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회] 마음에 대한 철학적 성찰-유교편(철학사상연구소)

지난 12일(수) 인문대 교수 회의실(7동 304호)에서 “마음에 대한 철학적 성찰” 강연회가 열렸다. 이번 강연회에서는 손영식 교수(울산대 철학과·오른쪽)와 김수중 교수(경희대 철학과·왼쪽)가 각각 ‘성리학의 마음 이론-장재 정호 정이 주희’와 ‘왕양명과 주체성의 철학’을 주제로 강연했다.

분열을 거듭했던 한-당 시대를 지나 송-청 시대에 들어서며 통일과 중앙 집권을 완수하는 과정에서 중국에서는 무력이 아닌 말과 논리로 국가를 건설하는 지식인 계층이 요구됐다. 이 중 합리적인 국가 건설을 위해서는 관리들을 인격자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한 학파가 성리학으로 발전했다.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손영식 교수는 인(仁)과 예(禮)를 강조하는 유학에서 비롯한 성리학은 근본적으로 마음을 도덕 행위의 기준으로 인식했다고 발표했다.

성리학의 기본 골격인 이와 기의 이분법 체계를 가장 먼저 제시한 이는 정이였다. 정이는 자연 세계를 구성하는 것이 “기(氣)”라고 주장하며 물질적으로 마음 이론을 확립했던 장재와 ‘도덕률’의 근원이 마음속에 있다는 정호의 사유를 모두 받아들인다. 정이는 인간의 육체와 육체에서 비롯한 감정 욕망을 뜻하기도 하는 장재의 기 세계관을 인정하면서도 만물의 생동 이치와 도덕(理)이 마음에 깃들어 있다는 정호의 형이상학적 도덕 이론을 포괄했다. 이를 설명하는 개념으로 정이가 제시한 것은 ‘이발(已發;이미 드러남)’과 ‘미발(未發;드러나지 않음)’이다. 이발은 감정 욕망으로 가득 찬 상태를, 미발은 감정 욕망(氣) 없이 텅 비어 있는 상태를 이른다. 정이는 마음에 이발과 미발이라는 일견 모순적인 두 성질이 모두 갖춰져 있다며 마­음은 본래 감정 욕망으로 가득 차 있는 의식의 흐름이면서도 텅 비어 있는 미발의 성질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주희는 정이의 이론에서 더 나아가 감정 욕망으로 가득 찬 상태인 이발에 개별성을, 마음에 전제된 미발의 본성에 보편성을 부여한다. 이러한 마음의 이론은 구슬의 무늬와 결에 비유할 수 있다. 감정 욕망으로 가득한 의식의 흐름인 이발이 구슬의 표면에 새겨진 ‘무늬’라면 감정 욕망이 제거된 미발의 본성인 리(理)는 무늬를 배열하는 일정한 ‘결’에 해당된다. 주희는 결에 해당하는 리를 따르는 것이 보편적 도덕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간이 미발의 본성을 지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주희에게 미발의 마음은 ‘현재의 나’에서만 찾을 수 있다. 마음은 지각을 통해 항상 감정 욕망으로 가득 차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에서 감정 욕망이 완전히 비워지는 순간은 마음이 외부대상을 지각하는 찰나인 ‘현재’뿐이다. 그러나 현재는 점과 같이 순간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현재의 나’에만 존재할 수 있는 미발의 마음에서 본성을 지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각이 시공간에 종속된 반면 본성은 이를 초월하기 때문이다. 손 교수는 “현재의 자신이 본성을 지각했다고 생각할 때 그 ‘본성’은 엄밀히 말해서 진정한 본성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즉 본성 지각과 동시에 그 ‘본성’은 과거의 자신에 대한 지각 작용으로 환원돼 버린다는 것이다.

이에 주희는 지각과 함께 끊임없이 드나드는 미발의 마음을 직접 확인할 수는 없더라도 함양할 수는 있다고 주장한다. 감정 욕망으로 가득한 마음을 갖고서라도 항상 진실한 자세로 자신을 기만하지 않고 ‘마음을 다해서 생각(盡心)’하는 과정을 통해 ‘본성을 키울 수 있다(存心養性)’는 것이다. 이는 끊임없이 자신의 불완전함을 반성하고 경건하게 사는 것을 습관으로 삼아 본성이 현실 속에서도 저절로 발현되기를 꾀하는 것이다.

이처럼 성리학이 마음을 이발과 미발이라는 이분법으로 설명하고 미발의 본성에 내재된 보편성에 따라 도덕 실천이 이뤄진다(性卽理)고 본 반면 양명학은 마음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것을 지양하고 인간 행동의 도덕 법칙은 ‘마음의 이끌림’에서 비롯한다고 봤다(心卽理).

김수중 교수는 “양명학에서 강조하는 것은 개별적인 인간의 주체성”이라고 언급했다. 보편적 인간성을 찾으려는 노력 없이도 주관적인 마음의 이끌림을 따라 도덕을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양명은 개별적인 인간의 마음이야말로 본질에 앞선다고 주장한다. 김수중 교수는 ‘주체가 본질에 앞선다’는 양명학의 성격을 데카르트의 코기토(Cogito)에 비유했다. 김 교수는 “양명학도 ‘생각하는 주체’로서의 마음을 중시함으로써 의심할 수 없는 최소한의 공리가 ‘생각하는 나’라고 주장했던 데카르트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즉 양명학도 데카르트 철학처럼 세계는 내 마음, 혹은 주체와 관련해서만 의미를 가지며(心卽理) 마찬가지로 만물의 존재도 주체의 인식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었다.
양명학은 모든 지식이나 진리도 나의 삶에서 실천될 때 비로소 완전해진다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실천적 윤리관을 견지하고 있었다. 즉 도덕규범에 대한 앎은 이를 실천하려는 마음의 이끌림에서 비롯하며 행함을 통해 완성된다. 김 교수에 따르면 양명학의 지행(知行)은 수영하는 법을 배우는 것과 유사하다. 가령 물에 직접 들어가지 않고는 수영하는 법을 숙지할 수 없듯 지식은 이를 실천하는 ‘행’이 갖춰질 때 의미를 갖게 된다. 양명학에서 인격 수양은 인간의 마음에 내재된 양지(良知)라는 직관적 도덕감을 최대한 ‘발현’시키는 것에 중점을 뒀다. 양명이 강조했던 것은 수시수처로 마음이 이끄는 바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는 비록 완전하지 않더라도 아는 바를 적극적인 행동으로 실천하라는 것이다.

명(明)대 등장한 양명학은 실천 윤리학이라는 유가 철학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서민의 성장이 두드려졌던 당대의 요구를 잘 반영했다. 당시 관학(官學)이었던 성리학의 엄숙주의와 지식인들의 공리공담을 비판했던 양명학은 주체 존중의 철학으로 중국에서 큰 반향을 이끌었다.

강연에 참석했던 윤선구 교수(기초교육원 전임대우)는 “전공하고 있는 서양근대철학과 주체성의 철학으로서의 양명학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 흥미로운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다음 ‘마음에 대한 철학적 성찰’ ­강연회는 이황과 이이의 마음 이론을 주제로 다음달 9일 인문대 신양학술정보관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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