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사회부 기자
답답함에 익숙해져 있었다. 등록금을 감당하지 못해 대학생들이 자살을 선택했을 때도, 꿈을 좇던 젊은 시나리오 작가가 굶어 죽었을 때도, 한 청년이 1,600도가 넘는 용광로에 빠져 죽었을 때도 같은 청춘의 죽음을 자신의 삶의 문제로 진지하게 고민하는 친구들을 주변에서 찾기란 힘들었다. 많은 친구들은 그것이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안도감, 그들처럼 ‘낙오’되지 않으려면 경쟁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불안감에 잠깐 한숨을 내쉴 뿐 이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알려고도, 목소리를 내려고도 하지 않았다. 학점 따기, 스펙 쌓기에 온 정신을 쏟다가 가끔 친구들과 수다를 떨 때 조금이라도 무거운 주제를 꺼내면 왜 갑자기 ‘그런 이야기’로 분위기를 깨냐는 눈초리에 입을 다물기 일쑤였다.

학교에서 ‘그런 이야기’를 맘껏 할 수 있는 여러 운동권 조직들이 있었지만 가끔씩 그들의 활동에 기웃거릴 뿐 그들의 일원이 되는 것은 부담으로 느껴졌다. 그들의 방식은 획일적이고 무거워보여 선뜻 함께 할 용기가 나질 않았다. 결국 내 앞에 기다리고 있는 현실에 대해 마음 놓고 말할 수 있는 곳은 보이지 않았다. 학교 안에서든 밖에서든 정치를 하는 20대는 따로 있었고 나머지 이들은 그렇게 정치와 유리된 채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기자가 취재를 통해 경험한 현장들은 조금 달랐다. 1학기 말 본부 점거 사건과 반값등록금 집회, ‘2011 청춘토크파티’ 등 최근 일련의 사건들의 공통된 분위기는 ‘즐거우면서 가볍지도 않다’는 것이다. 이들이 하려는 ‘그런 이야기’는 여전히 암울하다. 그럼에도 그들의 목소리는 계몽적이지도, 공격적이지도 않다. 꿈과 이상을 포기하라고 강요하는 우울한 현실에서 느끼는 동질감, 답답한 마음을 통쾌하게 풀어버리고 싶은 20대만의 발칙함. 이 두 가지를 통해 그들은 하나가 되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목소리를 낸다. 그렇지만 그들이 우석훈 박사의 바람대로 ‘토플책’을 버리고 ‘짱돌’을 든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일상에는 즐거운 투쟁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었다. 20대와 정치를 갈라놓았던 높은 벽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직 20대의 시도가 미미한 수준일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20대를 신문과 뉴스와 멀어지게 한 정치 알레르기가 쉽게 사라지면 오히려 더 이상할 것이다. 그렇지만 반값등록금 집회는 ‘희생’하지 않아도 우리의 목소리가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이제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도 조금씩 이런 신나는 경험을 해보는 건 어떨까? 우리를 위해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정당과 정치인을 투표로 가차 없이 심판해보자. 일상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할 표현의 자유를 아낌 없이 행사하자. 거리에 나가 목소리 내길 두려워 말고 마음에 드는 청년운동이나 학생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어려워 말자. 더 이상 정치를 정치인들과 일부 운동가들의 전유물로 두지 말고 우리의 즐거운 일상으로 만들어 보자. 그 목소리가 무겁기만 할 필요는 없다. 우리의 멋진 꿈을 가로막는 ‘그들’을 속 시원하게 비웃어주자. ‘그들’은 우리가 하나가 되고 불안에 떨지 않을 때 두려워한다. 20대 모두가 즐겁고 유쾌하게 ‘그들’과 맞서는 날이 오길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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