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동향] CERN(유럽입자물리연구소) 중성미자 실험

우리 인간의 운명은 얼마나 기구한가!
인간은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또한 무엇을 알고 있지 못한지도 모른 채로 모종의 목표를 향해 달리고 또 달린다. 그렇게 잠시 동안의 짧은 여정을 이곳 세상에 머물다 가는 것이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충격과 흥분에 휩싸인 세계

인간이 또 착각을 한 것일까. 스위스 제네바의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산하 연구팀 OPERA(Oscillation Project with the Emulsion tRacking Apparatus)는 CERN이 보유한 중성미자 빔(CNGS)을 이용해 중성미자 진동(Neutrino Oscillation)을 연구해 왔다. 이들은 CERN에서 중성미자를 쏴 730km 떨어진 이탈리아 그랑사소 연구소의 OPERA 중성미자 검출기에서 그 속도를 측정하는 실험을 3년간 진행했다(그림 1). 지난달 22일(현지시각) OPERA 팀은 중성미자의 속도가 빛보다 60.7나노초, 약 0.00000006초 빠르다는 충격적인 실험결과를 얻었다고 발표하기에 이른다.

실험에 참여했던 수석연구원 안토니오 에레디타토(Antonio Ereditato)도 ‘미쳤다’고 밝힐 정도로(“We want to be helped by the community in understanding our crazy result - because it is crazy”) 이번 실험결과는 전세계를 당혹감과 흥분의 도가니에 빠지게 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빛보다 빠른 입자가 발견됐으니 시간 여행이 가능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기대에 부풀기도 했다.

이번 OPERA 팀의 실험결과가 충격적이라고 여겨지는 이유는 기존 실험들보다 상대적으로 오차 범위가 적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사실 OPERA 팀과 유사한 실험을 시행하는 미국 페르미(Fermi) 연구소의 MINOS 실험(2007)에서도 중성미자가 빛보다 빠르게 측정된 사례가 있었다. 하지만 오차 범위가 커서 측정 결과의 신뢰도가 낮다는 판단 하에 기각됐다. 반면 OPERA 실험은 500개미만의 중성미자로 실험을 진행했던 MINOS 실험보다 훨씬 많은 1만 6천개의 중성미자를 GPS와 세슘 원자시계를 사용해 정밀하게 검출했다.(시간오차: 10나노초 미만, 거리오차: 20cm) OPERA 실험에 참가했던 윤천실 교수(경상대 물리학과)는 “기존의 실험들보다 발전된 측정방법과 CERN이 보유한 특수한 중성미자 빔 기술 덕분에 측정결과가 더 정밀하다”며 “3년간 확인 작업을 거쳤다”고 덧붙였다. 


너무 성급한 결론

그럼에도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실험 결과에 대해 회의적이거나 신중하게 대처하고 있는 상황이다. OPERA 연구팀 역시 지난달 23일에 세미나를 열어 “결과에 대한 어떠한 이론적, 현상적 해석을 가하지 않겠다(We do not attempt any theoretical or phenomenological interpretation of the results)”고 밝혔으며 ‘Arxiv.org’에 모든 실험 자료를 포함한 논문을 공개해 다른 과학자들의 검증을 요청했다.

이수종 교수(물리학과)는 “호들갑 떨 일이 아니다. 이번 실험결과는 기존에 검증된 이론들과 여러 면에서 모순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실험 결과가 발표되자 상당수의 사람들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냐는 예측을 내놓았다. 왜냐하면 특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극미하지만 질량이 있음이 이미 입증된 중성미자는 결코 광속에 다다를 수 없기 때문이다. 

진공상태에 정지해 있는 물체에 에너지 E를 가한다고 하자. 똑같은 에너지 E를 계속 가한다고 하더라도 가속량은 점차 줄어들고 결코 광속 자체에는 도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질량-에너지 등가법칙(E=mc2, 즉 에너지는 질량으로 변할 수 있고, 질량은 에너지로 변할 수 있다)에 의해 에너지는 가속에 사용되지 않고 물체의 질량을 커지게 하기 때문이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따르면 에너지는 사라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질량의 형태로 저장된다.) 결국 광속에 가까워질수록 물체에 가해진 에너지는 속도로 전환되는 것이 아니라 질량으로 전환돼 질량이 무한대로 커져 질량이 ‘0’인 빛보다 느리게 된다. 따라서 이번 실험이 특수 상대성이론을 붕괴시키는 게 아니냐고 회자되는 이유는 빛보다 느릴 수밖에 없는 중성미자가 더 빠르게 측정됐기 때문이다.

오류를 지적해줄 여러 요인들

하지만 특수 상대성이론이 붕괴됐는지의 여부를 따지기 전에 상대성이론이 아닌 입자물리학의 다른 이론들과 실험들을 따져봤을 때, 이번 실험결과가 잘못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대부분 물리학자들의 입장이다. 실제로 지난주 고에너지 물리학 권위자인 코헨(Andrew Cohen)과 노벨상 수상자 글라쇼(Sheldon Glashow)는 OPERA 팀의 실험결과가 모순적임을 명료화해 논문으로 발표했다. 이들에 따르면 만약 OPERA 실험의 결과대로 진공에서 중성미자가 빛보다 빠르다면, CERN과 그랑사소 연구소 사이의 거리인 730km를 가는 동안 중성미자는 상당량의 에너지를 손실해 OPERA 실험결과와는 다른 에너지 분포도를 보여야 했다. 하지만 실험결과는 다르게 나왔다.

