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전기공학부 행사인 ‘전기공학부 하나되는나들이’(전공하나)의 레크리에이션 도중 진행자가 행사에 참여한 모든 여학생들을 무대로 불러 춤을 추게 한 일이 벌어졌다.

사건이 공론화되자 비판이 쏟아졌다. 무대에 오르고 싶어하지 않았던 여학생들마저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무대로 올라가야 했던 것은 개인의 의지가 고려되지 않은 강요였기에 부당한 일이다. 하지만 “여학생이 기생이냐”는 학생들의 분노는 단순히 강요받았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문제는 무대로 올라갔을 때 여학생들이 무엇으로 비춰졌느냐하는 점이다.

그런데 이러한 성적 대상화가 항상 ‘남성이 다수인 공간’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여러 과에서는 과 행사 때 남학생을 여장시키는 것이 관습처럼 이어지고 있다. 왜 남장한 여자는 무대에서 보이지 않는가? 그것은 여성의 경우와 다르게 남성이라는 정체성은 희화화의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누군가 희화화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온전히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사회에서 여성은 보통 ‘남성의 눈에 비친 여성’으로 인정돼 여성성이 희화화되거나 여성이 분위기 띄우는 존재로 전락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더 가혹하게 다이어트나 외모 가꾸기를 강요받기도 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어떤 ‘개인’ 여성이나 ‘개인’ 남성 사이의 일이 아니기에 개인만을 비판할 수 는 없다. 여성성에 대한 희화화나 성폭력은 개인의 탓으로 환원되지 않는 구조적인 문제다. 그렇기에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됐던 고대 의대 성폭력 사건과 현대차 여성노동자의 성폭력 사건은 우리 캠퍼스에서 벌어졌던 일과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향후 여성이 성적 위험에 노출되거나 다시 전공하나 사건과 같은 일을 겪지 않기 위해서는 공동체 내부에서 여성이 집단적인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페미니즘은 흔히 오해되는 바와 같이 여성의 권익만을 위하는 사상이 아니라 지금껏 주체로 인정받지 못했던 여성이 주체로 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따라서 여성이 ‘공동체의 분위기’란 이름으로 성적 대상화돼 억압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페미니즘은 아직 유효하다. 혹여 스스로 목소리를 내어 자신이 속한 작은 공동체를 바꿔보고자 하는 학내 구성원이 있다면 페미니즘을 만나고 또 페미니즘 운동을 벌여가는 사람들을 만나 같은 고민을 함께 나눠보길 바란다.

김세영
화학생물공학부·09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