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정지현-빗나간 자리(Away From Here)

질문 하나, 네트를 넘어온 탁구공을 굳이 받아치지 않아도 된다면 탁구는 탁구인걸까. 질문 둘, 아나운서와 기자의 긴박한 보도가 그저 한데 엉켜 알아들을 수 없는 소음으로 느껴진다면 그 보도는 보도인 것일까. 오는 15일(토)까지 종로구 창성동 소재 ‘사루비아 다방’에서 열리는 정지현 작가의 전시 「빗나간 자리」는 이 질문들에 대한 거대한 답이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전시 공간 전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한 설치 미술을 보여준다.



한 쪽 벽면에 드문드문 구멍이 뚫린 어두침침한 전시실에는 탁구공으로 반쯤 채워진 쇼핑카트 한 대만이 우두커니 놓여있다. 전시실을 감돈 을씨년스러운 정적은 카트 손잡이에 달린 버튼을 누르는 순간 깨진다. 버튼을 누르는 순간 한데 엉켜 나오는 아나운서와 기자의 목소리는 신경을 돋운다. 또 카트에서는 탁구공이 무작위로 튀어나온다. 목적 없이 아무 곳에나 부딪힌 탁구공은 힘없이 굴러 떨어져 바닥을 어지럽힌다. ‘핑’하면 ‘퐁’하는 게 탁구의 매력이지만 전시실 속 탁구공은 대답 없는 공허한 메아리만 반복할 뿐이다. 뉴스 속 아나운서와 기자의 목소리 역시 마찬가지다. 수많은 정보를 발 빠르게 쏟아내지만 대중에게 제대로 수용되지 못한 기자의 정보는 소음으로 들릴 뿐이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상호작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아프게 꼬집는다.

좁은 전시실에서 탁구공의 공허한 움직임을 바라보고 있자면 문득 운 좋게 드문드문 벽에 뚫린 구멍에 들어간 탁구공들은 어디로 갔을지 궁금해진다. 발길을 조금만 벽면 뒤로 옮겨보면 그 궁금증은 금새 해결된다. 나무판자와 각목을 덧대 만들어진 벽면 뒤 공간은 흡사 피난민 수용소 같다. 고장난 기타, 부러진 시계추, 타버린 냄비에서 목이 잘린 금속여인상까지. 벽면 뒤엔 소통의 끈을 놓쳐 버려진 온갖 잡동사니들이 가득하다. 낯선 곳에 어색하게 박혀있을 것만 같은 물건들이지만 관객들은 이내 이 물건들만의 질서를 발견한다. 타버린 냄비 안에 담긴 물잔이 아래위로 오르내리는 동작에 맞춰 아득히 기타 소리가 들려온다. 이렇게 원래 있어야 했던 공간에서 빗나간 물건들은 이곳에서 그들만의 새로운 상호작용을 만들어간다. 이렇듯 작가는 전시실의 앞부분에서 상호작용이 이뤄지지 않는 사회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했다면 뒤에선 상호작용에 비껴 선 이들에 대한 연민과 새로운 상호작용에 대한 그 나름의 희망을 전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시구는 이미 널리 회자돼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하지만 우리 현실 속에선 상호작용이 그리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 듯하다. 소통의 부재를 은유적으로 비판한 정지현 작가는 버려진 물건들의 질서를 묘사한 설치작품으로 새로운 소통의 가능성 역시 제시한다. 이미 비껴서버린 소통에 대한 대안이 어쩌면 작가의 말처럼 어딘가 빗나간 자리에 있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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