다.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고전 속 햄릿을 다각도에서 분석해 한 자리에서 보여준 이번 극의 시도는 더욱 신선하고 흥미롭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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