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학과
흥미로 역사책를 읽는 게 아니라 직업(?)으로서 역사학자가 되면 세부 전공을 정하고, 거기에 집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먼 훗날 대가가 되면 다양한 주제로 글로 쓰고 발언을 하는 게 가능하겠지만, 아직 풋내기 연구자에게는 가늠하기 어려운 미래의 일일 뿐이다. 그런데 특정 소재에만 매달려 사료를 정리하고, 공부를 하다보면 이게 과연 ‘역사’인가 하는 회의가 드는 것이 사실이다. 처음 역사라는 학문에 흥미를 느껴 학과를 선택하고, 마침내 대학원까지 진학해 공부를 업으로 삼았을 때의 초심은 분명 이런게 아니지 않았나. 뭔가 인간 삶의 ‘전체’에 대한 이해를 구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던가.

3, 4년 전 쯤 일제시기의 도시 문제를 주제로 박사학위논문을 쓸 때였다. 물론 처음에는 주제에 맞는 사료를 모으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작업은 벽에 부딪쳤다. 사료도 많고 목록도 잘 정리돼 있는 연대가 있는 반면, 어떤 연대는 도무지 주제에 걸맞는 사료가 쉽게 눈에 뜨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하지만 별다른 해결 방법은 없었다. 차근차근 무식하게 가는 수밖에. 알맞은 사료가 부족한 시기에 한정해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 영인본을 1쪽부터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지루하고 비생산적인 작업이었다. 수십쪽을 읽고도 필요한 사료를 한 건도 찾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신기하게 이 작업이 재미있어지는 것이었다. 시간이 무한정 주어진 상황이 전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샌가 논문 주제와 관계 없는 기사, 1면의 국제정세에서 마지막 면의 각종 사건·사고까지 한 자 한 자 천천히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시간이 쌓이면서 서서히 당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내친 김에 굳이 이렇게 할 필요가 없는 시기까지 똑같은 작업을 시작했다. 역시 사료를 발췌해서 읽을 때와는 다른 감각이 솟았다. ‘전체’에 대한 어떤 느낌이랄까. 물론 여러 가지 제약과 능력의 한계 때문에 그때의 그 느낌을 실제 논문에 다 담아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 ‘느낌’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여러 가지를 가져다 줬다. 지금까지 한 공부가 전체 속에서 차지하는 좌표를 이해할 수 있었고, 앞으로의 연구를 위한 무궁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 아니, 그보다도 어쩌면 희미하게나마 전체를 보았다는 느낌 자체가 가장 소중한 경험일지 모르겠다.

사실 요즘은 워낙 많은 사료들이 데이터베이스로 구축돼 클릭 몇 번으로 대상에 적합한 사료를 확보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면 주어진 과제를 빨리 해결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런 공부로는 늘 정해진 길만 가게 된다. 그래서는 결국 제자리걸음이 아닐까. 당장은 시간 낭비 같지만 누군가 먼저 만들어놓은 가이드라인 없이 하는 ‘전수 조사’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다시 혼자 힘으로 길을 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과 노하우를 얻을 수 있다. 공부 혹은 연구가 아니더라도 인생을 걸려는 어떤 분야에서 한번 쯤은 이런 ‘전수 조사’를 권하고 싶다. 거기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버려진 시간보다 훨씬 크다.

염복규 시간강사
국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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