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문제에 무관심한’, ‘스펙 쌓기에만 몰두하는’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붙었던 20대가 달라지고 있다. 지난해 6.2지방선거에서 20대 투표율은 급증했고 상반기 반값등록금 집회에는 수만명의 대학생들이 참여했으며 최근 이들은 ‘반값 생활비’, 대학가 주거권 등 더욱 다양한 사안들에 대해 목소리를 내길 주저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학신문』은 주목 받고 있는 20대의 사회 참여 현상을 분석하고 20대의 정치적 영향력을 높이기 위한 방향을 모색해봤다.

'개념 없는 20대'에 대한 반론

2007년 386세대 경제학자 우석훈은 오늘날 20대에게 88만원 세대(한국 전체 비정규직 평균 월급 119만원 × 전체 임금에 대한 20대 임금의 비율 74% = 88만원)라는 암울한 호칭을 붙였다. 그는 20대가 승자독식 게임을 받아들인 첫 세대며 20대의 95%는 비정규직으로 불안정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20대를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시각은 ‘동정’을 넘어 ‘비난’으로까지 발전했다. 진보진영을 중심으로 나타난 ‘20대 개XX론’이 그 대표적인 예다. 2009년 6월 당시 한양대 겸임교수였던 김용민 전 교수는 「충대신문」에 기고한 ‘너희에겐 희망이 없다’에서 ‘학점 관리, 스펙 쌓기에만 혈안이 된’ 20대를 비난하면서 “너희는 안 된다. 뭘 해도 늦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글은 큰 파장을 일으켰고 지난해 5월 한 케이블 TV 토론 프로그램에서는 ‘20대 개XX론, 모욕인가 진실인가’를 주제로 토론회가 열리기도 했다. 이처럼 20대에 대한 비관적 시각은 한동안 기성세대 전체에 만연해 있었다.

사진: 길은선 기자 tttkt@snu.kr

하지만 일부 20대들은 이러한 20대 담론이 근본적인 결함을 지니고 있다고 비판해 왔다. 기성세대가 정작 20대의 경험과 시각에는 신경 쓰지 않은 채 기존 정치권에서 보이는 문제의 책임을 20대에게 전가했다는 것이다. 인터넷 논객 한윤형씨는 2009년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동네북 돼버린 20대를 위한 변명’이라는 글에서 20대가 정치에 무관심해진 이유는 소위 진보·개혁 세력들이 20대를 위해 뭘 해주겠다는 것인지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20대 개XX론’에 반박했다. 기존 정치권의 무능함이 20대를 ‘누가 집권해도 다를 게 없다’는 냉소주의에 빠지게 했고 이것이 무관심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또 20대의 정치에 대한 관심이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는 주장도 있다. 20대의 정치 참여 욕구는 꾸준히 있었지만 이것이 표출될 공간이 협소해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s Party 김성환 활동가는 “20대를 대상으로 유권자들이 커피를 마시며 정치 수다를 떠는 모임인 ‘커피파티’를 진행하면서 20대도 사회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공간이 생기면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표명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정당을 비롯한 기존의 정치 참여 공간이 20대에게 충분히 매력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20대의 목소리가 표출되지 못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침묵을 깨고 나온 20대

20대를 ‘개념없는 세대’로 규정하는 담론에 맞선 20대의 반박은 줄기차게 이어져 왔지만 대다수 20대는 침묵에서 벗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지난해 초 고려대 김예슬씨가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의 현실에 반발해 자퇴를 선언했을 때도 김씨의 주장에 공감해 분노의 목소리를 높이는 20대를 찾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지난해 6.2지방선거부터 변화의 분위기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지방선거에서 19세와 20대 초반, 20대 후반의 투표율이 각각 47.4%, 45.8%, 37.1%로 2008년 총선 당시 각각 33.2%, 32.9%, 24.2%를 기록한 것에 비해 크게 상승한 것이다. 20대 투표율이 급증하자 민주당이 대학생위원회를 특별위원회에서 당내 정식기구로 개편하는 등 각 정당들은 20대 구애작전에 나섰고 20대를 향한 기성세대의 시각도 긍정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올해 들어서도 20대의 현실 참여적 태도는 계속 이어졌다. 상반기에는 수만명의 학생들이 거리로 나와 반값등록금을 촉구하며 등록금 문제를 중요 사회 문제로 부각시키는 데 성공했고, 오랫동안 열리지 못했던 학생총회가 서울대와 경희대 등 10여곳의 대학에서 연달아 성사되기도 했다. 일련의 사건들의 내용이나 성격은 조금씩 달랐지만 이를 통해 침묵으로 일관해 온 20대의 정치 참여 욕구가 현실에 드러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 무엇이 20대의 침묵을 깨뜨렸나

