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대화] 최제훈 소설가

어느새 보랏빛으로 물든 하늘 아래, 노란 가로등 불빛이 고양이의 두 눈처럼 반짝 빛을 내기 시작할 무렵 말수가 적은 작가는 “제 소설이 무섭나요?”라고 물었다. 대답하기가 마뜩찮았다. 새벽에 단숨에 읽어 내려간 그의 소설에는 분명 독자를 잡아당겨 등줄기를 쓸어내리는 매혹적인 서늘함이 있었다. 그러나 그 서늘함은 공포심이라기보다 출구가 당장 보이지 않는 미로 속에 갇혀버린 것 같은 당혹감에 가까웠다.

소설가 최제훈은 신예다. 올해 2월에 출간한 『일곱 개의 고양이 눈』과 작년에 출간한 『퀴르발 남작의 성』 두 권이 그가 낸 소설집의 전부다. 2007년 『문학과 사회』에서 신인 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작가는 학부 시절에 경영학을 전공했다. 소설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학보 「연세춘추」 문학 공모전에 소설을 응모하면서였다. “문학과 글쓰기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있었어요. 글을 써서 어떤 진실을 전해야겠다는 사명감에 앞서 그저 쓰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였어요. 사실 아직도 직업을 소설가라고 말하는 것이 어색해요.”


줄곧 자신을 아마추어로 칭하는 작가는 매우 치밀한 소설을 쓴다. 촘촘한 얼개를 모두 짠 후에야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는 그에게 가장 좋아하는 추리 소설이 무엇인지 물어봤다. “영화 「라쇼몽」의 원작인 소설 「덤불 속」을 좋아해요. 유능한 형사나 탐정이 범인을 색출하는 전형적인 추리소설이 아니라 서로 자기가 범인이라고 주장하며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 참신하다고 생각했어요.”

소설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을 고찰한다

구성이나 소재의 참신함과 기발함은 작가의 소설에서도 두드러진다. 작가는 전작 『퀴르발 남작의 성』에서 유년의 꿈 저편에 머물러있었던 각종 인물들을 불러 모은다. 아서 코난 도일의 죽음을 추리하는 셜록 홈즈(「셜록 홈즈의 숨겨진 사건」)부터 월간 『마녀 스타킹』 2007년 12월호에서 마녀의 스트레오타입에 대해 뜨겁게 논쟁을 벌이는 유수의 마녀들(「마녀의 스테레오타입에 대한 고찰-휘뚜루마뚜루 세계사 1」)과 퉁명스럽게 인터뷰에 응하는 프랑켄슈타인의 저자 메리 셸리(「괴물을 위한 변명」)까지. 환상적인 영상으로 인간의 부조리를 고발했던 영화감독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를 좋아한다는 작가는 추리 소설 속 캐릭터들의 스테레오타입을 차례로 깨부수며 그들의 못 다한 이야기를 전달한다.

작가의 기발함은 그가 데려온 등장인물에 국한되지 않는다. 표제작 「퀴르발 남작의 성」은 어린 아이들을 먹으며 젊음을 유지하는 인물 퀴르발 남작에 얽힌 이야기들을 뉴스 보도문, 대학교 강의록, 인터뷰, 전래 동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한다. 곳곳에 숨어 있는 위트는 소설을 더 흥미롭게 한다. “표제작 처음에 등장하는 강의록은 학교 다닐 때 들었던 마광수 교수의 음성을 빌렸어요. 교수님 특유의 어법이 매우 독특하고 재밌었거든요.”

미스터리 소설 아닌 소설의 미스터리함

톡톡 튀는 신선함이 돋보였던 전작에 비해 지난 2월 출간된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은 조금 더 묵직한 고민을 담은 장편 소설이다.

자, 이야기를 계속해봐. 잠이 들지 않도록.(「여섯번째 꿈」,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작가가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의 시작과 끝에 이 구절을 동일하게 삽입한 사실은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 모를 각각의 이야기들을 대변한다. 특히 이번 소설이 폐쇄된 미로를 떠올리게 하는 주된 이유는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된 소설에서 누가 주인공인지 모르게 뒤얽혀 있는 인물들의 관계 때문이다. 인물들은 모두 주인공이면서 또 모두 조연이다. 각 장의 인물들은 이어져 있는 것 같으면서도 개별적인 이야기들 속에서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 관계도를 그리기 위해 여러 차례 앞 책장을 넘겨야 했던 독자에게 작가는 소설 읽기의 실마리가 될 듯 말 듯 한 말을 던진다. “이야기를 주인공으로 생각하며 썼어요.”

