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과 박사과정
1999년 4월이었다. 지하철 노동자들은 파업을 선언한 후 공권력을 피해 서울대로 집결했다. 학교는 원천봉쇄됐고, 학생들은 정문 앞에 내려서 경찰에게 학생증을 보여줘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정문인 ‘샤’문 아래에는 경찰의 침탈에 대비해 학생 사수대가 거대한 바리케이트를 쌓았다. 그 바리케이트를 사이에 둔 며칠의 대치. 글로 쓰니 표현은 좀 험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 대치의 시간은 서울대를 거대한 광장으로 만들었다. 학벌사회에서 서울대라는 절대 권력을 상징하는 ‘샤’ 문이 연대와 저항의 열기 한 가운데에 놓였고, 아크로에서 뛰어온 학생들이 그 앞에서 노동자의 파업할 권리를 목 놓아 외쳤다. 누군가 나에게 왜 ‘운동권’이 됐냐고 물어보면 그때의 경험이 빠지지 않는다.

그 기억이 다시 떠올랐던 것은 얼마 전 법대 학부생 오준규씨가 법인화 반대를 외치며 ‘샤’문에 올랐을 때였다. 트위터를 통해 소식을 듣고 학교에 갔을 때, 내가 마주한 것은 정문 아래 깔린 노란색 에어백과 ‘샤’문 위에 법인화를 반대한다는 작은 플래카드, 그리고 벙거지 모자를 눌러쓴 그였다. 당당했지만 외로워보였다. ‘샤’의 거대함이, 그 권력의 무게가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적지 않은 학생들의 응원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팔짱낀 형사들의 무전기 소리와 조금 돌아서 가야했던 학생들이 내뱉는 투덜거림이 더 크게 들렸다. 사방이 뚫린 곳에서 50시간을 버텼던 그는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지난주 동맹휴업 때, 완전하게 회복되지 않은 다리를 우산대에 의지하며 아크로의 연단에 섰다. 그가 선 아크로 역시 외롭게 느껴졌다. 외롭다는 것은 기울어져있다는 신호다.

서울대가 가진 권력의 상징이 ‘샤’문이었다면, 다른 한편에는 그 수직의 권력과 끝임 없이 긴장했던 수평의 아크로가 있었다. 정문이 외부를 향해 그 거대함을 뽐내왔다면, 아크로는 구성원들 간의 갈등과 토론을 담아냈으며, 그 힘으로 서울대라는 권력의 탈주를 조금이나마 막아왔다. 도서관과 학생회관, 대학본부 사이에 존재하는 아크로의 위치는 그러한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도서관 공부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아크로에서는 집회를 자제하겠다”라는 것이 총학생회 선거 공약으로 등장했고, 많은 이들의 호응을 받았다. 학교 당국은 구성원들의 참여와 발언권을 형식적 수준 이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아크로가 작아질수록 ‘샤’문은 커져갔다. 그렇게 추는 기울어져갔고, 대학의 운명이 걸린 법안이 ‘직권상정’이란 이름으로 날치기 통과가 됐어도 책임 있는 이 그 누구 하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물론 지난 5월의 비상학생총회, 6월의 본부점거농성을 말하며 아크로는 여전히 움직이고 있으며, 부족하지만 그 힘이 ‘샤’문의 폭주를 조금이나마 막아내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동의한다. 발랄함이 넘쳤던 점거농성과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본부스탁”의 모습은 분명 새로운 움직임의 시작이었다. 그렇다고 총장님의 모호한 담화문과 함께 다시금 척척 진행돼가는 법인화와 그것을 반대하기 위해 홀로 정문에 올라간 오준규가 보여주는 아크로의 왜소함이 변하지 않는다. 균형이 무너진 자리를 차지할 것은 ‘세계 대학 순위’와 같은 목표들일 것이다. 그러나 그 목표는 누구의 목표인가? 광장이 사라진 대학은 괴물이 될 수밖에 없다. 이미 얼마쯤 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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