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궁금했다. 그 많은 외국인 학생들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 아침에 수업을 들으러 가는 그 짧은 길목에서도 참 다양한 모습의 외국인들과 마주쳤다. 기숙사 식당에서는 오히려 한국어보다 영어나 중국어로 웃고 떠드는 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그들과 말 한마디라도 나눠봤다는 친구를 찾기는 힘들었다. 수업에서도 한국말에 서툰 외국인 학생들은 조용히  앉아 있다가 어느새 사라지기 일쑤였다. 캠퍼스를 거니는 외국인 학생들은 모습은 보이되 실체가 없는 유령과 같았다.

처음에는 외국인 학생들의 태도가 문제일거라 생각했다. 한국에 왔으면서도 한국 사회에 적응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그들’의 괘씸함을 탓했다. 실제로 이 기획을 준비하던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우리가 왜 걔네를 굳이 도와줘야 하냐”는 핀잔이었다. 심지어 외국인 학생들에게 학업적·행정적 지원을 하는 일이 ‘나’의 몫을 빼앗아 ‘그들’에게 퍼주는 부당한 행위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정도로 내국인 학생들에게 외국인 학생들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타자였다. 삼삼오오 모여 있는 ‘그들’과 ‘나’ 사이를 잇는 접점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취재를 하는 동안 내가 만난 수많은 외국인 학생들은 자기들끼리만 어울리려고 하는 폐쇄적인 ‘그들’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많은 학생들이 언어와 문화가 다른 타국에 적응하는 일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하지만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타국에서 수준 높은 학문을 공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들에게 손을 내미는 곳은 생각보다 너무 적었다. 본부는 뒷일은 생각하지 않은 채 외국인 학생 유치 홍보에 열을 올렸고, 정작 한국에 온 학생들을 도와줘야 할 각 기관들은 외국인 학생 지원이 자기 업무가 아니라며 모른 척 했다. 손발이 맞지 않고 삐걱대는 본부의 행보 속에 외국인 학생들은 가장 기초적인 언어 교육도 제공받지 못한 채 방치돼 있었다. 이 때문에 일부 외국인 학생들은 “서울대가 외국인 학생들을 세계 대학 랭킹 등 대외적인 위신을 위해 무작정 데려오기만 하는 양적 지표로 취급하는 것 같다”며 불만이 터트렸다.

서울대가 많은 인력과 비용을 투입해 외국인 학생을 유치하는 목적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구성원들이 상호 교류하며 이해의 폭을 넓히고 궁극적으로 서울대 학문 수준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다. 이에 따라 외국인 학생들에게 체계적이고 심도 있는 한국어 교육 등을 제공하는 건 학업 지원일 뿐만 아니라 외국인 학생들이 서울대라는 공동체에 참여해 내국인 학생들과 어울릴 수 있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국제화의 초석이다. 하지만 본부의 외국인 정책은 생활 지원에 한정돼 정작 중요한 학업 부분의 지원은 소홀히 하고 있었다. 외국인 학생을 데려온 사람은 있지만 받아들일 사람은 없는 캠퍼스, 그것이 2011년 현재 서울대 인바운드(in-bound) 국제화의 실상이었다. 

어쩌면 문제의 원인은 구성원들의 배타적인 마음가짐일 수도 있다. 국제화를 위해서 외국인 구성원에게 기꺼이 다가가는 개방적인 학내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는 말은 분명 옳은 지적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충분한 제반 환경을 조성하지 않고 단지 학생 개개인의 노력에만 의존한다면 캠퍼스 국제화의 자발적인 실현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외국인 학생이 더 이상 서울대 사회를 겉도는 ‘손님’으로 머물지 않기 위해서는 탄탄한 소통의 장 구축이 절실하다. 내국인 학생과 외국인 학생이 한데 어울려 ‘나’와 ‘너’가 아닌 ‘우리’가 되는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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