입자물리학에서는 입자를 검출하는 데 체렌코프 복사(Cherenkov Radiation)라는 중요한 현상을 이용한다. 진공에서 빛의 속도는 특수 상대성 이론에 따라 반드시 초속 약 30만km로 일정하지만 물과 같은 매질에 들어가면 굴절이 돼 속도가 느려진다. 그래서 전하를 띤 입자도 매질 속에서는 빛보다 빨라질 수 있다. 이때 전기장과 자기장이 항상 전하를 띤 입자 주변을 둘러싸고 있어야 한다. 만약 입자가 빛보다 빨라지면 전기장과 자기장은 입자를 따라 갈 수 없다. 할 수 없이 입자는 스스로의 에너지로 복사(radiation)해서 전기장과 자기장을 만들어내야 하며 이렇게 생성된 전자기장, 즉 빛은 밖으로 방출된다.

충분히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중성미자도 마찬가지 현상이 일어난다. 중성미자는 중성이라 전하를 띠고 있지 않다고 여길 수 있지만 실제로 중성미자는 양자효과에 의해 아주 작은 자석과 같은 역할을 한다. 따라서 중성미자도 희미하게 체렌코프 복사 형태의 복사효과를 만들어 낸다. 문제는 이 방출과정에서 중성미자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많은 에너지를 잃게 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CERN의 중성미자 빔에서 나온 중성미자가 OPERA 실험결과처럼 빛보다 약 10만분의 1 정도 빠르게 움직인다면 진공 속에서도 복사효과를 일으키게 된다. 이 효과가 한번 일어날 때마다 중성미자는 에너지의 3/4을 잃어버린다. 그러므로 OPERA 실험대로 중성미자가 730km를 진공에서 빛보다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면 발표된 실험결과보다 훨씬 더 많은 중성미자들이 작은 에너지 분포도 쪽에 몰려있도록 검출됐어야 한다. 그런데 OPERA 실험의 중성미자들은 높은 에너지 분포도 쪽에서 검출됐다(그림 2).

이수종 교수(물리학과)는 “이미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체렌코프 복사로 이번 실험의 오류를 설명해왔다”며 시간여행, 상대성이론 붕괴 등의 성급한 이야기들을 비판했다. 김형도 교수(물리학과) 역시 “체렌코프 복사 효과는 검증된 사실이며 사실 코헨과 글라쇼의 논문으로 분위기가 잠잠해지는 양상”이라며 “물론 아직 OPERA 실험의 측정 과정에서 어떤 부분이 잘못됐는지 말하기는 이르다”고 덧붙였다.

뿐만 아니라 OPERA 실험은 여러 다른 실험들과도 대치되는 결과를 보여 과학자들의 의심을 더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1987년, 지구로부터 16만여 광년 떨어진 곳에서 있었던 초신성 SN1987a 폭발로부터 출발한 중성미자를 검출했다. 검출결과 중성미자는 빛보다 3시간 일찍 도착했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이 결과는 중성미자가 빛보다 빠르다는 것이 아니라 먼저 중성미자가 방출되고 나서 내부 폭발로 인해 생긴 강한 빛이 나중에 발생했다는 것을 뜻한다. 김형도 교수는 “하지만 만약 OPERA 팀의 결과대로 중성미자가 빛보다 10만분의 1만큼 빠르다면, 10만광년 이상 떨어진 초신성으로부터 오는 중성미자는 1년 일찍 지구에 도착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더불어 1996년에 이뤄진 슈퍼 카미오칸 데(Super Kamiokande) 실험에서 사용된 중성미자들은 OPERA 실험에서 사용된 것보다 100배에서 1000배 높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음에도 검출됐을 때 대부분 에너지를 잃지 않았다. 즉 체렌코프 복사 효과를 겪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직 빛보다 빨리 움직일 경우에만 이 효과가 나타난다는 점을 상기하면 중성미자가 빛보다 빨리 움직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다시 확인해 보자

이미 페르미 연구소의 MINOS 팀은 재측정에 들어갔으며 OPERA 팀 역시 기술적으로 업그레이드된 방법으로 실험 재개를 준비중이다. 윤천실 교수는 “OPERA 팀의 입장은 최대한 데이터를 정확하게 제시하는 것뿐”이라며 “아마 6개월에서 1년 내에 결과가 나올 것이고 그때에서야 이번 실험결과에 대한 최종적인 해석이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김수봉 교수(물리학과)는 “과학에서의 실험은 동일한 조건 하에서 이뤄진 다른 실험들을 통해서 검증되고 반복돼야만 정확한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여진다”며 “그런 점에서 OPERA 연구팀의 논문 공개와 앞으로 이뤄질 검증 절차는 과학적이기 위한 필수적 과정”이라고 말했다.

수백년간 성역을 지켜오던 뉴턴 역학을 침범한 이후 지난 106년간 세계를 더 잘 볼 수 있게 해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또 다른 성역을 만들어 내기보단 양자이론 등과 함께 꾸준한 실험과 검증으로 ‘과학적임’을 몸소 실천하는 과학자들이 있는 한 쉽게 ‘착각’이 일어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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