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미시사는 1990년대에 들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70년대는 독재정권 하에서 ‘민족’과 ‘국가’의 발전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던 때로, 이를 탈피하자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주장이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90년대 들어 국내 역사학계 미시사적 흐름 인식해


그러나 90년대 들어 냉전의 종식, 세대의 교체와 개인주의의 확산에 따라 사회풍토가 달라지면서 역사학계에도 변화가 왔다. 박지향 교수(서양사학과)는 “80년대 독재 정권과 냉전 체제 하에서 경직돼 있던 민족과 이념에 대한 생각이 90년대 들어 붕괴되기 시작했다”며 “역사학계도 중심의 해체와 다양한 시각을 강조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김호 교수(가톨릭대․교양교육원)는 『일상으로 본 조선시대 이야기』(2001년,청년사), 미시사회사 연구자들의 프로젝트 논문집 『맛질의 농민들』(2001년) 등의 간행물을 예로 들며 “미시사적 시각을 역사에 적용한 책을 기획하고 출간한 것은 한국사학계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박씨 가문의 4대에 걸친 120년 간의 생활일기에 기초해 『맛질의 농민들』을 엮은 안병직 교수(경제학부)는 이 책을 “우리 전통사회를 경제적사회적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실증분석한 최초의 한국 근세 촌락 생활 연구서”라고 소개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일부 역사학자들은 이런 변화가 시작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미시사를 역사적 방법론으로 연구하는 것을 넘어서서 한국사에 적용하는 연구로 확대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곽차섭 교수는 “실증사학과 민족사학의 전통이 강한 국학연구는 자칫 폐쇄적 학문이 될 수 있다”며 “더 많은 학자들이 미시사적 방법론을 한국사에 적용해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역사의 다양한 모습을 발견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의 민족사관은 일제 식민사관의 대항담론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하는 김기봉 교수(경기대․사학과)는 “여태껏 ‘민족’이라는 개념에 의해 독점된 역사 해석에서 탈피해 우리의 풍속, 범죄소송사건 등 다양한 분야를 미시적 시각에서 다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사에 미시사 적용 위해서는 많은 논의와 연구 필요

 

 

그러나 국내의 미시사 연구는 아직 초기단계로 주로 서양사학 전공의 학자나 대학원생들을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 또 미시사가 국내 역사학계에서 기존의 역사관과 대등하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주경철 교수(서양사학과)는 “미시사가 역사학계에서 새로운 흐름으로 인식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시사를 기존 역사관의 대안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이라고 말한다. 박지향 교수도 “미시사에 대한 주목은 포스트모더니즘적 경향의 일부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또 미시사가 기존의 역사관과 비교해 크게 새로울 것이 없다는 주장도 미시사의 입지를 모호하게 만든다. 김영범 교수(대구대․사회학과)는 “태동기의 사회사 연구에서 이미 사회적 일탈자나 여성, 특수집단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왔다”며 미시사의 ‘새로움’은 지나치게 과장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한국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한 새로운 담론으로서의 미시사에 대한 활발한 논의와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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