이처럼 20대의 태도가 변화하게 된 원인에 대해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우선 20대를 둘러싼 사회구조적 모순이 극에 달하면서 20대가 더 이상 침묵할 수 없게 됐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등록금 문제, 청년실업 등 더 이상 개인의 노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과정에서 20대가 결집하고 사회 전반의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지난 8월 반값등록금 집회에 참가한 윤혜원씨(숙명여대 통계학과·09)도 “등록금 인하 요구는 몇 년 전부터 계속 있었음에도 제대로 된 변화나 개선이 없어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 여겼지만 어느 순간 더 이상 참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현 정부의 국정운영방식에 대한 자연스러운 불만 표출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5월 여론조사 전문기관 모노리서치가 1,09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통령 국정운영 평가 설문에서 ‘잘못함’에 응답한 20대의 비율은 77.1%로 모든 세대 가운데 가장 높았으며 지난 1월 68.8%에 비해 국정 운영에 대한 불만이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청년연대 박희진 대표는 “지금의 20대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기 중등교육을 받으면서 현 정부에서보다 상대적으로 잘 이뤄진 민주적 의사소통을 당연하다고 믿어온 세대”라며 “현 정부 들어 강압적인 정책 추진으로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느낀 청년층의 반발이 20대 투표율 상승과 반값등록금 집회 등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정부가 반값등록금과 청년실업 문제 해결 등의 공약은 지키지 않으면서도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등 20대에게 민주주의가 위축됐다는 인상을 심어줬고 이에 20대의 분노가 현실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반값등록금’이라는 의제 설정은 20대의 정치참여 욕구를 분출시킨 결정적 요인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전까지 청년운동단체들이 내걸었던 청년실업, 비정규직 문제에 비해 더 생활과 밀착돼 있는 의제가 20대를 거리로 나오게 하는 기폭제가 됐다는 것이다. 참여연대 사회경제팀 이선희 간사는 “학생뿐 아니라 학부모까지 등록금 때문에 일상적으로 고통 받는 상황에서 등록금 문제는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했다”며 “2008년 시민사회가 ‘반값등록금’을 요구하기 시작하면서 한나라당도 등록금 인하 추진 의사를 밝히는 등 실현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자 학생들이 목소리를 더욱 높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 20대를 움직인 재미와 '발칙함'

20대를 둘러싼 사회적 현안과 더불어 과거보다 대중적인 공감대를 강화한 집회·시위 문화가 20대를 끌어당겼다는 견해도 나온다. 투쟁적인 구호와 딱딱한 형식으로 채워졌던 집회와 시위 공간이 20대의 감수성과 ‘재미’를 더한 공간으로 변하면서 일반 학생들의 심리적 진입장벽이 낮아졌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학생운동 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일명 ‘원자’들의 참여도 증가하고 있다. ‘9·29 전국대학생거리수업’에 참가한 이성수씨(동국대 영어영문학과·11)는 “이전에는 집회나 시위들이 격렬해서 나오길 꺼려했으나 최근에는 즐거운 분위기에서 집회가 진행되는 것 같아 부담 없이 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반값등록금 집회에 등장한 인디밴드 음악은 그날 처음 만난 학생들이 어깨동무를 한 채 춤을 추게 했고 서울대 법인설립준비위원회 해체를 요구하는 의견을 표현하기 위해 대중가요를 개사한 ‘총장실 프리덤’은 학생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
사진 제공: 본부스탁 공식 블로그, 배용준

최근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네트워크(SNS)의 확산도 20대의 정치적 욕구 분출을 끌어낸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이전의 정치적 의사표현과 홍보 방식이 제도권(투표)과 비제도권(시위)의 몇 가지로 한정돼 있었으나 SNS를 활용한 투표인증, UCC 제작 등 다양한 방법이 등장해 더 쉽게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모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하나씨(서양사학과·10)는 “관심 있는 사회 현안에 대한 정보를 빠르게 습득해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홍보하는 데 트위터를 사용하고 있다”며 “기존 언론에 드러나지 않는 정보를 얻고 오프라인상의 사회적 참여와 실천으로 연결하는 데 트위터가 효과적인 수단임을 체감했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20대의 정치참여수단으로써 SNS의 장점과 한계를 함께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장성빈씨(철학과·07)는 “SNS를 통해 어느 매체보다 정보를 빠르게 전달하고 정치적 의견을 쉽게 표출할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라면서도 “자신의 이야기에 동의하는 사람들끼리만 공론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SNS가 온전한 공론장이라고 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20대, 해답은 정치다

