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마당패 탈 제40회 정기공연 「문짝뎐」

막이 오르기 전부터 극은 이미 시작돼있다. 객석에 앉으려면 관객은 우선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야 할 정도로 낮고 좁은 문을 지나야한다. 그렇게 들어선 공연장의 분위기는 다소 침체돼 있다. 무대 한 켠에선 악사들이 사물놀이 악기를 두드리고 배우들은 무대 중앙에 덩그러니 놓인 사다리를 에워싸고 ‘문/문/…/현실의 문이로다’며 무표정하게 노래한다. 배우들이 물러가고 쩌렁쩌렁한 사물놀이 장단이 무대를 채우다 암전되면 배우들이 재등장해 사다리 주변을 돌며 느린 춤사위를 이어간다. 긴 서막이 끝난 무대 위엔 학점 잔소리를 늘어놓는 아빠의 전화를 받으며 한숨짓는 주인공 지수가 힘없이 서있다.

지난 12일(수)과 13일 마당패탈 제40회 정기공연 「문짝뎐」이 학관라운지 무대에 올랐다. 이번 극은 스펙 일변도의 현실을 살아가는 대학생들의 일상과 고민을 담았다. 극은 스펙과 동떨어진 ‘마당학회’ 활동에서 보람을 찾는 지수가 아빠와 친구들의 한심해 하는 눈초리에서 느끼는 현실과 소신사이의 괴리감을 그려낸다. 낮고 좁은 공연장 출입구, 문을 상징하는 사다리 등 연극은 시종일관 ‘문짝’의 존재를 각인시킨다. 극에 등장하는 사다리는 ‘현실의 문’ 즉, ‘문짝’의 상징물로 대학생활에서 하나의 틀이 돼버린 스펙쌓기의 현실을 가시화한다.

연극은 음악과 노래를 적극 활용해 메시지를 전달한다. 무대 옆에 자리한 악사들은 사물놀이 악기를 연주해 긴장감을 조성하고 장면의 전환을 표현하며 분위기를 한층 돋운다. 극의 주제를 압축적으로 담은 대목에서도 노래의 비중은 여전하다. 극중에 종종 등장하는 가면은 스펙쌓기에 몰두하는 우리의 자화상을 나타낸다. 이 가면을 쓴 인물들이 ‘문/문/…/현실의 문이로다’라고 읊조리며 사다리에 가면을 걸고 퇴장하는 대목은 현실의 문에 매여 그 주변을 맴돌아야 하는 오늘날 상황을 의미한다. 노래는 줄곧 낮고 침울하게 불려 스펙이라는 엄격한 현실을 군말없이 수긍해야하는 팍팍한 처지를 드러낸다.

관객 참여, 최소화된 소품 등으로 마당극의 요소를 십분 살리려 한 점도 시선을 붙든다. 극중 강의실에 들어온 지수는 수강생들에게 유인물을 돌리듯 관객들에게 직접 자료를 나눠준다. 연극은 이렇게 줄곧 객석을 무대의 일부로 여기며 배우와 관객 간의 벽을 허문다. 소품 대신 배우들의 표정과 몸짓으로 장면을 표현해 익살스러움을 더하기도 했다. 극은 지수가 새내기의 학회 가입을 유도하는 장면을 낚시꾼이 물고기를 잡는 모습으로 그렸다. 지수는 진짜 낚싯대를 쥔듯 새내기들을 겨누고 새내기들은 미끼를 문 물고기들이 발버둥치듯 다급한 표정으로 무대를 돌아다니며 허우적댄다. 최소화된 소품으로 내용을 전하려는 배우들의 과장된 움직임과 사실감있는 표정은 관객들이 터뜨리는 웃음 속에서 돋을새김된다.

스펙을 갈구하는 이들이 씌운 가면에 얼굴이 가려진 지수는 결국 현실의 문 앞에 이끌려온다. 몇 겹의 가면을 쓴 채로 철퍼덕 바닥에 주저앉은 지수는 ‘내 생각이 틀린거냐/세상이 미친거냐/…/너희 생각은 어떠하냐’며 힘없이 묻는다. 극의 마지막까지도 문을 박차고 나와 가면을 벗어던진 지수의 모습은 등장하지 않는다. 극은 그저 묵묵히 스펙에 매인 이들이 사다리를 오르는 장면을 비출 뿐이다. 물음의 답을 알려주지 않은 채 막을 내린 연극은 이 정답 없는 질문을 온전히 관객의 몫으로 남긴다. 연극이 끝난 뒤 다시 낮고 좁은 ‘문짝’을 지나는 관객들은 벌써 저마다의 「문짝뎐」을 열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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