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와 제5차 희망버스 행사가 지난 8일(토)부터 이틀간 맞물린 일정으로 개최됐다. 행사 전까지 영화제와 행사 일정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부산시가 지난달 19일 대변인 명의의 긴급 성명서를 통해 “국제적 망신과 손실이 우려된다”며 희망버스를 저지한 데 반해 지난 4일 영화인 1,543명은 세종문화회관 앞에 모여 부산국제영화제와 희망버스가 함께 열리는 것에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김진숙씨를 보며 이 세상을 외면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 사람이 보이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던 영화인의 초심을 마주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들이 말한 영화인의 초심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간의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중 사람, 특히 사회적 약자와 첨예한 대립을 낳은 사회 이슈를 살았던 사람들을 비춘 작품들을 소개한다.

노동자들을 좇는 시선

대만 다큐멘터리 「돈과 사랑」(제16회)은 대만에서 일하는 외국인 여성 노동자들의 10년을 담았다. 가족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고국을 떠나온 작품 속 여성 노동자들은 호스피스에서 환자들을 돌본다. 병원 측과 약속한 3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꼬박 일을 해 번 돈을 갖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면 이미 가족 사이는 서먹해진 후다. 돈이 떨어져 또다시 돈을 벌기 위해 가족을 떠날 수밖에 없는 그들의 뒷모습은 ‘돈이 없으면 사랑도 없다’는 자조적인 노래와 함께 더욱 초라해 보인다. 작품은 이렇게 호스피스에서 노인을 돌보며 일하는 외국 여성 노동자들의 모습을 찬찬히 따라가며 그들이 이런 일을 외국까지 와서 할 수밖에 없는 요인들을 전한다.



다큐멘터리 「꿈의 공장」(제15회)은 국내 기타제작회사인 콜트·콜텍의 부당 해고에 반발해 2007년부터 시작된 복직 투쟁 과정을 담았다. 기타를 만드는 이 영화 속 노동자들은 누군가에겐 기타 하나를 들고 꿈과 자유를 찾아 떠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겠지만 정작 그들은 해고로 인해 꿈이 산산조각난다. 노동자들은 여러 뮤지션들과 연대해 기타를 치면서 잃어버린 꿈과 희망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펼친다. 영화가 계속 뒤좇는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국내외 투쟁 현장은 관객에게 음악과 희망에 대한 고민을 던진다.

가난의 상처를 보듬다

아르헨티나 영화 「야타스토」(제16회)는 도시 외곽에서 상자, 폐병, 고철 등을 수집해 팔면서 근근이 삶을 이어가는 3명의 10대 소년에 대한 이야기다. 친구인 동시에 생계 동업자인 세 소년에게 마차와 말은 중요한 생계 수단이다. 영화는 마차의 움직임을 부단히 좇으며 세 소년의 고단한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감독이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경계선상에서 이들의 나날을 표현하는 만큼 어린 소년들의 가난 속에서 겪는 아픔이 더욱 가슴 깊이 와 닿는다.

필리핀 영화 「이스다-물고기이야기」(제16회)는 환상적인 요소를 작품에 끌어들여 주인공들이 현실에서 겪는 가난의 고통을 극대화한다. 쓰레기 처리장이 있는 빈민촌으로 이사를 온 한 중년 부부는 수입이 끊기자 쓰레기 산에 가서 쓰레기를 줍기 시작한다. 그 때 성 뻬레그리노 상을 줍게 된 부인은 갑작스레 임신을 하게 되고 그 결과 물고기를 출산한다. 하지만 부부는 이를 신의 뜻으로 받아들이며 그곳에서 정성껏 물고기를 자식처럼 기른다. 이처럼 기묘한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영화는 쓰레기 산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빈민의 삶을 조명하는 끈을 놓지 않으며 우화적인 형식으로 작품을 전개한다.

사회 이슈에 발맞추다

해군 기지 건설을 둘러싸고 여전히 마찰이 끊이지 않는 강정마을의 이야기도 있다. 다큐멘터리 「잼 다큐 강정」(제16회) 제작에 참여한 8명의 감독은 초반부에는 강정마을 강아지의 사연이나 인디밴드 이야기를 곁들여 가며 경쾌하고 가볍게 현실을 훑어낸다. 작품은 중반에 다다를수록 오늘의 제주와 과거의 4·3사건을 교차시키고 한미군사동맹음모론을 장난스럽게 제기하며 현실을 비트는 과감함을 보인다. 어떤 감독은 오랜 시간 마을을 지켜온 할아버지와의 깊은 만남을 영상에 담고 다른 감독은 치열했던 투쟁 현장의 한 순간을 포착하기도 하는 등 감독들은 주민들의 일상 혹은 격한 대립이 벌어지는 시위 상황을 오가면서 강정마을에서 보낸 100일간의 모습을 관객에게 전한다.

2006년에는 평택 미군기지 확장을 둘러싸고 당시 의견 충돌을 벌인 대추리 마을 사건에 대한 다큐멘터리 「대추리 전쟁」(제11회)을 상영하기도 했다. 카메라는 대추리의 평화로운 사계절을 비추며 주민들에게 대추리가 얼마나 소중한 공간인지 관객에게 보여준다. 한편 국가와 대추리 주민이 평택에서 물리적으로 팽팽히 대치하는 현장도 그대로 전달하며 위선적이고 폭력적인 국가의 모습을 짚어내기도 한다. 음악, 내레이션 등을 거의 쓰지 않고 절제된 시선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은 대추리 주민과 국가간 대립을 더 사실적이고 극명하게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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