이처럼 20대의 정치참여 욕구가 계속 표출되고 있는 가운데 산발적이고 파편화된 현재 20대의 목소리를 결집해 제도권 정치에 대한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방안들이 논의되고 있다. 현재 주로 제도권 바깥에서 제기되는 20대의 목소리가 문제의 실질적 해결로 이어지려면 제도권 정치에 대한 20대의 영향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먼저 20대 국회의원이 배출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기성세대를 대변하는 기존 정치인들은 청년문제에 대한 관심도가 높지 않은 만큼 20대 대표를 국회로 보내 입법과정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청년정치참여연대 이관수 대표는 “현재 20대 국회의원은 부재하고 20대 구의원조차 극소수에 불과해 제도권 정치에 청년세대의 이익이 반영되기 힘든 상황”이라며 “제도권 밖의 활동들과 제도권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20대 정치인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0대 정치인 논의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김성환 활동가는 “각 정당에서 20대에게 비례대표를 주겠다고 나서고 있지만 아직은 자신들이 20대를 대변한다는 이미지를 주기 위한 광고효과로써의 성격이 강하다”고 말했다. 지난 8월 이재오 특임장관이 “20대 정치 참여를 위해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20대를 선출하자”고 제안하는 등 정치권에서도 20대 정치인 만들기에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이는 이미지 쇄신 도구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청년연합36.5 조용술 대표는 “연령과 상관 없이 청년 세대를 대변하는 인물이 정치인이 돼 청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시민사회가 전문성 있는 청년 운동 활동가를 양성해 지방의회와 국회에 진출시키면 정책 입안 과정에서 20대의 요구를 효과적으로 반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진: 남상혁 기자 as0324@snu.kr

또 내년 두 번의 선거에서 20대 문제들을 정책쟁점화하기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현재 등록금 문제는 반값등록금 운동이 계속되면서 선거 이슈로 발전했지만 아직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대학가 주거 등 20대가 직면한 다른 문제들은 개별 시민단체들의 산발적인 목소리로만 제기되고 있을 뿐이다. 이관수 대표는 “청년단체들과 시민단체 등이 정파나 이념과 관계 없이 연합해 공론을 모아 각 당의 정책위원회에 전달하는 등 집회와 시위를 넘어서는 통합된 추진력을 통해 제도정치권을 압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대의 자발적인 참여를 강조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국청년유권자연맹 김미진 정책실장은 “20대가 정당 정책과 활동에 관심을 갖고 비평함으로써 정당을 압박해야 한다”며 “자신들의 의견을 각 정당 게시판에 활발히 개진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대들의 문제제기가 연속성을 갖기 위해서는 청년운동 단체를 활성화해 20대만의 문제와 정치적 욕구를 발굴해내고 지속적인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조용술 대표는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등 20대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복잡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쉽게 모이고 쉽게 흩어지는’ 현재의 방식으로는 구체적인 문제제기와 정책 요구가 어렵다”며 “청년운동 단체가 지속적으로 청년문제를 연구하는 싱크탱크이자 청년 이익 대변 집단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청년유권자연맹 김미진 정책실장은 “20대와의 공감대 형성을 위해 SNS를 활용하면서 청년들이 매력을 느낄 수 있는 활동들을 만드는 등 20대의 창의성을 이끌어내는 방향으로 청년단체들의 역할이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대 청년들과 청년 운동가들은 가장 기본적으로 20대가 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6.2지방선거와 4.27 재보궐 선거에서 20대가 정치권의 주목을 받게 된 이유가 이들의 투표율 상승이었던 것처럼 20대 문제의 해결 시점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투표가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 정윤조씨(한양대 광고홍보학과·04)는 “우리의 요구가 20대의 투표권 행사로 정책에 반영되는 것을 본다면 더 많은 참여가 이어질 것이고 20대의 정치적 영향력도 자연스럽게 커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20대를 투표장으로 이끌 수 있는 청년 유권자 운동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는 대학생유권자연대 등 유권자 운동 단체들이 대학 내 부재자투표소 설치운동과 함께 플래시몹과 프리허그 등 대중적 공감대를 살린 유권자 운동으로 20대 투표율 상승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6.2지방선거 당시 전국대학생유권자연대 상임대표였던 손한민씨는 “20대 투표율을 확대하기 위한 법 개정 운동을 이어가면서 각계 시민단체들과 학생단체들이 함께 모여 광범위하고 대중적인 투표 운동을 벌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