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 나영인 기자
  • 승인 2011.10.15 21: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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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온 책]『많아지면 달라진다』

클레이 셔키 지음ㅣ이충호 옮김ㅣ갤리온ㅣ312쪽ㅣ1만5천원
고대 그리스어 중에 ‘남는 시간(free time)’을 뜻하는 ‘스콜레(skholē)’라는 단어가 있다. 이 단어를 단순히 놀고 즐기는 여가 시간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인간의 기본적인 필요와 욕구에 구속된 활동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하는 이 단어는 먹고사는 일에서 벗어나 자율적이고 참된 인간적 삶을 추구하던 아테네 시민들의 활동조건이었다. ‘스콜레’를 갖지 못한 인간의 삶은 ‘노예의 삶’이었다. (참고로 ‘skholē’는 ‘school’과 ‘leisure’의 어원이다.)

오늘날을 돌아보자. GDP, 교육 수준, 수명이 증가하면서 생긴 막대한 양의 여가 시간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 분명 먹고사는 일로부터는 어느 정도 벗어났다. 그렇다고 그 많은 시간들이 고스란히 ‘스콜레’가 됐을까.

스티브 잡스, 마이클 주커버그 등과 함께 IT분야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인물로 꼽히는 클레이 셔키의 저작 『많아지면 달라진다(Cognitive Surplus)』는 ‘1조 시간’을 가진 새로운 대중의 탄생에 주목한다. 2007년 케냐에서는 대통령 부정 선거를 둘러싸고 인종 간 폭력이 일어났다. 케냐 정부는 주류 언론 매체에 폭력 사태를 보도하지 못하게 했지만 블로거들은 직접 목격한 폭력 사태에 대한 이야기를 이메일로 보내거나 블로그에 포스팅했다. 이러한 방법은 시민들의 보고를 웹에서 취합하고 지도에 자동으로 표시하는 ‘우샤히디’(스와힐리어로 ‘목격’) 서비스로 발전한다. 우샤히디 웹사이트는 아이티 대지진의 피해상황 파악에도 사용돼 큰 관심을 끌었다. 우샤히디는 블로거들의 여가시간과 디지털 미디어 기술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우샤히디뿐만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여가시간을 쌍방향 미디어 도구와 결합해 커다란 공동 프로젝트에 투여하는 현상은 이미 여러 군데서 진행 중이다.

원제에서 드러나듯 저자는 늘어난 여가시간과 미디어의 변화가 낳은 새로운 잠재력을 ‘인지 잉여’라고 설명한다. 인지 잉여란 전 세계 시민들이 자신의 여가 시간을 사람들과 함께 모아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나타난 새로운 사회적 자원을 의미한다. 지난 50년간 사람들의 여가 활동을 지배했던 텔레비전 시청은 사람들을 침묵하는 소비자로 만들 뿐이었다. 이제는 인지 잉여가 창조, 공유, 그리고 참여를 통한 새로운 가치 창출에 이용되고 있다.

나아가 저자는 새로운 대중들의 공유 활동이 사회 자체를 바람직하게 변화시키고, 집단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의 삶까지 개선할 수 있다는 낙관적 전망을 펼친다. 하지만 이 전망은 근거가 빈약해 보인다. 저자의 주된 설명은 아마추어들의 활동이 ‘왜’ 일어나는지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돈과 같은 외적 동기에 의해 움직이는 미디어 전문가들과 달리 아마추어들은 일 자체가 좋아서,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어서 돈도 안 되는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위키피디아 같은 소셜 네트워크 활동에 인지 잉여를 투자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연결 속에서 만족감을 얻는 개인적 욕구들이 ‘어떻게’ 사회적 참여가 되고 더 나은 인간적 삶을 건설하는 계기가 되는 것일까.

만약 아마추어들의 활동이 개인적 만족감을 충족시키는 데 머무른다면 소셜 미디어는 통제 되지 않는 ‘저속한 욕구들’의 집합체에 불과할 것이다. 위키피디아만 해도 자신이 싫어하는 견해는 일부러 바꾸거나 경제적 가치를 노리고 거짓된 내용을 추가하는 일들이 왕왕 발생한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선하다”고 생각했던 이베이 설립자 오미디아르는 출범하고 몇 주일이 지나기도 전에 사기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20억명의 아마추어들이 서로 연결돼 있는 ‘방향감각 상실의 미디어 시대’에 우리의 광범위한 참여와 대화의 가능성을 극한까지 밀어보자는 저자의 결론은 지나치게 순진해 보인다.

많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IT 신기술에 대한 낙관적 전망은 이미 너무 많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보의 자율적 관리와, 개인적 가치를 넘어서는 ‘참된’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한 깊이 있는 성찰이다. 그것이 이뤄질 때, 우리의 인지 잉여가 정말 ‘스콜레’가 될지 아니면 ‘잉여’가 될지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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