작가가 주인공이라고 말하는 이야기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미스터리 소설’이라는 소재다. ‘실버 해머’라는 연쇄 살인자 마니아를 위한 카페의 정모에서 범인이 누군지 모른 채 날마다 죽어나가는 회원들, 시작과 끝이 꼬리를 물고 있는 복잡한 복수의 연쇄, 꿈속의 꿈에 있는 정신병 환자 등 각각의 이야기들은 연쇄적으로 다른 이야기들에서 미스터리 소설로 소개된다. 소설들이 서로를 자기가 만들어낸 소설이라고 말하는 소설. 이처럼 무엇이 진짜 현실이고 환상인지 구분할 수 없는 모호한 경계 위에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각 장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은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미스터리 소설일 뿐일까? “왜 미스터리 소설이냐고요? 제 소설을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미스터리 소설을 소재로 한 소설이죠. 뒤얽힘에 대한…….” 작가의 말을 곱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작가가 꼬리에 꼬리를 물어가는 미스터리 소설들을 던져 놓은 것은 바로 ‘뒤얽힘’을 보다 효과적으로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누구나 삶의 궤적 한 단면에서 불현듯 ‘뒤얽힘’을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돌고 도는 사람들의 관계, 행복과 불행을 가늠하기 힘든 불연속성과 같이. 그렇다면 앞날을 미리 볼 수 없는 인간이 늘 경험하는 ‘뒤얽힘’ 속에 숨은 진실은 무엇일까?

죽음과 욕망, 그 매혹적인 양면성

작가의 ‘뒤얽힘’이 최종적으로 이르는 곳은 삶과 죽음의 영역이다. “삶의 의지와 죽음의 의지 사이를 절단할 수 있을까요?” 그림을 좋아하는 작가가 특히 이번 작품을 쓸 때 매료됐던 작품은 뭉크의 「죽음과 소녀」다. 두려움 없이 죽음의 목에 팔을 감고 입맞춤하고 있는 소녀의 이미지는 작품에서 여러 번 반복됐다.

소녀의 비쭉 내민 입술과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뺨을 보자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붉은 머리를 늘어뜨린 벌거숭이 소녀와 누렇게 변색된 해골 사나이의 입맞춤. 작년 뭉크 전시회에 갔다가 <죽음과 소녀>란 작품 앞에서 한참을 붙박여 서 있었다. 생과 사의 강렬한 대비와 그 간극에서 피어나는 위태로운 관능이 단번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π」)

죽음을 으스러져라 껴안고 있는 소녀의 모습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듯, 삶을 지탱하는 욕망과 삶의 상실인 죽음의 결합은 작가에게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주연과 조연이 뒤섞여 있는 그의 인물들 중에서 가장 자신을 닮았다며 작가가 꼽는 소설 속 인물은 살로메를 연기하는 연극배우다. “사랑을 받아주지 않았던 요한의 잘린 머리를 선물 받고 죽음을 맞았던 살로메를 꿈꾸면서도 삶에 대한 의지를 악착같이 이어가는 유미미라는 등장인물이 아무래도 나랑 가장 닮은 것 같아요”라는 작가에게 욕망과 죽음이란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질 수 있는 시소의 양 끝과도 같다.

정교한 폐쇄 미로를 굽어보는 죽음의 윤리학

이처럼 죽음과 삶마저 뒤엉킨 실타래 같은 그의 소설에서 당혹스러운 서늘함을 느끼는 것은, 누구에게도 출구가 허용되지 않은 죽음의 폐쇄 미로를 굽어보는 작가의 특별한 시선 때문이다. 작가는 잔혹한 범죄와 타인의 죽음이 지나치게 객관화된 시대, 죽음마저 상품으로 전락해 연쇄 살인범도 스타로 추앙받는 시대에 요구되는 새로운 죽음의 윤리학을 말한다. 난무하는 죽음, 그러나 바로 그 죽음의 연쇄가 바로 자기 자신과 관련된 것이라면? “연쇄 살인범에 대해 줄줄이 꿰며 소위 ‘허세’를 부리고 있는 인물들이 직접 자기들이 그 죽음의 게임 속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여섯 번째 꿈」에서 신나게 연쇄살인범에 대한 지식을 늘어놓던 인물들은 갑작스러운 죽음과의 접촉에 일순간 혼란에 빠진다. 하지만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챘기 때문인지 이 혼란은 두려움이 지배하는 공포감은 아니다. 오히려 정신병 환자의 불안한 침묵이 이어질 때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은 당혹감이다. 작가는 어쩌면 우리는 적어도 죽음을 생각하고 말할 때, 그 정도의 당혹감을 가져야 한다는 그만의 죽음에 대한 윤리학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당신이 걷고 있는 삶의 길 위에 언제고 죽음이라는 벽이 뒤얽힐 수 있음을 미리 경고하며.

그가 주조한 세계 속에서 길을 잃고 한참을 헤맸지만 그가 만들 또 다른 미로가 기다려진다. 다음 미로에서 그가 끄집어 낼 이야기는 또 어떤 묵직한 진실을 담고 있을지. 미로의 가장 깊숙한 곳에는 어떤 당혹감이 도사리고 있을지. 자, 이야기를 계속해봐, 잠이 들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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