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한복판을 관통하는 베저강 중류의 작은 도시 하멜른.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피리 부는 사나이’의 전설이 이곳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쥐떼가 극성을 부려 고통받던 하멜른 시민들 앞에 어느 날 이상한 차림의 남자가 나타났다. 남자는 약간의 보수를 준다면 쥐를 퇴치할 수 있다고 장담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남자가 부는 피리 소리를 따라 쥐떼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우리가 아는 이야기는 보통 여기까지지만 하멜른의 전설에는 음산한 결말이 남아있다. 하멜른 시민들은 쥐의 재난에서 벗어나자 태도를 바꿔 지불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화가 난 남자는 다시 한번 피리를 불어 이번에는 하멜른 시민들의 사랑스러운 자녀들 130명을 데리고 사라져버렸다. 이 집단 실종 사건은 1284년 6월 26일이라는 정확한 날짜와 함께 시참사회당에 기록됐고, 어린이들이 사라진 그 비극의 거리에서 18세기 중엽까지 노래와 춤이 실제로 금지됐다.

독일 중세사에 정통한 아베 긴야는 다양한 문헌학적 증거를 제시하며 이 이야기가 역사적으로 일어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베 긴야가 추정한 이 이야기의 오리지널 판본 가운데 하나는 13세기에 새롭게 건설되던 독일 중세 도시의 어두운 모습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도시를 둘러싼 새로운 활기는 도시민들의 자유를 확대하고 봉건적 예속으로부터의 해방을 가져왔지만, 이러한 활기가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된 것은 아니었다. 신분제가 서서히 쇠퇴해가는 가운데서도, 금전의 논리는 신분제보다 몇 배나 큰 힘으로 하층민들을 압박하고 학대했던 것이다. 그들은 도시의 활기가 만들어낸 부르주아들의 ‘인간적’ 권리에서 언제나 배제됐으며, 단지 생물학적으로 살아가는 것조차도 쉽지 않았다. 아베 긴야는 전설 속 집단실종이 하층민의 어린 아이들이 가난과 굶주림 속에서 문자 그대로 사라져간 역사적 사실들을 동화적으로 변형시킨 것이 아니겠느냐고 썼다. 그러므로 이 전설 속에는 경제적 번영 뒤에 남겨진 비극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셈이다. 이 전설에는 약자들의 가난을 발판으로 번영을 누린 자들의 죄책감이 조금 드러나 있지만(약속 이행 거부) 결국은 절망적인 삶을 웃음과 눈물을 섞어 노래한 유랑예인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려는 비겁함(쥐를 퇴치한 피리 부는 사나이를 범죄자로 지목)이 전체 이야기를 뒤덮고 있는 셈이다.

‘피리 부는 사나이’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어떤 울림을 준다면, 그것은 이 이야기가 아직까지도 끝나지 않은 문제이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오늘날 정리해고로 사라지는 사람들은 너무 많고, 국회권고안을 수용하기로 하고서도 한달이 지나도록 한진중공업 사태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했다. 사태해결을 요구한 김진숙 위원장은 85호 크레인 위에서 지난 1일 고공농성 300일을 맞았고 아직도 그곳에 있으며 ‘희망버스’를 기획한 송경동 시인에게는 결국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약자들의 가난을 발판으로 번영을 누린 자들의 죄책감은 조금도 드러나 있지 않지만 절망적인 삶을 울음과 눈물을 섞어 노래한 유랑예인은 오늘날에도 범죄자로 지목되고 있다. 우리는 85호 크레인 주위에 다시 한번 비극적인 전설을 만들고 있는 것일까. 역사는 그저 반복되기만 하는 것일까. 700년쯤 지나고 나면 인류도 조금쯤은 나아져야 하지 않겠는가. 

권희철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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